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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Mar 07. 2021

3.1 Phillip Lim 회사 생활

10년 차 뉴욕인 에세이

Co-CEO Wen Zhou도 나를 잘 봤겠다, 앞으로 나의 회사 생활은 밝으리라 기대하며 입사를 했다. 시작한 주가 패션쇼 준비하는 피팅 기간이었는데, 오자마자 오리엔테이션은 커녕 피팅할 때 모델들이 신을 신발 정리에 돌입됐다. 내 프랜치 보스도 양심은 있었는지 첫날부터 설명 없이 정신없이 바빠 미안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 당시 우리 팀 구조는 Head Designer 내 프랜치 보스, Assistant Designer 나, 그리고 옆에서 제품 관리를 담당하는 Product Developer가 있었다. Creative Director는 알겠다시피 필립 림이었고 그의 오른팔에 나를 인터뷰했던 VP가 있었다. 일 년에 여자는 네 개의 시즌, 남자는 두 개의 시즌을 했는데 내가 막 시작했을 때 남자 런웨이를 접고 Lookbook으로만 대신하겠다며 남자 라인을 축소하기도 했었다. 


두 명의 디자이너와 한 명의 PD인 우리는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들을 감당하기 했기에 쉴 새 없이 일했다. 업무량이 많다 보니 조금만 한눈팔아도 실수하거나 아니면 중요한 정보를 빼먹을 수 있었는데, 당시 있던 PD가 헤매는 광경을 입사 두 번째 날부터 목격했다. 샘플을 깔아놓고 디자이너들과 멀천다이져들이 Wen과 미팅하는 날이었다. 이 스타일은 가격이 얼마인지, 만드는데 드는 돈은 얼마인지, margin 이 얼마나 남는지 등 Wen이 멀천다이져들한테 물어보다 우리 PD한테도 이것저것 질문읋 하기 시작했다. 그 전날 밤 9시까지 책상에 틀여 박혀서 일하던 PD는 차마 준비하지 못한 질문이었는지 종이만 휘적거리며 답을 못하며 우물쭈물해댔다.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Wen은 이렇게 준비 없이 미팅에 들어와선 되겠냐며 쓴소리를 하며 미팅을 끝냈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 책상 앞에서 종이들 속에서 파묻혀 샌드위치만 겨우 먹던 PD는 내가 입사한 그 두 번째 주에 해고를 당했다. 어느날 아침 어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한 PD는 갑자기 들이닥친 IT사람들의 지시로 회사 컴퓨터, 건물 패스 등 모든 회사 소유들을 넘겨준 채 내쫒기듯 밖으로 에스코트당했다. PD의 서랍 속 남겨진 물건들은 인사과에서 박스에 다 담아 집으로 보내줬던 것 같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full time 직장에 입사를 했건만, 두 번째 주가 채 지나가 기도 전에 바로 옆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이 잘려서 쫓겨나가는 일은 반가운 경험이 아니었다. 이때 회사의 분위기를 깨닫고 전에 있던 Opening Ceremony로 돌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시회초년생이었던 나는 회사의 분위기를 분간할 수 있는 짬빱이 없었다. 


오로지 내가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함 하나로 열정으로 똘똘 뭉쳐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내가 이 스트레스 가득한 직장 생활의 바닥을 보기까지는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먼저 직속 상사인 프랜치 보스가 인성이 개판이었다. 파리에서 온 그녀는 본인이 파리 출신이라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견해를 이럴 수 있겠구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너는 틀렸어"라고 지적해대기 일수였다. 마치 내가 예술과 디자인의 본 고장에서 왔으니 내 말이 옳아라는 느낌이랄까. 또한 밑 사람을 가리키고 양육하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는데 내가 뭘 물어보면 그런 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눈치를 준다던가 처음 시작한 내가 뭘 몰라서 실수를 하면 디자이너 스튜디오 안에 사람들 다 있는데서 소리를 지르며 뭐라 해대는 것이었다. 일하면서 알게 됐는데 내 자리에 10개월을 채운 사람이 없었다. 그 안에 퇴사하던가 잘리기 일수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라도 손 털고 나갔어야 했는데 무슨 오기에서였는지 그때 그만두면 내가 포기하는 것 같아 꿋꿋이 참았다. 3개월 차 됐을 때부터 한 달 한 달이 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매일 달력을 열어봤던 거 같다 일 년을 채우기까지 얼마나 남았나.


