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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Dec 24. 2020

역사 속으로 사라진 Opening Ceremony

10년 차 뉴욕인 에세이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full time freelancer offer를 받았다. 대학 졸업생들은 대부분 두 종류로 갈린다. 4년 동안의 대학생활이 끝났으니 휴식기를 갖는 사람들 vs 바로 직업을 구하는 사람들. 나는 들어오는 대로 인터뷰를 보고 합격통보를 받아서 졸업하자마자 거의 쉴틈 없이 바로 취직을 했다. 좀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눈 앞에 놓인 기회를 놓치기 아까워 바로 시작했다. 그때는 아쉬워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다행이었다. 학교 졸업했다고 좀 쉬겠다고 하다가 아예 쉬게 돼버리는 경우를 옆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쉬는 시간 동안 배낭여행 다니며 세계를 더욱 넓게 보고 다양한 방면으로 유용하게 보낼 수 있겠다만, 이상하게 돌아와서 취직을 하려고 하는 동료들은 대부분 취업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Opening Ceremony 오피스는 China town과 Soho 경계에 있었다. 리테일 스토어로 시작했던 Opening Ceremony는 2002년 처음 열었던 스토어에서 한 블록 떨어져 마주 보고 있는 건물 3-5층을 렌트해서 오피스로 썼다. 작은 오피스에 맞게 직원 규모도 작았는데 주중에 일하다 말고 건물 루프탑에 모여서 맥주 마시며 서로 친하게 지냈다. Creative Director인  Carol Lim과  Humberto Leon는 각각 판매와 디자인 역할을 나눠서 분담했다. 둘 다 당시 Kenzo의 Creative Director으로도 활동하고 있었을 때라 3분의 1은 둘 다 파리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돌아오는 날에는 오피스의 분위기가 아무래도 더 날이 섰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Kenzo 팀이 우리 오피스에 와 Humberto에게 디자인을 프리센트를 했다. Opening Ceremony에서 일하던 몇몇 디자이너들은 실력이 좋고 본인이 원하면 Kenzo로 가기도 했다. 바로 위 보스가 내가 오기 전에 있던 디자이너가 Kenzo로 발령 나서 일하다가 Hermes로 이직했다고 알려주었다. 파리 진출에 로망이 있었는지 그녀 또한 내가 이직하고 몇 개월 안돼서 Kenzo로 갔다.


나는 액세서리 부서의 보조 디자이너로 일했다. 가방, 신발, 선글라스를 다뤘는데 컴퓨터로 스케치했던 rag&bone와는 다르게 여기서는 손으로 하는 걸 선호했다. 손으로 스케치 여러 개를 한 후  Humberto에게 보여주면, 그가 제일 마음에 드는 디자인들을 고른다. 그 후 포토샵으로 옮겨서 칼라링을 한다. 수십 개의 칼라 옵션들 중 Humberto가 제일 마음에 드는 몇 개의 색깔들만 살아남는다. 이미 많이 추려진 디자인들을 merchandiser들이 또 한 번 추려 단단하고 경쟁력 있는 collection을 꾸린다. Pre-Seasons들은 lookbook을, Main-Seasons들을 런웨이를 했다. 브랜드 특성상 콜라보레이션을 많이 했는데, Gentle Monster와 함께 디자인한 한 선글라스는 비욘세 스타일리스트의 추천이라며 잡지에 실렸었다. 굉장히 화려했는데 그때 직원 할인받아 안 사놓은 게 후회가 된다. 


같이 일했던 두 명의 보스가 채식주의자였다. 그때만 해도 아직 어릴 때라 자극적이고 맛있는 것만 찾았지, 샐러드는 입에도 안 대던 나였는데 이 둘때문에 Sweetgreen이라는 샐러드 집을 처음 알게 됐다. 나 혼자만 매번 다른 데 가기 뭐해서 졸졸 따라가서 샐러드 사 온 게 기억난다. 점심에 샐러드만 먹으면 한 3-4시쯤 되면 배가 무척 고프다. 야근을 매일 하진 않았지만, 공장에 샘플들 넘기는 날이면 밤 10시까지는 남아서 일했는데 간식 사느라 몇 번을 나갔다 왔는지 모른다. 


한때 Opening Ceremony는 뉴욕 패션인들의 성지였다. 소호에 있는 스토어 가서 쇼핑 후, 로고 박힌 천 쇼핑백 하나 들고 폼 재며 담배 피우는 풍경이 2010년 초중반 뉴욕 패션 역사를 대변했다. Opening Ceremony 메인 브랜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도전적인 패션을 선보이는 브랜드들의 다양한 아이템들을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담한 스토어였다. 몇 년 전, 한 Alexander Wang 디자이너가 초대한 클럽 파티에 갔다가 Humberto를 우연히 만났다. 오래전에 짧은 기간 일한 거라 못 알아보겠지 했는데, 나를 보자마자 이름을 부르며 잘 지내냐고 어디서 일하냐고 물어보더라. 안부하고 타이밍 좋게도 그날 Opening Ceremony 드레스를 입고 간지라 깨알같이 "사장님 브랜드 입고 왔어요" 어필해준 후 헤어졌다. 오랜 시간 함께하진 못했지만 같이 일하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며 좋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2020년 들어 모든 Opening Ceremony 스토어들을 닫는다는 소식에 안타까웠다. 하루빨리 Opening Ceremony 리테일 스토어들도, 메인 라인도 다시 일어서서 통통 튀는 독특함을 자신 있게 표출하는 패션들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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