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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Dec 07. 2020

Alexander Wang 인턴쉽과 패션쇼

10년 차 뉴욕인 에세이

대학교 2학년 때 두 개의 인턴쉽을 끝내고 3학년이 되었다. 3학년이 되면 학교에서도 인턴 하는 걸 권하기 시작하며 회사들이랑 이어주는 카운슬러가 있다. 카운슬러랑 회사에 가서 인터뷰하듯이 준비된 포트폴리오랑 이력서를 가지고 찾아가서 Mock 인터뷰를 본다. 인터뷰 후 포트폴리오와 이력서 작성에 관한 조언들을 준 후 내가 지원하고 싶은 5개의 회사를 대면 그 회사들의 인사과 이메일 주소를 내게 건네준다. 그럼 내가 그 이메일로 인턴을 구하고 있다고 작성 후 resume, cover letter, sample works 붙여 보내면 된다. 


당시에 내가 받을 수 있던 5개 회사들은 기억이 안 나지만 Alexander Wang은 그중에 없었다. 카운슬러가 이메일을 가지고 있지 않는 유일한 회사였다. 지금은 한물간 면이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 브랜드의 역사상 가장 핫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한때 Alexander Wang 가방은 뉴욕 어딜 가나 보였다. 나를 포함한 내 주위 사람들도 그 브랜드 가방 하나씩은 꼭 가지고 있었다. Alexander Wang이 발렌시아가 Creative Director로 임명된 그 무렵 나는 뉴욕에서 제일 핫 한 그 회사에서 인턴 하리라 다짐했다. 먼저 해당 브랜드 웹사이트에 들어가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주소를 모두 수집 후 Linkedin으로도 들어가 연락할 방법이 있나 찾아봤다. 그리고 그 여러 개의 이메일들에 이력서와 샘플을 보냈는데 답이 오지 않았다. 인턴을 구해야 하는 데드라인은 다가왔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이주에 한번 꼴로 "전에 제 이메일 보실 기회가 있으셨나 연락드립니다"라는 식의 이메일을 여러 번 보냈다. 마지막 이메일을 쓰고 난 며칠 후, 반지하의 이자카야에서 저녁 먹고 있는데 Alexander Wang 로고가 써져 있는 이메일이 띵동 하고 핸드폰에 떴다. 반지하라 인터넷이 잘 안 터져서 박차고 일어나 지상으로 올라가 이메일을 체크했다. 귀찮아서일까 아님 나의 노력에 감동받아서일까 그다음 주에 인터뷰 보러 오라는 메시지였다.


Alexander Wang은 색깔을 미니멀하게 쓰는 브랜드 identity를 가지고 있다. 회사 사람들이 어떤 스타일일지는 예상했지만 회사 인테리어조차 동일한 identity를 뿜어 낼지는 예상 치 못했다. 중국계 미국인인 Alexander Wang과 CEO를 감당하고 있는 그의 형 영향 인지 건물은 소호 바로 옆 China town에 위치하고 있다. 뉴욕에 놀러 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China town은 그리 미니멀 하지도 시크하지도 않다. 근데 이게 웬걸 건물 문 색부터 검은색이더니 건물에 안에 바닥, 벽, 책상 모든 게 다 검은색이었다. 그날이 인턴으로 채용된 후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이었는데 나눠준 물병이며 파일까지 전부 검은색이었다. 그게 다가 아니다. 회사 분위기를 지키기 위해 고수하는 회사 방침이 있다. 옷은 neutral 색만 입어야 하고, 꽃이나 책상에 갖다 놓는 물건도 전부 neutral 한 색이어야 한다.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본인 identity를 지키는구나 했지만 나중에 갈수록 too much라는 생각이 들었다.


Alex는 꽤나 낯을 가린다. 파티를 좋아해서 실제로 보면 에너지가 넘칠 것 같지만, 회사에서는 굉장히 조용하고, 낯을 가리다 못해 본인이 모르는 사람이면 바로 옆에 지나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복도에서나 엘리베이터에서나 둘이서만 있어도 계속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지, 누가 먼저 본인한테 인사하지 않는 한 고개를 들지 않는다. 나쁜 사람인 거 같진 않지만,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재수는 더럽게 없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착했다. 각 팀 안에서 높은 레벨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처음 리포트한 디렉터도 루이뷔통을 거쳐 지방시에서 꽤나 알아주는 디자이너였고, 스카우트가 돼서 온 분이었다. 그 쯤되면 Alex처럼 인턴을 깔볼 법도 한테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많이 가르쳐주려고 했었다. 나중에 인턴이 끝나고 몇 해가 흘러 내가 고마웠다고 이메일을 쓴 적이 있었는데, 이런 이메일을 줘서 고맙다고 답이 왔었다. 소규모 하이앤드 브랜드에 들어가면 이런 좋은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대단한 work ethic을 볼 수 있다. 나는 비록 일주일에 두세 번 가는 열정 페이 인턴이었지만, 미팅 준비를 위한 디자이너들의 노력과 한시도 허투루 쓰지 않는 민첩함과 부지런함을 엿보고 배울 수 있었다.


