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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14. 2023

<농촌 체험하기>강원도 지역 발표회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쉰 네번째 이야기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였다. 내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점차 긴장감이 강해져 갔다. 긴장하면 의례히 화장실에 가고 싶다. 그날도 나의 앞 사람이 발표할 순서가 다가왔을 때,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의 벽면에 걸린 거울로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면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자리로 돌아왔을 때, 앞 순서인 홍천 삼생마을 사무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한참 발표를 진행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침착하게 무대위로 올라가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진행자에게 마이크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마이크 소리가 너무 작아서, 뒷자리에 앉아있던 심사위원들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불만을 제기했었다. 바뀐 마이크를 들고 연단 아래로 내려가서 발표를 시작했다. 심사위원들뿐 아니라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발표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긴장된 마음을 억누르면서, 준비해온 발표 내용을 하나씩 꺼냈다.


  2022년에는 전국적으로 119개 마을에서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9월달에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면서, 10월부터 각 도별로 프로그램의 성과 발표회가 진행되었다. 강원도 지역의 발표회는 10월 27일로 정해졌다. 도별 발표회를 통해서 뽑힌 5개 마을이, 11월 중순에 세종시에서 진행되는 전국 발표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세종시에서 발표하게 될 5개 마을 중에서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을 주는 시상식도 하게 된다. 본선이라고 할 수 있다. 본선에 진출한 마을들의 사례는 이곳 저곳의 책자와 인터넷에 실리면서, 내년에 다른 마을들이 운영할 때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내가 속해있던 횡성군 산채마을에서는 최우수상을 목표로 발표준비를 해왔다. 작년에는 장려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목표를 더 높게 잡은 것이다.


  지난 9월부터 내가 성과발표회 준비를 맡게 되었다. 회사에서 발표 경험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식 교육생이 아닌 청강생의 신분으로 6개월 과정을 밟아왔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그만큼 드문 사례여서, 발표할 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나는 9월초에 발표자료 준비팀을 꾸렸다. 작년에 성과발표회를 준비하였던 김대표님과 사무장, 발표 경험이 많은 장미씨, 그리고 최근까지 회사를 다니면서 발표 자료 작성에 익숙한 신반장 부부까지 총 6명으로 구성되었다. 준비팀이 발족한 날, 김대표님이 둔내면의 한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었다. 잘 준비해달라는 의미였다. 작년에는 김대표님과 사무장이 중심이 되어서 발표준비를 했는데, 올해는 운영진이 아닌 교육생 중심으로 준비를 하기로 했다. 실제 교육을 체험한 사람들이 발표를 하는 것이, 생생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첫 미팅에서 발표자료의 storyline을 만들 key words를 뽑아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둔내면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ideation session을 가졌다.

  “오늘은 전체 story의 구조를 만들어 볼까 해요. 첫 미팅이니만큼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부정적인 feedback은 가급적 자제하고, 대신 살을 붙일 수 있는 아이디어나 key words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회의를 진행할께요.”

  준비팀을 꾸려가는 내가 회의 진행을 맡았다. 

  “작년에 참가했던 마을들은 주로 어떤 내용들을 발표했나요? 특히 최우수상을 받은 팀은 어땠나요?”

  장미씨가 발표회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작년의 사례를 물어봤다. 그러자 김대표님이 발표회장의 분위기와 심사기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발표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특히 장미씨와 신반장 부부가 많은 아이디어를 이야기해주었다. 약 2시간 정도 진행된 회의에서 발표자료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팀 구성원들은 첫 만남에서 매우 생산적인 결과를 얻은 것에 만족해했다. 그후로 우리는 여러 차례 만나면서, storyline을 구체화했다. 강원도 지역 발표회가 있기 직전에는, 우리끼리 산채마을의 카페에 모여서 리허설도 진행했다. 유럽 여행을 간 신반장 부부와 오대산 월정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교장선생님 부부를 제외하고, 교육에 참가했던 나머지 동료들이 모두 참석했다. 근 한달 여 동안 준비작업을 진행하면서, 발표자료 준비팀원들은 모두들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발표자료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부담을 갖기보다는, 커피를 마시거나 술 한잔을 곁들이면서 즐겁게 논의를 진행했다. 그만큼 참가자들의 집중도도 높았다. 

