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생각하니, 도로시? (1)

-나는 활보다

by 오드리

오드리의 첫 이용인은 도로시다.

센터 담당자와 처음 도로시네에 갔을 때 그녀는 현관 앞에 앉아 있었다. 도로시는 당시 30대 초반이었는데, 뽀얀 얼굴은 10대처럼 보였다. 기다렸다는 듯 앉아 있었지만, 정작 눈빛은 방문객이 아닌 허공을 향해 있었다. 담당자와 오드리가 큰소리로 인사를 했지만 도로시는 미동도 없었다. 앞을 못 보는 건가 싶을 정도로 도로시는 눈앞의 사람들에 대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아무리 미운 사람도 인사를 하면 일단 받아는 준다. 아님 대놓고 쌩까거나. 지금껏 오드리가 알던 세상의 규칙은 그랬다. 도로시의 무반응은 어디에도 없던 낯선 풍경이었다. 도로시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걸 인정하는 것이 활보의 첫걸음이었다.


담당자는 도로시 손을 잡고 그동안 잘 지냈냐, 오늘 기분은 어떠냐며 친한 척을 했다. 오드리는 그 뒤에서 그냥 쭈뼛거리고 서 있었다. 그때까지 오드리는 도로시도 도로시지만 그 보호자는 또 어떤 사람일지 몰라 잔뜩 졸아 있었다. 그랬는데 주방에서 막 뭔가를 하다가 나오는 도로시 엄마 안나를 보고는 긴장이 풀렸다. 안나는 '아이고 아침 일찍 오느라 고생했어요' 하며 활짝 웃었는데 그 웃음이 오드리를 무장해제시키기에 충분했다. 안나는 곧장 그들을 식탁으로 안내해 차를 내왔다. 이웃 여자들끼리 모여 차 마시듯 유쾌한 수다 타임이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도로시는 원래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저렇게 두 시간 넘게 있을 때도 있다'라고 안나는 예사로이 말했다.


도로시는 뇌병변장애 1급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만 해도 오드리는 경증과 중증 장애의 개념도 몰랐다. 첫 월급에 중증장애수당이란 게 포함된 걸 보고서야, 자기 일이 경증 장애에 비해 힘들다는 걸 눈치챘다. 실제로 안나가 도로시의 하루 일과에 따라 오드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는데 듣기만 해도 힘이 쓰였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자고 있는 도로시를 깨워 소변기에 앉히는 것부터 일과가 시작된다. 막 자고 일어났으니 반사적으로 나오는 소변을 노리는 거다. 그 외에는 기저귀를 한다. 팬티기저귀를 쓰면 좋은데 비용 때문에 일자형 기저귀를 쓴다. 그러다 보니 소변이 샐 때가 많다. 도로시가 체구는 왜소해도 성인이니까 소변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바지를 벗겨 빨아야 한다.


소변을 보고 나면 화장실로 데려가 세수를 시킨 다음 아침을 먹인다. 안나가 정성껏 만들어놓은 반찬 등을 도로시 전용 식판에 담아 거실 탁자에 앉혀두고 먹인다. 그때부터 텔레비전은 종일 켜둔다. 주로 어린이 방송이나 애니메이션 채널이다. 안나가 없을 때도 오드리는 채널을 돌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도로시가 보든 안 보든 안나가 켜놓은 그대로 두었다. 반 주걱 정도 되는 밥에 잘게 다져놓은 반찬을 조금씩 곁들여 먹이면 도로시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씹어 삼켰다. 입가로 침이며 음식물이 줄줄 흘러도 스스로 연하 운동을 한다는 게 어딘가. 아침을 먹고 나면 잠시 쉬었다가 사과와 바나나를 갈아서 간식을 먹인다.


그런 다음 양치를 한다. 도로시 전용 치약으로 살살살 조심스럽게 칫솔질을 한 다음 거즈손수건을 검지와 중지에 감아서 치약을 닦아낸다. 손수건 부위를 바꿔 세 번 정도 반복한다. 도로시는 세면대 앞에 오래 서 있는 걸 힘들어하기 때문에 한 손으로는 허리를 감고 나머지 손으로 그 모든 동작을 재빨리 해야 한다. 누구나 쉽게 하는 양치질이 그토록 비장한 노동일 줄이야. 다 쓴 거즈손수건은 끓는 물에 폭폭 삶아 널어 둔다. 장애인은 치과 치료를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미리 구강 위생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도로시의 양치에 신경 써 달라고, 안나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 놓고 보니 안나는 활보가 일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보호자였다. 양치나 도로시를 사물 취급하지 말라는 등 요구할 건 확실히 하면서도 활보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일, 예를 들면 머리 감기나 외출, 대변 같은 경우는 본인이 알아서 처리했다. 도로시 머리는 이틀에 한 번씩 안나가 감겼다. 격일로 오드리가 쉬는 날 안나가 아예 둘이 벗고 들어앉아 때도 밀고 머리도 감는다고 했다. 또 휠체어가 동반되는 도로시의 외출은 가급적 자제했다. 대변의 경우도 이틀에 한 번 안나가 돌보는 날에 맞춰 관장을 해서 해결했다. 어쩌다 한 번씩 오드리가 대변 수발을 볼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안나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청소나 설거지도 도로시가 사용하는 공간이나 식기 외에는 안나가 마신 컵 하나도 손대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선이 확실한 보호자는 이후 다시 만나기 어려웠다.