Alexander Wang에서 인턴을 하면서 두 번의 패션쇼 백스테이지에서 일했다. 패션쇼 당일날은 물론 그 전날 피팅서부터 전쟁의 시작이다. 보통 패션쇼 열리는 날 일주일 전부터 피팅을 하는데, 쇼 바로 전날에 스타일리스트가 전부 다 바꿀 수도 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바로 전날에 하는데, 뉴욕에 있는 공장을 섭외해가며 밤을 새며 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말이 되게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임무이다. 나는 아직 학생인지라 새벽 늦은 밤까지는 남지 못했다. 대신 쇼 당일날 일찍부터 가서 열심히 백스테이지를 도왔다. 쇼가 오후 3시 시작이라도 대부분 아침 9시까지는 쇼장에 간다. 미리 가서 그 전날에 싸논 제품들이 도착하면 제품들을 다시 풀고 비상시에 필요한 대책용 박스들도 하나하나 손 닿기 쉽게 세팅 해 놓는다. 모델들이 하나둘씩 도착해 머리와 화장을 하기 시작하고 중간에 워킹 리허설을 한다. 리허설이 끝나면 머리와 화장을 끝마치러 가는데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모든 소품들을 꺼내 모델들 자리에 놓고 맞는 사이즈인지 소품들 상태는 괜찮은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모델들이 하나 씩 들어오면, 옷 입혀주는 도우미 아주머니들 도움을 받아 모델들이 옷을 입기 시작한다. 우리는 옆에서 우리 제품이 올바른 방법으로 입혀졌나 확인하고 아무런 흠이 없나 체크해야 한다. 흠이 있으면 챙겨 온 박스들 안에 있는 비상용품들로 단 몇 분 안에 해결해야 한다. 백스테이지는 그야말로 chaos다. 누구는 옆에서 바느질하고 있고, 누구는 다림질하고 있고, 누구는 신발 밑창에 미끄럼 방지 붙이고 있고, 여럿이 뛰어다닌다. 


언급했던 것처럼 당시 Alexander Wang은 뉴욕에서 제일 각광받는 브랜드였다. 유명인 친구들도 많던 Alex는 값비싼 모델들도 많이 고용했는데 그 수많은 모델들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Karlie Kloss이다. Kloss는 모델들의 모델이었다. 188cm에 육박하는 키에 흠잡을 때 하나 없는 완벽한 몸매는 입을 떡 하니 벌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인턴들이 유명 모델들을 보고 같이 사진 찍고 싶어서 오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들은 바빠 죽겠는데 옆에서 유명인사들만 관심 있어하면 디자이너들이 티를 안 내려고 해도 속으로는 꼴불견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런 인턴이 되기 싫어서 아무리 유명한 모델을 봐도 돌보듯이 했다. Karlie Kloss는 나도 모르게 넋 놓고 구경하게 됐지만 말이다. Sensitive한 장소와 시기인 만큼 사진 찍는 것도 제한돼 있는데 와서 사진만 찍어대는 인턴 또한 되기 싫어서 쇼가 끝마치고 뒷처리까지 다 끝나기 전까지는 사진도 찍지 않았다. 열심히 하면 옆에서들 알기 마련이다. 비록 사슬의 제일 밑인 인턴이지만 마치 내 일인 양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바로 위 상사가 잘했고 고맙다고 여러 차례 말해주었다.


내가 참여했던 두 쇼는 성공적이었다. 백스테이지에서 일하느라 전체를 앞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뒤에서 라이브 티비로 보다가 쇼 중간에 잠깐 앞에 나가서 볼 기회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세팅과 빵빵한 음악들 사이에서 우리가 일한 제품들을 입고 모델들이 멋지게 워킹을 하는 모습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만 소름이 돋은 건 아니 었는지 쇼가 끝나고 박수갈채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막을 내린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수많은 매거진들에 찬사의 리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에겐 첫 쇼들이었던 만큼 좋은 리뷰를 받아 마음이 벅차올랐다. 내가 이 멋있는 쇼들에 작지만 한 부분이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할 수 있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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