  

  원주시 인터불고 호텔의 2층 workshop room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 회의실에는 오십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와 책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오전에는 군데 군데 빈 자리가 많았는데, 오후에 본격적으로 발표 시간이 다가오자 빈 자리가 하나 둘씩 채워졌다. 오늘 발표할 강원도 8개 마을의 운영진들이 자리하였다. 다른 마을과 다르게, 우리 산채마을에서는 교육생들도 많이 참석하였다. 내가 발표하는 것을 응원하기 위해서, 둔내면에서 온 것이다.

  맨 앞의 무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첫번째 발표 자료가 띄워져 있었다. 맨 뒤쪽에는 10여명의 심사위원들이 앉아서, 발표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춘천에서 온 첫번째 발표자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무대로 걸어 나왔다. 회의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응원의 박수를 힘차게 보내줬다. 그렇게 ‘농촌에서 살아보기’ 강원지역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당 마을의 사무장들이 발표하였다. 20분이라는 제한시간 내에 각자의 마을과 프로그램 소개를 하였다. 대부분의 사무장들은 발표자료를 만드는 것이나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발표자료도 주로 MS Word 형태였고, 몇몇 마을만이 사진을 첨부하는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우리는 동영상을 여러 개 포함시키면서, 좀 더 생동감 있는 내용으로 꾸몄다. 동영상 편집에 능숙한 신반장이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다른 마을의 발표자들은 너무 많이 긴장한 탓에, 자료를 그냥 읽어 나가는 형식으로 발표를 하였다. 나는 각 페이지마다 이야기할 내용을 모두 외웠다. 덕분에 크게 실수한 것 없이, 심사위원 및 방청석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eye contact을 하면서 발표를 할 수 있었다.

  발표회장의 마이크 상태가 좋지 않아서, 맨 뒤에 앉아있던 심사위원들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불만을 여러 번 제기했다. 호텔의 기술자가 와서 마이크를 손봤지만, 크게 개선되지 않은 상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발표순서에 마이크를 교체해주기를 요청했다. 상태가 훨씬 좋은 사회자의 마이크로 발표를 할 수 있었다.


  그날 8개팀의 발표는 당초 예정시간을 넘겨서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심사위원장의 총평이 끝난 후에, 참석 마을에 대한 평가 점수가 발표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우리 마을이 100점 만점에 97점을 받은 것이다.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였다. 2위가 된 마을이 77점대 였다는 것과 비교해서도, 월등하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동료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6개월동안 진행된 프로그램 내용이 충실했다는 것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대표님을 포함한 운영진들, 그리고 교육생들이 모두 열심히 프로그램에 임했다고 평가받은 것이다.

  지역 발표회에서 1등을 하면 본선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본선에 진출한 팀은 내년도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 더군다나 우리 산채마을은 전국 발표회에서 최우수상을 노려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본선 진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대표님이 삼겹살을 쏘겠단다. 우리는 다 같이 둔내면의 한 삼겹살 집으로 이동해서 기분 좋은 자축 파티를 열었다. 

  이것을 유종(有終)의 미(美)라고 하는 가 보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6개월여동안 대표님을 비롯한 운영진과 교육생들 간에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10명의 교육생들이 수십년 동안 살던 도시를 떠나서 강원도에서 처음 만났고, 제2의 삶을 살 준비를 같이 진행했었다. 서로 갈등이 있었지만, 정도 많이 들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공감의 폭도 넓어졌다. 서로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강원도 발표대회에서 1등까지 차지하여, 굉장히 행복하게 끝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이제 세종시의 전국 발표대회만을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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