욕이 절로 나오는 프랜치 보스와 그나마 연대감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패션쇼 끝나고 애프터 파티에서였다. 나는 딱 보면 조용하고 특히 필립림에서 일했을 때에는 하도 뭐라 구박을 받아서 소심히 보일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한국인의 특성상 나는 놀 때는 정말 신나게 노는데 여기서 필립림과 프랜치 보스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놀랐었다. 술 먹고 모델들과 춤추고 난리법석 정말 신나게 놀았다. 술믈 많이 마시다 보면 피지도 않던 담배도 한 번씩 뻐금 뻐금 폈었는데, 그날 미친 듯이 놀고 프랜치 보스와 밖에서 담배 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긴 시간 동안 이야기 하지는 않았음에도 그 날 이후 회사를 가보니 나에게 좀 전보다는 유대감 있게 대하기 시작했다. 


디자인 일은 재미있었다. 디자이너 스튜디오다 보니 우리가 원하는 거, 이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볼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고 내가 원하는 그 한 룩을 만들기 위해 직접 샘플도 만들고 공장이랑 왔다 갔다 하며 완벽하게 마음에 들 때까지 우리 자신과 공장을 challenge 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미팅을 한날이었다. 생각처럼 디자인이 안 나와 프랜치 보스가 헤매고 있을 때 내가 옆에서 하나를 그렸었는데 필립이 돌아오더니 이게 뭐냐고 좋다 했다. 바보같이 순수했던 나는 "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려봤어"라고 설명하며 어필을 했었어야 했는데 프랜치 보스가 한 것 마냥 가만히 공을 돌려주었다. 그녀가 된 사람이 었다면 올리비아가 했다며 언급을 했을 텐데 그런 인격이 잘 형성된 보스는 디자인계에서 찾기 힘들다고 깨닫는다. 그 다자인은 그 시즌 베스트셀러로 많은 매거진들에 언급되었다. 나만이 알고있는 나의 첫 베이비다.


매 시즌 멀천다이져가 현재 어떤 상품이 잘 팔리는지, 앞으로 뜰 스타일은 무엇인지 분석을 해 디자인들에게 디렉션을 알려준다. 거기에 필립의 인풋까지 덮혀져 그 시즌의 콘셉트를 잡고 리서치를 시작한다. 필립은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다르게 빈티지에 별로 공감하지 못했는데 때문에 영감 받는 것들을 찾기 위해 빈티지뿐만 아닌 다방면으로 예민하게 관찰할 수 있는 눈이 필요했다. 리서치를 하고 처음 스케치를 할 때는 정말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뿜어 내야 했다. 빠른 속도로 여러 개의 스케치를 해 VP와 상의하에 걸러진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필립과 미팅을 하면 필립이 "이건 좋다", "이건 별로다", 아니면 "이 방향이 아니다 다시 다 해라" 등의 디렉션을 준다. 여기서 일하는게 기가 빨렸던 또 다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의 변덕이었다. 매 시즌 두 번의 샘플을 볼 수 있는 라운드가 있다. 매 라운드에 시간과 공을 들여가며 샘플을 만들어 놓으면, 파이널 샘플 데드라인 바로 몇일전에 필립이 방향을 틀기 일쑤였다. 앞에 몇 주 동안 공들인 샘플들은 나가리되고 단 며칠 안에 그 몇 주 동안 했던 양에 비례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시기가 오면 평소 하던 8-9시 조기퇴근은 꿈도 꿀 수 없다. 새벽까지 회사에 남아서 무조건 데드라인을 맞춰야 한다. 내 삶이 아예 없던 시기들이었다. 언제 퇴근할지 몰라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수 없었고 주말에도 일하기 일쑤여서 내 삶에서 다른 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아예 없었다. 그렇게 이 길이 오른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일만하다 보니 어느새 일 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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