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살아야 돼요 (1)

-나는 활보다

by 오드리

찰스와 스잔나는 이십 대 초반에 친구 소개로 만나 사랑에 빠졌다. 서로 초중고 동창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그 긴 시간 동안 서로의 존재도 모르다가 결국 만났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운명을 느꼈다. 스잔나는 당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었고, 일찌감치 군대부터 다녀온 찰스는 전기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찰스는 앞으로 학벌보다 기술이 대접받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었다. 스잔나는 찰스의 성실함과 책임감에 반했다. 둘은 살림부터 차렸다. 곧 첫 딸이 태어났고 찰스는 더 열심히 일에 전념했다. 각종 전기 기사 자격증과 면허를 땄는데 특히 고압 전기 분야에 집중했다.


찰스는 서른 즈음에 벌써 개인사업자로 팀을 꾸려 민간공사를 맡았다. 안전 시공과 기한 엄수를 철칙으로 삼은 결과 공사 의뢰는 줄을 이었다. 찰스는 돈이 들어오는 대로 스잔나한테 갖다 안겼다. 부부는 금슬이 좋아 아이도 오 남매나 낳았다. 딸 넷에 막둥이는 아들이었다. 찰스가 퇴근해 오면 스잔나는 정성껏 밥상을 차렸고 딸들은 찰스의 팔다리에 한 명씩 붙어 앉아 안마를 했다. 갓 돌을 지난 아들은 아장아장 걸어와 찰스의 품에 안겼다. 더 바랄 게 없다고, 찰스와 스잔나는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장을 봐와서 저녁 준비를 하던 스잔나는 느닷없는 전화벨 소리에 머리끝이 쭈뼛 섰다. 수화기 너머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잔나도 잘 아는 찰스의 회사 동료였는데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찰스가......., 감전 어쩌고......., 구급차가 뭐 어쨌다고.......? 스잔나는 이 사람이 왜 이런 헛소리를 지껄이나 싶어 짜증이 났다. 옆에서 듣고 있던 큰딸이 수화기를 빼앗아 병원을 묻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스잔나는 스르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스잔나의 머리를 스쳤다. 매일 아침 찰스를 내보낼 때마다 스잔나는 그의 등뒤에서 두 손바닥을 모으며 '오늘도 무사히'를 외쳤다. 벌떡 일어난 스잔나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 한꺼번에 울음을 터뜨렸다.


찰스는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다. 고압 전류가 두 팔과 가슴, 다리를 관통했다. 척수는 한번 손상되면 재생이 불가능하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래도 재활을 열심히 하면 나아질 수도 있겠죠? 세상에는 기적이란 게 있잖아요?" 스잔나는 울부짖으며 의사한테 매달렸다. 의사는 침묵했다.

스잔나는 단 일프로라도 희망적인 소견을 내놓는 의사를 찾아 전국을 헤맸다. 찰스는 거짓말처럼 얼굴은 멀쩡한데 목 아래부터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평소와 똑같이 말하고 먹고 온갖 표정을 짓는데, 그런 사람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니. 스잔나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린 오 남매를 팽개치고 언제까지 병원만 전전한단 말인가. 찰스가 먼저 포기하자고 말했다. 집으로 가고 싶다고 스잔나를 설득했다.


스잔나는 집 안방을 병실처럼 꾸몄다. 안방 한가운데에 의료용 침대를 두고 사방 어디서건 찰스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매끼 식사와 목욕, 대소변 처리 등 하나부터 열까지 스잔나가 떠맡았다. 딸들한테는 아빠의 치부를 보일 수 없었다. 찰스는 누운 채 스잔나가 떠먹여 주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천천히 씹어 삼키는 것 외에 찰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잔나가 질색을 하기도 했지만, 고맙다, 미안하다, 무리하지 마라,는 말을 찰스 본인도 더는 지겨워서 할 수 없었다. 찰스는 종일 가수면 상태로 지냈다. 찰스가 자는 척 눈을 감아야만 스잔나가 아이들 케어나 다른 집안일을 했기 때문이다. 찰스는 죽은 듯이 조용히 있는 것만이 그나마 스잔나를 돕는 거라고 믿었다. 사고 전에 맥주 한잔씩을 기울이며 둘이서 도란도란 주고받던 대화는 먼 옛날의 일이 되었다.


스잔나는 틈만 나면 찰스의 온몸을 마사지했다. 자신의 기운을 찰스에게 불어넣고 싶었다. 손가락 발가락 감각을 살리려고 지문이 닳도록 주물렀다. 처음에는 간절한 희망이었던 것이 나중에는 별생각 없는 습관으로 굳어졌다.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몸을 주무르는 스잔나를 보고 있자면 찰스는 참담했다. 분명 자기 몸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남의 일처럼 여겨졌다. 나무토막을 하나 갖다 놓고 문지르면 차라리 그 느낌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찰스는 소용이 없으니 그만하라고 했다. 그래도 스잔나는 고집을 피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옥 같은 하루를 버틸 수 없었다.


어느새 막둥이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었다. 스잔나는 새삼 소름이 돋았다. 그 아이 첫 돌 때 찰스가 다쳤는데. 벌써 이십 년이 지났단 말인가. 아직 전화받던 그날의 충격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는데. 스잔나는 가끔 이 모든 게 꿈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망가질 대로 망가진 스잔나의 몸이 그 세월을 대변하고 있었다. 나이 육십에 스잔나는 팔십 노인의 체력이 돼 버렸다. 찰스의 죽은 팔다리를 미친 듯이 주물러대던 그녀의 작은 손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었다. 자기 덩치의 두 배나 되는 찰스를 업어 욕실로 옮기고 씻기던 그녀의 허리는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었다. 가벼운 산책도 중노동이 될 만큼 그녀의 무릎 연골은 다 닳아 버렸다. 스잔나는 최선을 다한 결과가 너무 허무하여 혼자 술을 먹고 소리 내어 울었다.


결혼한 딸들이 모여 대책 회의를 했다. 간병인을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찰스는 장해 1급이므로 활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비로소 알게 된다. 큰딸이 지역 활보 센터에 문의를 했고, 센터 담당자는 바로 오드리와 함께 그들의 집을 방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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