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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04. 2023

<농촌 체험하기>마지막 농사 일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쉰 두번째 이야기

  닭장 안에는 닭이 4마리만 남아있었다. 닭을 키우기 시작할 때는 32마리였다. 닭 부장이었던 최선생님이 정성 들여 키워서, 우리들에게 달걀을 나누어 주고 삶은 닭으로 회식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한 페이지의 추억을 남겼던 닭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과정이 마무리되는 9월 어느 날 닭장 철거 작업을 진행했다. 남은 4마리의 닭들은 방생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드릴로 닭장의 기둥들을 고정시키고 있던 나사 못들을 뽑아내면, 다른 사람들은 닭장의 지붕 그물을 제거하였다. 기둥을 하나씩 뽑아나가면서, 1시간쯤 걸려서 해체되었다. 4월달에 닭장을 지을 때는 반나절이상이 소요되었는데, 분해작업은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부수는 작업이 쉬운 법이니까. 


  남자 동료들이 닭장을 철거하는 사이에, 여자 동료들은 텃밭을 정리하였다. 전장군님 형수님과 장미씨는 아직 수확을 하지 못했던 텃밭의 땅콩을 캐냈다. 닭장 철거작업을 마무리한 남자 동료들이 텃밭 정리작업을 거들었다. 텃밭에 심어져 있던 상추, 고추, 오이, 호박나무들을 뽑아내고, 멀칭 비닐을 벗겨냈다. 

  하얀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듯이, 동료들은 지난 6개월동안 비어있던 밭에 다양한 과채류를 채워 나갔었다. 이제 우리들에게 상추, 고추, 오이 등 풍성한 식단을 만들어주었던 땅에게 휴식을 줄 차례이다. 그래야만 내년에 들어오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3기 교육생들에게 풍성한 식탁을 만들어줄 수 있는 튼실한 토양이 만들어질 것이다. 


    텃밭 정리작업을 마무리하고 며칠 뒤, 이번에는 꽈리고추 밭 정리작업을 진행했다. 당초에는 마지막 수확을 하고 나서, 고추 밭을 정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면서, 고추들이 모두 얼어버렸다. 

  우리는 먼저 꽈리고추를 지탱해줬던 노끈과 지지대를 제거해줬다. 그리고 난 후에 꽈리고추 나무를 뽑아나갔다. 원래 예초기로 나무를 베어내려고 했는데, 나무가 잘 뽑혀져서 그냥 손으로 뽑아나갔다. 그만큼 땅이 부드러웠던 것이다. 멀칭 비닐을 벗기고, 이것들을 지지대와 함께 트럭에 옮겨 실었다. 

  이렇게 우리들에게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려준 꽈리고추와 이별을 고했다. 매출을 올려준 만큼 우리가 투자한 시간도 제일 많았던 작물이었다. 때론 힘들어도 다 자란 고추를 수확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할 때도 있었다. 한때 4kg 한 박스에 6만원이 넘는 경매가격을 기록하면서, 동료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올릴 수도 있었다. 많은 추억을 만들어준 꽈리고추와의 이별이 아쉬운 듯, 동료들은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었다. 


  원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울긋불긋 단풍이 시작되는 산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우리들이 다가온 겨울철을 준비하는 동안, 나무들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잎들을 떼어내기 전에, 노랗고 빨간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매년 풍성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휴식의 계절로 들어가기를 반복해서 그런지, 나무들은 무심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집에서 쉬고 있으려니까, 카톡방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닭장 해체작업을 하면서 방생했던 닭 4마리가, 다시 닭장이 있던 장소로 돌아와서 나란히 앉아있는 사진이었다. 닭장에 갇혀 있을 때는 틈만 나면 근처 산으로 도망갔던 닭들이었다. 그런데 닭장을 철거하고 나니까 오히려 그 자리에 돌아와 앉아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닭들도 귀소본능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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