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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Dec 02. 2020

뉴욕 패션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

10년 차 뉴욕인 에세이

한 달 후면 뉴욕에서 디자이너로써 일한 지 6년 차가 된다. 이제 막 졸업해서 사회 초년생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닌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젠 앞에 "Assistant" 혹은 "Associate"이 붙지 않는 레벨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올라왔나 싶으면서도 버티다 보니 어느새 여기에 와있네 싶다.


남자 친구의 권유로 이 사이트를 알게 됐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제일 좋은 습관 중 하나라 자부하는 것이 다이어리를 쓰는 것인데 이 공간에서 또한 내 경험을 회상하며 읊조리듯이 내가 거쳐온 과정들을 써 내려가 보려 한다. TV에서 보여주는 환상만이 아닌 더 사실적인 이벤트들과 그 뒤에 얽혀있는 현실적인 감정들을 잘 전달할 수 있기를.


현재 나는 뉴욕에 있는 패션 브랜드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 패션 또는 삼성의 제일 모직에 준하는 뉴욕의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자부하는 브랜드이다. 이 회사로 온 지 삼 년 차가 되어가는데 코로나때 여기서 일하는 건 정말 불행 중 감사한 일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거의 대부분의 패션 회사들은 망했거나 아니면 직원들에게 무급휴직을 줬거나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역시 6개월간 3번에 걸쳐 대대적으로 해고를 했다. 어제까지 밤늦게 같이 연락 주고받고 일하던 사람들이 그다음 날 없어져 있다는 것은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상 플랫폼으로 일한 지 어느덧 반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영상 키고 이것저것 설명하는 것이 다소 어색했지만 이제는 9시 30분에 딱 맞춰서 일어나 얼굴도 안 씻고 안경 하나 끼고 영상으로 보스랑 회의하는 게 굉장히 익숙해졌다. 늦어도 7시 30분에는 일어나 초스피드로 준비하고 매일 아침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던 시절이 아주 까마득해졌다. 다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행히 우리 회사는 내년 중반까지는 재택근무를 할 것이라고 공고를 해놓은 상태라 마음 놓고 게으른 회사생활을 즐기고 있다. 코비드 이후 회사 생활을 그리기에는 아침 늦게 일어나 요거트 먹으면서 간단한 회의 후 하루 종일 책상이나 침대에서 일하고 중간중간 보스와 체크하고 6시에 컴퓨터를 닫는 다소 언드라마틱 한 삶을 살고 있어서 코로나전의 회사생활을 나눠보고자 한다.


