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에 물 좀 주세요

-나는 활보다

by 오드리

도로시를 보내고 오드리는 몇 개월을 쉬었다.

활보 센터의 전화를 기다려야만 하는 신세가 처량했다. 이제 막 일을 시작했는데, 매월 10일 통장에 꽂히는 월급의 맛도 봐버렸는데,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가려니 억울했다. 오드리는 체면 따위 무시하고 잊을 만하면 센터에 전화해 새로 일 나온 거 없는지 물었다. 이용인 수는 한정돼 있지만 활보는 꾸준히 배출된다. 오드리는 일도 일이지만 자신의 존재가 잊히는 게 두려웠다. 오드리가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의욕을 보이자 하루는 담당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좀 먼데 괜찮겠어요?"

좀 먼 게 문제가 아니었다. 오드리는 당장 미팅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좀 멀다는 개념이 서로 달랐다는 게 문제였다. 일단 이용인의 집은 오드리가 사는 A시가 아니라 B시였다. 경계 지점일망정 타 지역이라는 데서 오는 정서적인 거리감이 일단 컸다. 버스를 한 시간 타고 가서 내린 다음 걸어서 이십 분은 더 가야 했다. 마을버스는 배차 간격이 길어 없는 셈 치는 게 마음 편했다. 오드리는 자기한테까지 차례가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업무 강도가 세거나 이용인 또는 보호자가 진상이거나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활보가 꺼려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 가려는 집의 경우 통근 거리도 분명 한몫했을 터였다.

"이렇게 멀 줄은 몰랐어요......."

차를 타고 나타난 담당자를 보자마자 오드리는 포석을 깔았다. 아무래도 이번 미팅은 성사되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아유 걱정 마세요 선생님. 그냥 집에 있느니 일단 잠깐이라도 하고 있으면 가까운 데 자리 나오는 대로 옮겨 줄게요." 노련한 담당자의 하얀 거짓말에 오드리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덤빈 건 오드리였으니까.


이용인의 집은 도시 외곽의 오래된 아파트였다. 주인 남자는 문만 열어준 뒤 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담당자는 몇 번 와봐서 익숙한 듯 거리낌 없이 거실로 들어섰다. 그때가 오전 열 시쯤 되었는데, 막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한 여자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원피스 잠옷 차림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었는데, 본인의 의지라기보다 누군가 매만져놓은 채로 고정된 자세였다. 얼굴은 단정하고 차분한 인상이었고, 세상사를 초월한 듯 무심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여자의 몸은 베란다 쪽으로 살짝 틀어져 있었는데 고개를 돌릴 수가 없는지 그 자세 그대로 손님을 맞았다. 담당자는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하며 여자한테 다가갔고 오드리는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남자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남자는 여자 옆에 털썩 앉았다. 남자도 여자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훤칠한 얼굴이었다. 다만 온몸에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고, 방문객들에게 앉으라고 권할 심리적 여유도 없어 보였다. 오드리는 담당자를 따라 소파 맞은편 바닥에 앉았다. 탁자 위는 온갖 물건들로 어지러웠다. 남자는 "이번에는 꼭 좀 오래 해주시면 좋겠네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아유 염려 마세요. 이 분은 성실하기로 소문난 분이라 특별히 선생님 댁에 소개해 드리는 거예요." 담당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말했다. 오드리는 볼이 화끈 달아올라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여자가 루게릭병 환자라는 건 알고 갔지만 남자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은 그저 좀 허약해 보일 뿐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여자의 발병 이후 남자는 야간 근무로 일을 바꾸었다고 했다. 그날도 오전 7시쯤 퇴근해 초등 남매를 깨워 학교에 보내고, 아내를 침대에서 소파로 이동시킨 다음,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잠깐 누운 사이에 두 사람이 초인종을 누른 참이었다. 세수를 해도 남자의 얼굴에 누적된 피로의 흔적은 가시지 않았다.

"이 사람 수발은 제가 다 할 거예요. 그건 걱정 마세요."

남자가 원하는 건 활보 서비스가 아니라 가사도우미 업무였다. 그 집 전체의 청소 빨래 부엌일 등을 원하는 거였다. 활보는 이용인과 관련된 가사만 하게 돼 있다. 이용인이 쓰는 방만 청소하고 이용인이 먹은 식기만 설거지하고 빨래도 이용인 옷만 한다. 그런데 집안일이란 게 그렇게 무 자르듯 딱딱 구분되는 게 아니어서 서로 상황에 맞게 협의를 할 수는 있다. 몸이 굳어가는 여자를 돌보는 것보다는 가사가 나을 수도 있다고 오드리는 생각했다. 무엇보다 지난번 활보가 그만둔 뒤로 공백기간이 길어져 남자는 발을 동동 구르는 입장이었다. 딱하기도 해서 한 달이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슬며시 올라왔다.