점심까지 먹이고 나야 오후 4시 목욕을 하기까지 한숨 돌릴 수 있다. 도로시는 즐겨 앉는 자리가 두어 군데 정해져 있었다. 처음 봤던 현관 앞과 티브이를 볼 수 있는 소파 앞 그리고 주방 식탁 옆이었다. 도로시는 항상 두 다리를 한쪽으로 모으고 색시처럼 앉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상체는 약간 뒤틀린 채로 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때로는 무릎을 세우고 양팔로 감싸 안기도 했으나 그 자세는 불편한지 오래가지는 않았다. 정말 어쩌다 한 번씩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몇 걸음 휘청휘청 걷기도 했으나 곧바로 주저앉았다. 도로시 의지가 아니라 반사적인 돌발 행동이라고 했다.


도로시가 앉아 있으면 오드리도 도로시 옆에 앉아 같이 멍 때렸다. 티브이 채널도 돌려보고 폰이라도 보며 시간을 보내도 됐을 텐데, 그때는 군기가 바짝 든 때라 정말로 도로시만 살피며 지루한 시간을 견뎠다. 또 이전 활보가 책을 가져와서 읽었다며 안나가 못마땅한 듯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 더 조심했다. 어차피 도로시와 마주 앉아 있어도 해줄 건 없는데 그럼에도 대놓고 책을 보며 딴짓을 하는 건 보호자 입장에서 용납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오드리는 개인 용무를 자제했고, 어쩌다 카톡을 확인하다가도 안나가 비번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 놀랐다.


오드리는 이따금 도로시와 눈을 마주치고 오래 쳐다보았다. 정말 털끝만큼도 인지가 없는 것인지 혹시 말은 못 해도 눈빛으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건 아닌지 알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오드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기적이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수없이 질문을 던졌다. 지금 무얼 생각하고 있니, 도로시? 그러나 점점 오드리는 안나가 오는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분명 도로시와 같이 있는데 남의 집에 혼자 멀뚱하게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혼자라고 느끼는 감정은 낯설었다.


오드리가 일을 시작하고 얼마 뒤 안나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이름은 뜬금없이 키우게 됐다고 해서 '뜬금'이로 지었다. 안나는 '뜬금'이와 관련해서는 하나도 손댈 것 없다고 하였으나 눈앞에 훤히 보이는 똥오줌을 안 치울 수는 없었다. 졸지에 개 수발까지 들어야 하나 싶었는데, 나중에는 그 뜬금이가 오드리의 무료한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뜬금이는 공을 던지면 물어올 줄 알았고, 둘이 멍 때리고 있는 발치에 와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로시가 왜 놀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점차 도로시의 특수성을 파악한 뒤로는 뜬금이도 알아서 사색하는 개가 되었다. 도로시 옆에 엎드려 가만히 있으면 얼핏 도로시가 손으로 쓰다듬는 것 같기도 했다. 가끔 쓰레기통을 뒤집어엎어 오드리를 성가시게도 했지만 살아있는 일상의 소란이라 좋았다. 그 법석을 떨 때도 도로시는 사물처럼 거실 한켠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루 일과 중 마지막 중대 임무는 목욕이었다. 도로시 옷을 벗겨 목욕 의자에 앉혀두고 샤워기로 몸을 적시고 샤워타월에 거품을 내서 문지른 다음 물로 헹군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머리 감기는 위험하므로 노련한 안나가 맡아서 했다. 목욕 그 자체로는 힘들 게 없으나 도로시가 언제 돌발 행동을 할 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갑자기 벌떡 일어날 경우 무엇보다 미끄럼 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오드리의 한 손은 항상 도로시의 몸 어딘가를 잡고 있고 한 손으로만 움직였다. 씻고 나와 수건 두 개로 닦이고 로션을 온몸에 발라 옷을 입히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던 도로시도 목욕 후에는 불안해서 그런지 쉬지 않고 사지를 버둥거렸던 것이다. 깨끗이 단장하고 바나나우유를 먹이고 있으면 안나가 외출을 마치고 돌아왔다. 정확하게 오드리가 퇴근하기 삼십 분 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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