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생각하니, 도로시? (3)

-나는 활보다

by 오드리

이별의 순간은 갑자기 찾아왔다. 도로시 아빠의 사업 문제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오드리도 안나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도로시도 오래도록 살았던 익숙한 환경에 그대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준비 기간은 한 달도 채 안 되었다. 안나는 오드리와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20년 정도 눌러살았던 집을 떠난다는 사실은 흥분된다고 했다. '싹 다 정리한 다음 새로 시작하고 싶어!' 했다. 30평대 자가에서 20평대 전세로 줄여서 가는 이사였다. 그런데 집값은 이사 가는 데가 훨씬 비쌌다! 안나는 이참에 묵은 살림을 정리할 거라며 외출도 하지 않고 집 정리에 몰두했다.


그동안 도로시가 생활하는 거실과 주방만 봐왔던 오드리는 처음으로 방 세 개를 자세히 구경할 수 있었다. 방은 보통 벽 쪽에 가구가 있고 가운데는 비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안나가 조금 쑥스러워하며 보여주는 그 방들은 빈 공간이 없었다. 꽉꽉 들어찬 물건들 때문에 원래의 가구들은 제 용도를 잃은 지 오래였다. 미로처럼 사람 하나 겨우 통과할 공간 말고는 물건들이 첩첩이 쌓여 있었다. 그것은 기괴한 풍경이었다. 왜 침대가 거실에 나와있는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지금까지는 도로시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도로시조차 제 방에서 쫓겨나 거실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안방 화장실은 샤워실도 따로 있어 도로시를 씻기기에 수월해 보였으나 화장실의 기능을 잃고 창고가 돼 있었다. 각종 욕실용품과 도로시 기저귀와 물티슈 박스가 천정까지 쟁여져 있었다. 매일 배달되는 물건들이 다 어디로 가나 했더니 그렇게 방 세 개에 차곡차곡 쌓여 갔던 것이다. 뜯지 않은 박스도 꽤 나왔다. 세일이라고 샀을 샴푸나 비누 치약 세제 같은 것들은 이미 유통기한을 넘긴 채였다. 충격을 추스른 다음 오드리는 안나와 함께 짐을 정리해 나갔다.


그중에도 으뜸은 안나의 옷이었다. 그동안 오드리가 본 것은 도로시 방 옷장에 있던 안나의 옷들이었다. 그게 다라고 해도 보통 여자에 비해 많은 옷이다. 그런데 안방 붙박이 장 외에도 나머지 방 하나가 전부 옷으로 쌓여 있었다. 캐리어, 리빙박스, 보따리 등에서 끝도 없이 옷이 나왔다. 안나는 모두 처분할 거라고 매일 결심을 다졌다. 방문 수거업체에 넘긴 것만 몇십 킬로 되었다. 재활용수거함에 들어간 것도 김장 봉지로 몇십 개였다. 그 많은 옷 중 안나가 평소에 즐겨 입는 옷은 평상복 외출복 포함하여 열 벌이 채 안 되었다.


옷만이 아니었다. 이사 당일 이삿짐센터 직원들 특히 주방 담당 여자는 시간이 갈수록 얼굴이 하얘져갔다. 부엌 수납장 구석구석에서 끝도 없이 그릇이 나왔다. 안나가 신혼 때 썼다는 이 빠진 찻잔 세트는 정말 심했다. 개봉도 안 한 채 색이 바래진 용품들도 많았다. 이삿날 벌어진 풍경은 물건들이 쓰레기만 아닐 뿐 감당불가의 양이라는 점에서는 티브이에서 보는 저장 강박 노인의 쓰레기집과 다를 게 없었다. 안나는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다른 집에 비해 짐이 많아서 미안해할 법도 한데, 안나는 당당했다. 늦게까지 저녁도 안 먹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팔짱을 낀 채 끝까지 하나하나 지시를 내렸다. 밥값이라도 좀 줘야 되지 않을까 싶었으나 안나는 계약서대로 시킬 뿐이라고 했다. 지금껏 친해서 잊고 있었을 뿐 오드리도 안나한테 그런 존재였다.


