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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Dec 18. 2020

Rag & bone 인턴쉽과 좁은 패션계

10년 차 뉴욕인 에세이

패션학도를 꿈꾸고 계신다는 어느 분께서 나의 글을 읽어주신다는 댓글을 보니 얼른 그다음 챕터가 쓰고 싶어 졌다. 긴 글을 재밌게 읽어주심에 감사하며, 오늘은 rag&bone에서 인턴 했던 경험들을 나눠보고자 한다. 


rag&bone은 Meatpacking District에 위치하고 있다. 내가 알기론 그곳이 제일 처음 오픈한 스토어일 텐데, 안에 직원들이 아침에 가서 커피 한잔 살 수 있는 카페가 있고,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Design Studio가 있다. 꽤나 낡은 건물에,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사람이 손수 운전하는 아날로그함이 rag&bone 스타일과 맞아떨어진다. 인테리어도 딱히 인테리어라 할 것 없이 평범하고, 간소한 나무 테이블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사람들 분위기도 다른 디자인 브랜드 회사에 비해 chill 하고 힘줘서 꾸미지도 않았다.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 때 한 인턴이었다. 이때 사실 Marc Jacobs에 인터뷰를 보러 갔다가 붙어서 가기로 돼있었는데, 그다음 주였나 rag&bone에서도 붙었다고 오라고 해서, Marc Jacobs에 "죄송해서 어쩌죠, 저 갑자기 한국 가게 되어 못할 거 같아요"라고 거짓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paid 인턴쉽이 흔치 않았는데, 돈을 안주는 Marc Jacobs에 비해 rag&bone은 시급을 주었다. Paid 인턴쉽은 돈 받아서도 좋지만 이력에도 좋았다. 공짜로 일해주는 것보다 돈을 받고 일하는 게 더 책임감 있는 자리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패션 바닥이 얼마나 작냐면, Marc Jacobs에서 날 인터뷰했던 사람이 한국 언니였는데, 그 언니를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다시 만나 친해졌다. 며칠 전에 안부 겸 문자가 왔었는데, 다음 주에 연말 파티하자고 브루클린에 있는 언니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rag&bone에서 나의 보스 또한 한국 언니였다. 미국인 남자 친구가 있고 꽤나 뉴욕에서 오래 산 언니였는데, 졸업을 앞두고 있던 나에겐 이미 경력직으로 일하고 있던 언니가 멋져 보였다. 그 언니가 이 회사 오기 전에, 꽤나 어렵게 첫 회사 생활을 배웠다고 말해줬었는데, 그 이유에서인지 같이 일할 때 rude한 면도 없잖아 있었다. 인턴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자기 뭐 하고 있다고 팔을 쫙 펴 손바닥으로 인턴 얼굴을 가린 다음 "쉿" 한다거나, 뭐가 마음에 안 들면 싸늘한 눈빛으로 내리까기를 서슴지 않았었다. 같이 인턴 한 미국 친구랑 근처에 있는 멕시칸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그 언니가 너무 싫다고 울면서 이야기할 정도로 차가운 존재였다. 나도 당시는 사실 밥맛이라 생각했었지만, 일하다 보니 인턴이 너무 답답하면 그럴 수 있었겠다 싶다. 이 언니랑은 뜬금없이 한국 압구정 로데오역에서 우연히 만나고, 일 년 후에 뉴욕 아트 페어에서 만나고, 이삼 년 후에 이태리 출장 갔을 때 플로렌스 기차역에서 만났다. 세상 참 좁다. 


rag&bone 디자이너들은 Alexander Wang에 비해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 않았지만, 더 가족 같은 분위기를 지향했다. 당시 우리 VP는 Creative Director인 Marcus Wainwright가 자기 브랜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한 초기 멤버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회사에서는 보기 드물게,  VP 결혼식에 Creative Director가 가서 축하도 해주고, 오래된 친구처럼 미팅도 편하게 했다. 새로 온 디자이너들은 물론 미팅하거나, CD한테 프레센트 할 때면 열심을 다했다. 비교적 작은 오피스라 디자인팀과 Product Management팀이 바로 옆에서 일하고 소통도 잦았다. 그때 나한테 가끔씩 일 주던 Product Developer가 있었는데, rag&bone에서만 5년 정도 일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2년 후, 당시 내가 일하고 있던 3.1 Phillip Lim 로비에서 이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났다. 당시 rag&bone 사정이 어려워져서 대대적으로 해고를 했는데, 그때 해고당한 후 PD 자리로 면접을 보러 온 날이었다. 나에게 일주던 사람이 바로 옆자리에서 동등한 partner로써 일하게 된 시간이었다. 나름 친해져서 집에 놀러 가서 애기도 보고, 3.1 Phillip Lim에 사직서 쓰고 다른 일자리 구하고 싶다고 해서 포토샵이랑 일러스트를 가르쳐주기도 했었다. 


언제 어디서 던 지 어느 누구에게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언제 어디서 어떤 관계로 다시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부하가 내일 나의 위에 서있을지 모른다. 누군가가 나의 부하였을 때에 내가 부당하게 대했다면, 어느 시점 그가 나의 윗사람이 되었을 때 뒤늦게 아무리 아부해봐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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