'세상 친절한 이슬람 역사' - 존 톨란
중동, 서아시아, 이슬람 세계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지는 곳은 내겐 멀고도 낯선 문화권이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도 그저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로 포커스를 받았을 뿐 그 이후로는 서양 역사에 곁들여 잠깐씩 맛만 봤을 뿐이다. 그리고 20세기, 21세기를 통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이슬람 극단 테러리스트들의 만행들, 연일 들려오는 어수선한 이 지역 정세에 이어 최근에 다시 전개되고 있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분쟁은 레바논, 이란 등의 이웃 중동 국가들까지 전쟁의 분위기에 가세하게 만들어 제5차 중동 전쟁이 목전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멀고도 낯선 문화권임과 동시에 위험하고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나 해외여행 중에 무슬림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슬쩍 거리를 두게 되었었다. 얼마 전 대구 이슬람 사원 건축 반대 시위를 하는 대구 시민들을 보며 무슬림들이 모이는 것을 꺼려하는 그들의 마음에 어느 정도 공감했었다.
남의 집 불화의 원인을 소상히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듯, 머나먼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참상에는 무관심했다. 소상히 안다고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슬람 역사에 푹 빠져 들어갔다.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지역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는데 이슬람 세계의 통사를 이렇게라도 접해볼 수 있어서 무척 뜻깊은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이슬람 관련 영화도 여러 편 찾아보면서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도 했다.
1. 「세상 친절한 이슬람 역사」 요약
이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이슬람의 창시’에서는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아 이슬람을 창시하고 네 명의 정통 칼리프 시대, 우마이야 왕조 시대, 아바스 왕조 시대를 거쳐 아바스 왕조/파티마 왕조/후우마이야 왕조의 세 칼리파국으로 분할된 시기까지를 다룬다.
570년경 메카에서 태어난 무함마드는 어려서 조실부모하여 친척 손에 자랐고 연상의 여인 카디자를 만나 결혼하여 살다가 610년 최초로 알라의 계시를 전달받았다. 다신교도들이 득세하고 있던 그 시대 메카인들에게 박해받고 이슬람력의 원년이 되는 622년 메디나로 이주했다. 630년 메카를 정복하고 유일신 알라를 섬기는 이슬람을 아라비아 반도에 정착시키고 632년 무함마드는 세상을 떠났다. 무함마드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후계자인 칼리프를 정하는 문제에서 내부 분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대 칼리프를 선정하는 문제에서 무함마드의 오랜 친구인 아부 바크르와 무함마드의 사촌이면서 사위인 알리의 대결 구도가 벌어지고, 이러한 갈등 구도는 후에 이슬람이 수니파와 시아파(알리로 이어지는 정통성만을 인정)로 나눠지게 되는 원인이 된다. 1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 2대 칼리프 우마르, 3대 칼리프 우스만에 이어 4대 칼리프에 알리가 추대되고 이 네 명의 칼리프 시대를 정통 칼리프 시대(632년~661년)라고 한다. 이때부터 이슬람 세계는 널리 그 세력을 팽창시키기 시작했다.
4대 칼리프 알리가 암살되고 나서 시리아 총독이었던 무아위야에 의해 성립된 우마이야 왕조(661년~750년)가 시작된다.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한 우마이야 왕조는 정통칼리프 시대의 선출제를 버리고 세습 왕조가 이어졌다. 우마이야 왕조 시기 동안 이슬람은 아랍세계를 넘어선 종교로 발돋움하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오늘날 이슬람의 핵심요소로 인정되는 샤하다, 딤미, 건축, 미술, 화폐에 적용된 이슬람 고유의 상징어가 처음 시작되었다.
