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몰입과 그림자

강박이 나를 삼키던 날들

by 안성준
위태로운 질주

전역 후, 나는 곧바로 학교에 복학하여 군 생활 동안 치열하게 세웠던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당장 넉넉지 않은 형편에 레슨비를 전부 감당하기는 어려워, 염치 불고하고 대학 동기인 누나와 동생에게 보컬과 미디를 배우기로 했다. 고맙게도 그들은 거의 취미생 수준의 비용만 받고 기꺼이 나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레슨 숙제와 학교 과제를 모두 해내랴, 틈틈이 습작을 만들랴, 주말에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려니 하루 수면시간은 네댓 시간으로 줄어드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살인적인 일정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은 온통 ‘지금이 아니면 실력을 키울 시간은 없다’는 강박적인 생각뿐이었고,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했다.


어쩌면 이 채찍질은 마음 깊이 자리한 열등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숨 막히는 스케줄 속에서 학교를 다니며, 때로는 친했던 동기에게서 냉정한 연주 실력 비판을 듣기도 했고, 자신만의 음악으로 무대에 서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움과 초조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로 인해, 스스로를 다그쳐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더더욱 나를 옥죄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를 잃어버린 시간, 세 번의 파열음

그런 강박과 조바심에 휩싸여 학교를 다니던 2년 동안, 나 자신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잊지 못할 사건이 세 번 있었다.

참고로 내가 다니던 학교는 집에서 편도 2시간 30분, 왕복 5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라 통학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첫 번째 사건은 1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새벽 5시 50분에 집을 나서야 했던 어느 날,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던 2호선 지하철 안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눈앞이 흐려지며 어지러웠다. 식은땀과 함께 참을 수 없는 구토감마저 밀려왔다. 생전 처음 겪는 공황발작이었다. 결국 네 정거장을 채 못 가 다급하게 지하철에서 내렸고, 그날 나는 모든 수업을 결석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사건은 유독 피곤했던 어느 날 터졌다. 2교시 수업에 겨우 맞춰 집을 나섰지만 5분 정도 늦었고, 결국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를 눈앞에서 놓쳐버린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길 한복판에서 이성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마치 인생 전부가 망해버린 것처럼 울부짖으며 주변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XX, 안성준 XX 같은 놈' 등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미친 듯이 쏟아냈다.

한참 만에 학교에 도착했을 때, 같은 시기 복학한 동기가 별생각 없이 장난스레 던진 ‘네가 일찍 나왔어야지’라는 말 한마디에도, 나는 속에서부터 격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껴야 했다.


세 번째 사건은 3학년 때 작곡 전공으로 옮긴 후, 학교에서 열린 작곡 전공생들만의 작은 공연 무대에 섰을 때 일어났다. 내 자작곡을 연주하는 순서였는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앰프가 말썽이었는지 기타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공연 내내 크고 작은 다른 사운드 문제들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 순간에는 그저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느껴졌다.

솔직히 지금은 기타 소리 문제 외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내 예민함이 상황을 과장했을 수도 있다.


결국 무대가 끝나자마자, 후배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나는 쌓였던 분노와 실망감을 터뜨리고 말았다. 일단 손에 잡히는 기타 케이블부터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이전 두 번째 사건 때 길거리에서 소리 내어 울부짖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차마 터져 나오는 욕설을 밖으로 뱉어내지 못했다. 대신 혼자 속으로, 그리고 나만 들릴 정도의 아주 작은 목소리로 끝없이 그 말들을 미친 듯이 되새겼다. 그 순간의 내 모습이 얼마나 꼴사나운지, 부끄러움조차 느낄 겨를이 없었다.


이 세 가지 사건은,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당시의 내가 얼마나 위태롭고 이상해져 있는지를 깨닫게 해 준 순간들이었다.

돌이켜보니, 나에게는 하루하루, 매 순간이 너무나 절박했기에 그런 극단적인 모습까지 보였던 것 같다.


나는 늘 조바심에 쫓겼고, 어떻게든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스스로를 절벽 끝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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