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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하해 Nov 12. 2023

무심함의 맛

첫맛은 씁쓸함

하루 일당 16만 원.

에스컬레이터 부품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는 용역이 들어왔다.


8시 30분까지 도착해서 출근 러시아워를 조금 기다려 9시부터 작업을 시작하고 일은 빨리 끝이 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일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의 모델도 역마다 천차만별이다. 같은 회사 제품도 모델에 따라 규격이 다른 마당에 어느 역에 설치되어 있는 어느 에스컬레이터는 각각 제조 회사도 달랐고 같은 제조 회사인 경우에도 각각 모델이 달랐다.


다 돈 때문인 것 같았다.


처음 P는 금릉역에서 일을 했었다. 구리역에서는 금릉역 까지는 1시간 30분이 훨씬 더 걸린다. 지하철 차편도 자주 있는 편이 아니라 도착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딱 맞혀 나갈 수가 없다. 늦지 않으려면 일찍 나가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다행인 것은 구리역에서 지하철로 일정 시간만 참으면 금릉역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금릉역 일은 5시를 30분을 넘겨서 끝이 났다. 용역 퇴근 시간은 4시 30분, 5시를 넘기면 돈을 더 주고 일을 더 해달라고 잡던가 아니면 그냥 보내야 한다. 적어도 그것은 보이지 않는 룰이자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계약이자 메너였다.


금릉역에서 일을 했었을 때 5시가 넘어도 묵묵히 일을 했던 그는 일을 다 마치고 귀가를 했었다. 그런 일 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장은 계속 나와 달라고 이야기를 했고 경의 중앙선과 경춘선을 중심으로 10일 간 에스컬레이터 부품 교체 용역 일을 하게 되었다.


어느 역에서는 에스컬레이터 조립을 마쳤지만 센서의 불안정으로 9시 30분에 일이 끝 난적이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반을 넘겼었다. 조금이라도 알아서 임금을 더 주겠지라고 생각했던 그는 들어온 금액을 보고 반신반의를 했다. 2만 원이 더 들어온 18만 원이었다.


"아침 새벽에 나가서 밤 11시 반에 들어왔는데..

그들에게 나의 노동의 가치와 나의 시간의 가치는 18만 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나"


양평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P는 여느 때와 같이 무심히 먼지를 손으로 쓸어 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깨끗한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그날도 로라 주변에 먼지가 많이 쌓여 무심코 손으로 먼지를 움켜 집었다.

하지만 이상해서 그 먼지를 손을 펴고 살펴보았다.


“으 악”


그는 깜짝 놀라 그 먼지 뭉텅이를 던졌고 그 뭉텅이는 에스컬레이터 2개의 계단 밑으로 떨어졌다.  


느낌이 이상해서 보았던 그 먼지 뭉텅이는 말라비틀어진 생쥐의 사체


그는 계속해서 신경을 끊고 일을 하려 하는데 자꾸 그 사체에게 고개가 돌아갔다.


그 먼지인 생쥐가 그를 계속해서 처다 보는 것 같았다.


그는 그 가는 꼬리 같은 실의 끝을 잡고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내려가 풀숲으로 그 생쥐를 던지고 계속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부지런히 끝내서 집에 도착하면 9시가 넘을 테다 그럼 17만 원 들어오겠네.."


그는 처음처럼 무심하게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 모든 시작은 무심하게”

“좋아 빠르게 가는 거야”(좋빠가)


마음이 있으면 일도 어쩜 안된다. 그는 해골물 원효 대사의 일화를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을 생각한다.


“만약 우리나라에 원효 대사가 다시 환생한다면 득도는커녕 해골물도 해골물이라고 이야기할 수나 있을까?”


진정한 배움은 당장 필요 없다고 말하는 빈약한, 썩은 물도 안 썩었다고 이야기하는 사회이니...


그리고 그는 집에 가서 이 시를 쓴다.


일체무심조


검은 먼지 솜뭉터기를

잡아

옆에

두다가

뭔가 이상해

놓아보았더니

말라비틀어져 죽은 새앙쥐 한 마리

놀라 휙 던졌다


새앙쥐 모양의 먼지 솜뭉터기가 나에게

계속 이야기한다

나를 흙 가까운 곳에 놓아줘


분명 먼지 솜뭉터기였었는데


혼이 머물다간 모든 먼지에는

특별한 것이 있나 보다

마음을 흔들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지만

무언가를 꼭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으로 만든다


먼지 솜뭉터기의 얇은 꼬리를 잡아

풀 속으로 던졌다


이젠 됐지


분명 먼지솜뭉터기였는데

로라 옆

생쥐가 죽어있던 곳엔 털들이 말라비틀어져

있다 먼지 같이


네가 죽은 쥐였다면  

난 만지지도 못했을 것을

넌 분명 검은 먼지솜뭉텅이야

내가 장례를 치른


너의 혼만큼

내 죄도 조금은 가벼워졌을까

그럼 좋겠다


해골물이 생각났다

맛있게 마셨다는 해골물

그 젊은 고승은 지금 환생했을까

검은 먼지 솜뭉터기로

어쩜 지금 우리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을까

썩은 물만 계속 마시면서

일체무심조를 노래하며

무심하게



무엇을 처음 하려면 생각 없이 무심하게

마음은 무심에서 유심으로 옮겨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씁쓸함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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