이라크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우마이야 왕조가 멸망하고 바그다드를 수도로 한 아바스 왕조(750년~1258년)가 일어났다. 아바스 왕조는 오백 년 넘게 존속하면서 제국에 어울리는 영토 확장과 더불어 이슬람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751년 탈라스 전투로 중국의 제지술을 도입한 후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이 번역 및 재해석되면서 문학의 중흥을 이어나갔고, 자연과학, 천문학, 의학에 있어서도 눈부신 발달을 이루는 시기였다. 아바스 왕조 후기가 되면서 민란이 늘어나고 거듭된 위기를 겪으면서 왕조가 쇠퇴하기 시작한다. 튀니지에서 일어난 파티마 왕조,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일어난 후우마이야 왕조, 바그다드의 쇠퇴해 가는 아바스 왕조 이렇게 세 칼리파국 시기가 이어졌다.
2부 ‘이슬람의 확장’에서는 11세기 들어 이슬람 세계로 들어오는 십자군 세력을 시작으로 하여 13세기 몽골군의 바그다드 침략, 이슬람 세계의 주도적 세력이 아랍인에서 튀르크인으로 변화하는 셀주크 제국(11세기~14세기), 오스만 제국의 성장기, 이슬람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확장되는 시기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슬람 제국의 확장기를 맞아 14세기 세계 각지의 국가들을 여행한 이븐 바투타의 여행 기록이 담겨있다.
1099년 제1차 십자군 원정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함으로써 유럽은 이슬람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십자군 원정을 통해 이슬람 세계를 약탈하며 문화와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전수해 갔다. 1258년 몽골의 4대 칸의 동생 훌라구가 아바스를 점령해 바그다드를 초토화시켰다. 정치적으로는 약탈과 점령이 잦았던 시기였지만 아바스 왕조시대부터 꽃피우기 시작했던 이슬람 문화는 더욱 깊이를 더해갔다. 우수함과 관용의 문화를 내세우는 이슬람은 몽골처럼 정복자들조차 개종시키며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유럽으로 그 영향력을 넓혀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모로코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1325년부터 24년간 아프리카, 아라비아,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이슬람권 여행을 하며 그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은 14세기 이슬람 세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인류학 사료가 되고 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북부 기독교 왕국들과의 세력 다툼 끝에 1492년 레콩키스타로 이슬람 세력이 완전히 축출될 때까지는 이슬람의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 800 년가량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문화는 이어져 나갔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이 이룩한 학문적 성취와 문화적 성취는 대단했다.
한편, 14세기 초반에 아나톨리아 전역을 통일하고 오스만 제국이 건국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며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키워나갔다. 제국의 수도를 부르사에서 에디르네로 이전했지만,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후에는 그곳을 수도로 정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기독교 왕국에 의해 완성된 이후 추방된 유대인들의 다수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왔다. 이교도에게 잔혹했던 스페인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교도들을 팔 벌려 환영했던 오스만 제국은 번영의 길로 나아갔다는 사실은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는 유연함의 필요성을 알게 한다. 술레이만 대제가 활약했던 시기가 오스만 제국의 최고 전성기를 지나 서서히 ‘유럽의 병자’로 조롱받으며 쇠퇴의 길에 접어든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지점이다.
3부 ‘이슬람의 근대화’에서는 서구 강국의 식민지배와 이슬람 저항운동, 식민지 해방과 민족주의 그리고 정치적 이슬람의 대두, 개혁과 급진주의 등을 살펴본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몰락은 발칸 전쟁으로 가속화되었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완전한 패망으로 이어졌다. 이는 곧 이슬람 제국의 사분오열을 의미했다.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가 다양한 형태로 대두되면서 해방과 독립을 외쳤고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이슬람 국가들은 각자 독립국가를 이룩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현재까지도 분열과 갈등은 격화되고 있다.
