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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Dec 06. 2020

FIT 뉴욕 패션 대학 준비 과정

10년 차 뉴욕인 에세이

나는 꽤나 늦게 디자이너의 길을 걷겠다 다짐했다. 고등학교로 유학을 오면서 영어 따라가랴, 적응 안 되는 새로운 학교나 동네에 적응하랴, 고생할 때라 또 다른 도전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점차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질 무렵 미래 직장이나 대학에 대해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FIT라는 세 글자가 정말 기적처럼 내 머릿속에 찾아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기본적으로 패션을 좋아했다. 예술을 하시는 엄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내가 입는 옷들을 주위 친구들이나 친구 엄마들이 독특하거나 예쁘다고 칭찬해주곤 했었다. 중학교 때 사춘기를 겪으면서 한참 꾸미고 치장했었는데, 그때 "패션을 해볼까나" 생각하며 혼자 알아본 학교가 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다. 뉴욕에 있는 디자인 학교가 그 당시 내가 있던 자리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보여 다이어리에 조사한 프린트 물을 고이 접어 놨었다. 그랬던 그 학교가 어느 대학을 가야 하나 머리 깨질 듯이 고민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그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남들 주로 하는 과를 가야 하나 고민하며, 여름방학 때 한국 나가면 다니려고 미리 SAT학원을 끊어놔 달라고 엄마께 부탁드렸었다. 엄마와의 통화 이후에도 사실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내가 결국에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학교가 어딘지, 무슨 과를 가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내가 하는 일을 평생 열정 있게 할 수 있는지가 알고 싶었지만 알지 못했다. 내가 과연 평범한 사무직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계속해서 의구심이 들던 찰나, 몇 년 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세 글자 "FIT"가 떡하니 떠올랐다. 그다음 날 엄마께 말씀드렸다 "SAT 학원이 아닌 디자인 학원을 다녀야 할꺼같아, 나 패션디자인이 하고 싶어"라고 말이다.


대부분 디자인과를 가기 위해서는 꾸준히 미술을 하거나 짧아도 1-2년이라는 기간은 두고 포트폴리오를 준비를 한다. 미술학원을 오랜 기간 다니며 준비한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경쟁이 심한 디자인학교들에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미술수업 때 하는 미술 말고는 손을 논지가 꽤 됐었다. 디자인을 하겠다 결정도 대학교 원서 넣기 전 남은 마지막 여름방학에 한 거라 그 3개월 안에 무조건 포트폴리오를 완성시켜야만 했다. 많은 조사 끝에 압구정 쪽에 있는 3개의 미술학원으로 추렸다. 대학을 넘어 나의 미래가 걸려 있다 생각하니 학원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에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첫 번째 학원을 일주일 다녀보고 신뢰가 안가 두 번째 학원을 방문했다. 선생님들을 만나고 한참 엄마와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내 그림 실력을 테스트해보겠다고 하시더라. 정확이 뭐를 그리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20-30분 흘렀을까 원장이 내가 자신 없게 그려놓은 그림을 가지고 나가 상담을 하는데 학원을 다니면서 실력이 늘 수 있지만, 내가 디자인학교를 가기에는 그림에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말했다. '역시 내가 너무 늦은 건가..' 상심해하며 나오는 길에 엄마가 말씀하셨다. "신경 쓰지 마. 오랜 기간 동안 그림 안 한 애가 그 고작 몇 분 그린 거 가지고 어떻게 판단하니. 다른 학원 가면 돼." 엄마의 이 한마디가 내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듯이 든든했다. 하지만 이 무조건적인 믿음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입학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입학 후 동료들이 예술을 하겠다 선언한 후 가족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수고한 노력과 시간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며, 디자인의 "디"자도 안 꺼내던 내가 어느 날 아침 전화 와서 뜬금없이 디자인학교를 가겠다고 했을 때 두 번 물어보지 않고, "그래 도전해봐"이라 첫 순간부터 믿어주고 지지해주신 나의 부모님께 지금에 와서야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결국 남겨진 하나의 학원을 찾아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두 학원에 남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이 학원이 미국 미술대학 유학 보내는 걸로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커리큘럼도 체계적으로 잘 짜여 있고 선생님들도 이미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들을 졸업하신 분들이라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학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기간 안에 딱 딱 집어주셨다. 그렇게 3개월 동안의 여정이 시작됐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해야 했기에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매일을 학원과 집만 왔다 갔다 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갔다. 다양한 클래스들 중에서 특히 처음으로 해본 누드 크로키를 재미있어했는데, 계속해서 서있어야 하는 피로함은 까맣게 잊은 채 몇 시간 동안 집중하던 매주 수요일이 생각난다. 좋아하면 실력도 빨리 느는지 원장님이 내 크로키들을 보시고 대학교 3학년 학생들 수준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그림을 안 한지는 오래지만 엄마의 영향으로 예술과는 언제나 밀접한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학원을 다니며 순수 미술 하는 것을 즐겼다. 내 성향을 알아보신 선생님들이 본인들이 나온 Cooper Union 지원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해주셨다. 솔깃했지만 그때 당시 순수 미술을 전공으로 하면 직업이 너무 한정적이 돼버린다 생각했고 작가는 어제든지 내가 원하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고민 끝에 지원할 학교들을 추렸는데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 있는 학교를 가고 싶다는 생각에 FIT, Parsons, 그리고 SVA 딱 세 군데만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알찬 여름방학을 보낸 후 미국으로 돌아와 하나씩 지원 하기 시작했는데 그날의 설렘은 지금도 가슴 한편에 남아있는 듯하다.


세 곳 다 붙었고 SVA, Parsons 두 학교 다 훌륭한 학교이지만 난 당연스럽게 FIT를 가겠다 결정했다. 일단 SVA는 그래픽 디자인으로 알아주는데 나는 그래픽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두 학교에만 원서 넣기 그래서 하나 더 넣어본 것도 있었다. Parsons는 알아주는 패션 학교지만, 학비도 비쌌고 그 당시 나는 늦게 시작한 터라 옷 패턴 뜨는 거는 상상도 할 수 없고 하기도 싫었는데 당시 파슨스에는 전공이 비교적 broad 해서 꼭 패션디자인은 액세서리를 하고 싶던 옷을 하고 싶던 꼭 옷을 해야만 했었다. 반면에 FIT는 세분화된 액세서리 디자인 과가 따로 있어서 그 전공을 하면 옷 패턴을 할 필요 없이 바로 가방과 신발 등 액세서리에 포함되는 스타일들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늦게 준비하는 포트폴리오이니 만큼 나는 옷보다 세분화된 가방이나 신발 디자인의 패턴이 나에게 더 친숙하고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학원에서 이미 FIT를 가고 싶어 악세서리과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만들 만큼 그 학교에 대한 나의 애정은 당시 특별했다. 제2의 캘빈 클라인이 될 수 있겠다 희망에 찼던 나는 흥분한 마음으로 FIT 행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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