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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Dec 07. 2020

FIT 뉴욕 패션 대학 생활과 인턴쉽

10년 차 뉴욕인 에세이

처음 뉴욕에 도착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화에서 보여준 화려한 조명들과 패셔너블한 사람들을 상상하며 왔는데 막상 공항에 내려 맨해튼으로 들어와 보니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부터 지독한 냄새나는 노숙자들까지 처음 보는 풍경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처음 지하철을 탄 날은 두 번 다시 뉴욕에서 지하철은 안 타리라 다짐할 정도로 위생상태가 바닥이라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 살던 미국 시골 동네가 그리웠다. 할 게 없던 시골 동네가 지겨워서 떠났건만, 청결한 거리에, 푸른 잔디 그리고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친절함과 동화책에만 나올 거 같던 예쁜 동네 풍경까지, 모든 게 그리워졌다. 뉴욕은 내가 알고 익숙한 미국이 아니었다. 백인보다 히스패닉 계열이 더 많이 보이고, 여유로이 그다음 사람 문 잡아 주는 매너 있는 미국인들은 이곳에는 없었다. 모두가 다 바삐 걸었고 아무도 길거리에서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지 않았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무친 지 한 달이 지났을까, 이 모든 낯섦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츰 거부할 수 없는 뉴욕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일단 뉴욕은 없는 게 없는 도시이다. 문화생활부터 음식점들까지 갖가지 다양한 옵션들이 펼쳐져 있고, 대부분의 미국 주 들과는 다르게 밤늦게까지 많은 스토어들이 문을 열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앞에 나가서 사 오면 된다. 두 번은 못 탈 거 같던 더러운 지하철 또한 커피 한잔 사서 들고 탈정도로도 익숙해져 버렸다. 학교 캠퍼스 역시 내 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우중충한 색이라 실망했었는데 다니다 보니 더럽게만 보이던 회색이 뉴욕과 딱 떨어진다며 정감마저 가기 시작했다. 


학교에는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있었다. 엄마 가방 훔쳐왔는지 몇천만 원짜리 버킨백을 들고 다니는 이제 갓 19살 남자애서부터, 캐릭터 분장을 한 건지 핑크색 가발 쓰고 두꺼운 플랫폼 신발 신고 다니는 백인 여자애까지, 가끔 친구들이랑 캠퍼스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는 게 재밌을 정도였다. "패션"하면 "경쟁"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일학년 때 같이 살던 패션 디자인과 전공하는 룸메이트는 "오늘의 친구도 내일의 경쟁자"으로 볼 정도로 같은 반 학생들 사이에 기싸움이 심했다. 내가 전공한 액세서리 과는 다행히도 학생들이 chill 해서 그런 고민 없이 같은 반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다. 수업들 또한 웬만큼 열심히 하면 따라갈 수 있었고, 좋은 점수도 받을 수 있었다. 대학교 생활을 통틀어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딱 한 가지가 있는데, 학교에서 하라는 것만 해서는 절대 앞서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 다른 학생들처럼 대학교 1, 2학년 때는 수업만 따라가면 잘하는 거 겠거니 하며 수업만 열심히 들었다. 감사하게도 그 당시 내가 친해진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는 2학년 때부터 인턴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인턴은 3, 4학년 때부터 하도록 학교에서 회사랑 이어주는데 이 친구는 남들은 생각도 못할 때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그 친구의 영향으로 인턴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일주일에 두 번 무급 인턴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인턴은 돈을 한 푼도 안 줬는데 정말 말 그대로 열정 페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턴쉽은 학교 수업을 넘어 사회의 맛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력서에 꼴랑 FIT 재학 중이라는 한 줄 밖에 쓸 게 없던 시절, 첫 인턴은 나도 처음 들어보는 작은 브랜드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그 첫 인턴쉽을 시작으로 이력서에 쓸 이력이 늘어나고 그 경험들이 합쳐져서 훗날 나를 더 좋은 회사들로 이끌어줬다고 믿는다.


인턴쉽만 하고 학교일은 대충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학생으로서 학교 일은 기본적으로 잘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일만 잘해서는 사회에 나가서도 잘하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그럴 때를 대비해 사회에 나가는걸 조금이라도 경험하게 해주는 제도가 인턴쉽이다. 학교 프로젝트가 많거나 시험기간이면 두 가지를 같이 병행하는 게 힘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인생은 결국 balance 라 하지 않던가. 그 전날 학교 컴퓨터 랩에서 프로젝트한다고 밤을 새도, 그 다음 날은 내가 하겠다고 사인 업한 회사에 일을 하러 나가야 한다. 이 단순하고도 고단한 레슨을 일찍 깨우치지 못한 학교 동료들은 졸업했을지 언정 상대적으로 좋은 직장을 갖지 못했다. 우리 과가 학교 내에서 경쟁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에서 조차 그럴 거라는 건 큰 오산이다. 미국 내에 패션 브랜드는 생각보다 꽤 한정돼 있다. 그 한정된 브랜드들에 뉴욕에서만 뿐만 아니라, 다른 주에 있는 패션학과 학생들, 넘어서 다른 나라에 있는 비슷한 전공자들이 모두 내가 보고 있는 그 자리를 노리는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보다 결국 내가 한 스텝이 빨라야 내가 원하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나와 주위에 있는 친한 친구들은 감사하게도 이 레슨을 일찍 깨달아 졸업 후 각자 만족스러운 직장에 취업할 수 있었다.


집중해야 한다. 뉴욕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도시이다. Meatpacking 에서의 Girl's night out, 클럽 가는 날, 다 좋지만 그 많은 유혹들 속에서 내가 이 도시에 왜 왔는지 목적의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유혹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술이 될 수 있고, 마약이 될 수 있고 혹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대학생활하면서 낭만과 재미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당신이 정해놓은 계획에 지장을 주면 안 된다. 수많은 유혹들이 당신 눈 앞에 펼쳐질 때면, 부디 기억하길 바란다 뉴욕이라는 도시에 어떤 꿈을 가지고 왔는지, 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있었는지, 또한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어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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