안나는 이사를 기점으로 싹 다 정리하고 다시는 쇼핑을 안 하리라 다짐했다. 단골 옷집 하고도 멀어지는 셈이니 가능할 수도 있었다. 버린다고 버렸음에도 이사 간 집의 방 하나는 안나의 옷 박스로 천정까지 쌓였다. 방이 두 개뿐이라 안방에 도로시 침대까지 들여놓으니 방이 꽉 찼다. 도로시 아빠는 이사 당일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거실 창으로 보이는 것은 삭막한 도시 경관이었다. 원래 살던 집은 숲으로 둘러싸여 거실 창으로 사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도로시는 어떤 기분일까. 환경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까. 이제 오드리와 헤어진다는 것을 알까. 오드리는 그날 목격한 일에 대해 일체의 판단도 하지 않으려 안간힘 썼다. 안나로선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쇼핑을 다시 시작해도 할 수 없다. 그 덕분에 안나가 미치지 않고 도로시를 책임질 수 있다면 말이다.


장애인의 헤어스타일은 보통 관리하기 쉬운 숏컷이 많다. 안나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도로시 머리를 어깨까지 길러 재료를 주문하여 펌까지 직접 해주었다. 도로시는 한 자세로 오래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샤워는 혼자 시켜도 머리 감기는 이틀에 한 번 안나와 오드리가 힘을 합하여 감기곤 했다. 드라이 후 헤어젤을 발라주면 도로시의 머리는 자르르 윤이 났다. 여자들은 머리를 감으면 아까워서라도 외출을 한다. 그러나 도로시는 나갈 일이 없다. 그럼에도 안나는 도로시의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도로시의 옷장에는 한 번도 입지 못한 외출복들이 즐비했다. 실제 도로시는 입고 벗기 편하게 단추 여밈의 원피스잠옷에 헐렁한 파자마 바지 차림으로만 지냈다. 물론 그런 옷들도 서랍 가득 쌓여 있었지만 항상 손이 가는 옷은 두세 개뿐이었다. 팬티 역시 서랍 한가득이었지만 기저귀 채우기 편한 팬티 한두 개로 계속 썼다. 하물며 한 달에 한두 번 외출이 다인 도로시라면 외출복 한 벌도 평생 입을 것이다. 그래도 안나는 자기 옷을 살 때 도로시 옷도 아주 가끔 그러나 꾸준히 사 왔다. 절대 닳을 일 없는 도로시의 신발도 종류별로 신발장 한켠에 쪼르르 있었다.


안나는 지금껏 만난 보호자 중 가장 모성이 강한 사람이었다. 도로시를 알뜰살뜰 돌봄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같았다. 그걸로도 안 되는 부분을 쇼핑에서 채웠을 거다. 결국 쇼핑 중독으로 이어졌어도 할 수 없다. 그렇게라도 도로시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니까. 안나한테는 도로시밖에 없었다. 남편은 생활비만 줄 뿐 남이나 다름없었다. 딴 여자와 살림을 차렸대도 상관없다고, 안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 남자로선 그게 최선이라고 했다. 결국 외로운 안나 옆에는 죽음이 아니곤 절대 떠날 리 없는 도로시뿐이었다. 도로시가 할 수 있는 효도는 최대한 오래 살아서 안나한테 삶의 보람이 돼주는 것인지, 빨리 하늘나라로 가서 안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인지, 오드리로선 알 수가 없다.


이사를 간 후에도 안나는 가끔 연락을 해왔다. 도로시한테 행여 도움이 될까 하여 몇 번이나 종교를 바꾸었던 안나가 또다시 의심스러운 종교에 빠진 듯했다. 옛 추억 때문이 아니라 그 단체에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연락이라는 걸 알아차린 뒤 오드리는 안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활보와 이용인(보호자)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계약으로 시작된 관계이기 때문에 계약 종료와 함께 그 인연도 끝나는 것이다. 오드리는 안나의 번호를 차단하며 그 말에 깊이 수긍했다. 다만 허공을 응시하던 도로시의 눈빛만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도로시, 지금도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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