2. 독후 소감
뉴스에서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된 끔찍한 테러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이슬람교가 무엇이길래 코란에 도대체 뭐라고 적혀있길래 저들은 저토록 굳건한 믿음으로 반인륜적인 행위를 일삼는 걸까 궁금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믿음은 한낱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고 싶은 대로 보이고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무함마드가 신에게 계시를 받고 그것을 전파하며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한 책이 코란이고,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 하디스인데 이것들은 모두 무함마드 사후에 편찬된 것들이다. 코란은 3대 칼리프 우스만 대에 성문화하기 시작했고, 하디스는 무함마드 사망 200년 후인 아바스 왕조대에 무려 7명의 전승자들을 거쳐 전해져 온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주로 코란과 하디스의 구절을 근거로 그들의 잔혹한 지하드와 때론 반인륜적인 이슬람 율법을 정당화하고 있는데, 이는 굉장히 편협하고 위험한 접근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란도 하디스도 기록된 시기의 시대적인 특수성도 고려해야 하고, 오랜 시기 여러 사람을 통해 전승된 만큼 일관성이 결여된 지점도 있다고 하니 그 기록들이 절대 진리라고 맹신할 수도, 맹신해서도 안된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역시 실효성 없는 법이다. 학문적 토론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던 아바스 왕조대에 샤리아를 두고 법학자와 신학자들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있었으나 그 누구도 결론에 닿지 못했다. 그러니 샤리아를 신의 계시에 의한 절대적인 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책에서 소개한 19세기 이집트의 신학자 무함마드 압두가 전한 말이 강하게 남는다.
“이성과 전통이 충돌한다면 이성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것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원칙”이다.(297쪽)
코란에서 아브라함과 예수와 같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예언자들을 인정하고 무함마드도 그들과 같은 예언자일 뿐이라고 기록했다는 부분을 읽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하나의 나무에서 뻗어 나온 다른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서로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비종교인의 시선에서는 이 세 종교가 모두 숭고하고 거룩한 지점도 있지만, 종교라는 방패를 앞세워 저지른 과오도 분명 많았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현대에 와서는 이슬람교의 방패를 앞세워 저지르는 반인륜적인 행태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긴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기독교, 유대교는 과연 이슬람만을 탓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놀라운 것은 무함마드 시대 이후 정통 칼리프 시대, 우마이야 왕조 시대, 아바스 왕조 시대까지도 이슬람이 아랍 중동권에서 절대적으로 우세한 종교가 아니었고 기독교와 유대교와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던 시대였다는 사실이다. 정복 영토가 커질수록, 제국화 되어 갈수록, 권력이 커질수록 융통성은 사라지고 이질적인 것에 폐쇄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는 서구 세력의 이권 경쟁의 현장으로 변질되면서 생존 자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아수라장이 돼버린 모양새다. 과거에 대체로 다양한 민족, 다양한 종교,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져 살아가던 시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 지역 역사상 지금 현재가 가장 폐쇄적이고 융통성 없는 시기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 어디서 부러지고 균열이 가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슬람 세계에 대한 나의 시선이 한 겹 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무지해서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에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이슬람 세계에 대한 놀라운 발견과 동시에 그들의 문화와 전통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뉴스나 영화에서 보던 과격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이슬람 세계와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으며 찾아본 대구 이슬람 사원 건축을 주도한 한 무슬림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았다. “테러를 일으키는 그 사람들은 진정한 무슬림이 아니에요. 아니, 그들은 사람도 아니에요.”영화 「팀북투」에서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현지 이슬람교도 원주민들을 같은 무슬림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활약한 대시인 이븐 아라비의 시처럼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은 ‘사랑의 종교’일 것이다. 다만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있기까지 그들에게 정신적 지지가 되어준 와하비즘과 살라피즘과 같은 극단적 이슬람주의가 있음을, 그리고 종교를 넘어서는 이권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서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분쟁을 단순히 이슬람교와 유대교 혹은 시아파와 수니파와 같은 종교의 대립, 민족의 대립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제가 훨씬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구 강대국들의 무책임하고도 이기적인 개입이 그 문제의 불씨를 키웠음에 틀림없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복잡한 실타래 같지만, 인류애를 최우선에 두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