그때 남자가 차마 담당자한테도 미리 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저,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이들 아침과 등교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금까지는 회사의 배려로 일찍 퇴근을 하였는데 더는 눈치가 보여 힘들다고 했다. 아이들을 깨워 밥 먹이고 등교를 시키려면 오전 일곱 시까지는 와야 한다. 그 시간 맞추려면 오드리가 집에서 새벽 다섯 시 반에는 나와야 한다. 오드리도 챙겨야 할 가족이 있기에 거기서 더는 이야기가 진척될 수 없었다. 남자는 무리한 요구인 줄 안다며 따로 사례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안 되면 아홉 시까지 와도 된다고, 그냥 한번 생각이나 해 보라고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남자의 절박함이 오드리한테 그대로 전해졌다. 그래서 더더욱 무리였다. 그 책임과 무게를 나눠 가지려면 금전적 보상이나 보통의 직업의식만으로는 안 된다. 사랑이나 이타심이 신념으로 장착돼 있어야 한다. 오드리는 아직 자신이 그 단계는 아니라는 걸 안다. 오드리의 속내와 달리 담당자는 곧 성사될 것처럼 남자와 얘기를 이어갔다. 하긴 다른 활보가 오더라도 이용인의 요구사항을 세세히 알아둘 필요는 있으니까.


"그럼 아침에 남매를 챙겨서 등교시키는 것과 청소 빨래 반찬 만들기 등의 가사가 지금 현재 가장 필요한 서비스라는 거죠? 혹시 더 필요한 서비스는 없으시고요?" 담당자는 마침표를 찍듯 말했다.

"뭐 더 필요한 거 있어?" 남편은 아내를 쳐다보며 물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모처럼 아내 쪽으로 모아졌다. 여자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미세하게 입술이 움직였다. 남편은 아내의 입에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응, 응, 하며 남자는 여자의 말에 집중했다. 몇 초 혹은 몇십 초, 아무리 길어도 일 분은 넘지 않을 그 시간이 다른 세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저렇게나마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오드리는 침을 삼켰다.

"집사람이 화초에 물도 좀 줬으면 하네요......."

모두의 시선이 이번에는 베란다로 향했다. 아침 햇살은 더 환하게 창을 통과하고 있었다. 여자는 화초 키우는 게 취미였던 듯 아담한 베란다는 크고 작은 화분으로 가득했다. 비어 있거나 말라죽은 게 더 많았다. 살아남은 것들도 겨우 숨만 붙어 있는 형상이었다. 그중에서도 해피트리는 이미 한번 대대적인 가지치기를 당한 듯 목대만 삐죽 솟아 있었는데, 그 끝에 여리디 여린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자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나무를 향해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지만 상담 시간은 이십 분이 채 되지 않았다. 남자는 당장 폭탄이 떨어지더라도 이제는 잠을 자야겠다는 표정이고, 여자는 정물화처럼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럼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담당자가 싹싹하게 인사를 했고, 오드리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더 숙였다. 현관에서 보이는 식탁에는 급하게 챙겨 먹고 학교에 갔을 남매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오드리는 팔을 걷어붙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라도 치워주고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일하기로 결정한 게 아닌 이상 더 개입해서는 안 된다. 사정이 딱하다고 한두 달만 봐줄 요량으로 섣불리 시작해서도 안 된다. 하루든 일 년이든 그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똑같다. 지금 스치듯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리는데, 잠깐 한 발만 담갔다가 정이라도 들어 버리면 나머지 발도 뺄 수가 없다. 모순이 많았던 안나와 친해지고 난 뒤 그녀를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던가. 오드리는 식탁에서 얼른 눈을 돌렸다.


밖으로 나와서 담당자는 어떻게 좀 안 되겠냐고 했고, 오드리는 오전 일곱 시 출근은 무리라고 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담당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담당자가 태워 주겠다는 걸 거절하고 오드리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길 옆으로 논밭도 있고 저 멀리 빌딩도 보였다. 시골과 도시 중간쯤의 마을이다. 저 부부가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 무렵에는 더 외진 시골이었을 것이다. 젊은 신혼부부는 이 동네에서 기반을 잡기로 마음먹었겠지. 아이들이 자라면 각자 방 하나씩 줄 수 있는 집으로 이사 가려고 저축도 하고 있었겠지. 느닷없이 병마가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이제 그들에게 미래는 사치다. 그저 환자 중심으로 우울한 가족의 일상이 반복되겠지. 그래도 각자의 삶을 놓지는 말기를. 아이들은 슬퍼도 씩씩하게 학교에 가기를. 오드리는 진심으로 바랐다. 남편이 좀 짠하긴 하다. 그래도 당사자인 아내에 비할까. 오드리는 여자에 이르자 더는 아무런 상상도 할 수가 없다.


활보와 이용인의 첫 만남은 소개팅처럼 풋풋하지 않다. 이용인은 원하는 서비스를 최소로 말하고, 활보는 그 말을 최대로 부풀려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먼지만 좀 치워 주면 돼요'는 집안 청소를 매일 깨끗이 하라는 뜻이다.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인데, 조건이나 협의보다 직감이 정확할 때도 있다. 어딘지 싸한 느낌이 들면 결국 끝이 안 좋을 때가 많다. 하지만 활보도 이용인도 크게 선택권은 없다. 서로 필요한 타이밍이 맞아 만났으면 그게 인연이려니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 집은 모든 조건이 불리하다. 그런 조건을 수용할 수 있는 활보가 나타나기까지 그들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오늘처럼 불편한 만남을 가져야 할지. 남자는 더 버틸 에너지가 없어 보였는데. 오히려 여자의 표정이 체념일 망정 더 편안해 보인 것은 착각일까. 그 부부의 잔상이 오래갈 것 같아 오드리는 머리를 흔들었다. 저 멀리 버스가 보이자 오드리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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