먼저 대기업은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다르게 work life balance가 있다. 그다음 날에 미팅이 있거나 데드라인이 바로 코앞이 아니고선 6시 퇴근이 일반적이다. 지금은 내가 이 회사에 근무 중이라 브랜드 이름을 밝히진 못하지만 예전에 일했던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낱낱이 까발릴 것이다, 8-9시 전에 퇴근하는 것이 기적이라 말하게 되는 내가 겪어온 패션계의 현실을. 이러한 현실이 내가 디자이너적인 pride를 내려놓고 예쁜 회사보다 더 큰 회사를 찾게 된 이유다. 또한 대기업은 복지도 연봉도 훨씬 좋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 역시 부모님 도움 없이 완벽한 독립을 이룬지는 불과 2-3년 안됐다. 그것도 이 곳에 왔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회사 건물이나 동네도 좋고 야근하면 저녁비 택시비도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예를 들면 지금 직장은 저녁이 한 사람당 30불, 택시비는 상식적으로 100불 이하로만 나오면 되지만 나의 첫 직장은 저녁이 15불이 넘으면 안됐고 택시 역시 그래서 멀리 사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야근해도 택시를 탈 수가 없었다. 그중에도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점은 해외 출장이 훨씬 더 자유롭다. 작은 브랜드 회사들은 짜서 경력이 많이 없으면 출장도 잘 안 보내줄뿐더러 비행기도 제일 싼 거 찾아서 타야 되는 수고로움이 있다. 나는 여기서 일하면서 일명 "Research Trip"으로 유럽 출장, Linea Pelle라고 재료들 source 할 수 있는 국제적 페어를 가기 위한 이태리 출장, 아시아 이곳저곳으로 공장 가서 재품들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감독 출장을 다녀왔다. 비행시간이 길면 비즈니스를 타도 되고 호텔이나 매일 먹는 음식들의 값도 비교적 덜 엄격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편리성이나 여행할 수 있는 즐거움을 떠나서 나는 출장이 회사가 회사뿐만 아닌 회사원들의 발전을 위한 일종의 지원이라고 생각하는 데 소규모 브랜드들은 이미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디자이너들의 최대치를 빼먹을 작정이라면 대기업은 그나마 직원들에게 투자하고 키워내야 하는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대기업이라고 꽃밭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무슨 그렇게 시스템이 복잡한지 회사 내에 레벨도 많고 룰도 많다. 한국에서 흔히들 생각하기로는 미국은 나이나 선후배 안 따지고 서로 공평한 자리에서 일하리라고 생각한다. 큰 오해다. 물론 존댓말이 없는 관계로 편안하게 말하지만 새로운 사람들 들어오면 잘하는지 못하는지 기싸움 그리고 나보다 레벨이 낮은 사람한테 본인 포지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은근한 눈치싸움은 미국 회사 역지 못지않다. 미팅도 워낙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레벨에 따라서 본인이 일한 것에 관한 미팅이라 할지라도 초대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반 사이고 결국에는 바로 위에 보스 그리고 Vice President의 기분상태를 눈치껏 잘 보며 행동해야 회사생활이 편하다. 디자이너들은 남자건 여자건 예민한 게 기본적으로 깔려있어서  moodswing이 심하다. 윗사람들 기분 맞춰주다 보면 한결같던 내 성격도 어느새 조금씩 감정적으로 되어있을 때를 발견하게 된다. 대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무도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아닌 걸 절대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세일이 안 좋으면 결국에는 내 탓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Creative Director, Senior Vice President, Vice President of Merchandise, Vice President of Design 모두 다 마찬가지이다. 옛날에 한국에서 광고한 모두가 아니오 할 때 예스할 수 있는 그런 용감한 사람은 없다.  Going with the flow라고도 하는데 분위기 보고 서로서로 눈치 보며 그래 그 정도면 괜찮네 하며 미팅을 끝낸다. 뒤에서는 이게 뭐냐며 욕을 바가지로 해도 미팅 들어가서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며 그 부분에 대해 아예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뒤에서 merchandiser 걔네가 뭘 아냐고 욕을 하다가 그 후 같이 미팅하면 "아 그래 아주 좋네요"라고 연발하는 우리 보스나 VP도 익숙해지다가도 진절머리 날 때가 많다. 난 내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도 내 브랜드를 내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난 첫 번째 회사 수칙은 "솔직하게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기"로 정할 것이다. 상사 기분이 상할까 봐, 나중에 잘 안되면 내 책임이 될까 봐, 쓸데없는 걱정들로 인해 솔직하지 못해서 놓쳐버리는 기회들이 너무 많다. 결국 그 놓친 기회들이 뭉쳐 회사의 발목을 잡다 못해 넘어뜨릴 날이 있을 거라고 본다.


한마디로 뉴욕 디자이너로써의 삶을 정의하자면 "나쁘지 않다"이다. 갓 졸업했을 때는 연봉도 박봉에 일하느라 거의 매일이 바빴지만 커리어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견딜만했고, 6년이 지난 지금 열정은 이미 식은 지 오래지만 레벨도 연봉도 올라 내가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 가며 살고 있다. 얼마 전까지 코로나 블루를 겪으며 잠시 동안 침울했었지만 생각해보면 뉴욕서 살면서 매주 다른 레스토랑에서 브런치 먹고 내가 좋아하는 갤러리도 집 앞에 있어 걸어 다닐 수 있고, 답답하다 싶으면 센트럴 파크 걷다 오는 지금 이 현재가 나쁘지 않다. 물론 직장인의 한계를 깨달으면서 결국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라는 고민은 끝이 없지만 일도 삶도 즐길 수 있는 지금, 조그마한 스튜디오라도 나의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이 정도면 만족한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이 이 글을 비롯해 앞으로도 나의 글을 읽게 된다면, 말해주고 싶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믿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올꺼같지 않은 시간들이 곧 온다고 말이다. 다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눈떠봤는데 그다음 날 크리에티브 디렉터가 돼있고, 어느 파티 가서 누구한테 잘 보여서 갑자기 VP 돼 있는 화려하고 달콤한 환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주 가끔 어디선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와 내 주변에서는 본 적이 없다. 한 순간에 벌어지는 판타지는 없지만 한국인의 긍지로 열정 있게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샌가 한 숨 돌리는 시간들이 온다. 그런 시기를 맞이하면 결국 앞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무엇인가 머리 싸매고 고민하게 되는 국면을 맞이하지만, 그 일은 미래를 위해 넣어두고 남들보다 조금 더 열정 있게 시작해보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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