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우승 비법> 감독 선임의 3가지 기준이란?

- 한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나의 첫번째 글

by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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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중순 어느 날 오후, Anderson은 나를 자신의 집 2층 서재로 안내했다. Anderson은 K구단의 감독 후보들중 한 명이어서, 이날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를 그의 미국에 있는 집으로 초청한 것이다.

나무계단을 이용해서 2층에 들어선 순간, 한쪽 벽면에 사슴을 비롯한 동물 박제들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겨울철이 되면, 취미로 사냥을 즐긴단다. 눈 쌓인 로키산맥에 올라 사냥했던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들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서재에는 서너 개의 길쭉한 테이블들이 각각의 벽면을 따라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다양한 책과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우리가 소파에 둘러앉았을 때, 소파 테이블 위에도 두툼한 세 개의 파일이 눈에 띄었다. K구단의 이름이 붙여진 파일들이었다. 감독 후보 인터뷰를 앞두고, Anderson은 많은 준비를 한 것 같았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줘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승부를 가져올 수 있는 전략적 역량

나는 Anderson과의 인터뷰를 위해서 3가지 범주의 질문들을 준비했다.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 및 전술 역량, One Team으로 만들 수 있는 리더십 역량, 그리고 외국인 감독으로써 한국 선수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테이블에 놓여진 K구단의 파일들을 살펴보면서, 자연스럽게 첫번째 주제부터 질의 응답이 이루어졌다.

“K구단을 공부하면서, 홈런에 편중된 득점력과 많은 수비에러 등의 문제점은 이미 파악하셨겠군요. 감독이 된다면, K구단을 어떻게 강팀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나는 K구단의 장단점을 감안한 강팀 구축방안을 알고 싶었다.

“K구단이 장타력은 좋지만, 출루율이 낮아서 득점력이 많이 떨어지죠. 출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번트 등 small ball 전략*과 two strike plan*을 접목시킬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detail한 수비 연습을 통해서 수비 error를 최소화하고, double play 연습을 강화해야 할 것 같아요.”

(* small ball 전략: 점수를 내기 위해 번트, 희생플레이나 도루 등 다양한 작전야구를 수행하는 것

* two strike plan: two strike 이후에는 방망이를 짧게 잡고 타격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

Anderson은 마치 이 질문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자신있는 말투로 답변을 하였다. 이후 강팀 구축방안과 관련된 질의 응답은, 최대한 detail한 내용까지 이어졌다. Anderson이 제시한 주요 방안들을 집중적으로 질문하는, 압박 면접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출루율을 높이기 위한 선수들의 타격 방안, 경기중 small ball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timing이나 상황, 선수들이 two strike plan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연습방법, 그리고 detail한 수비연습 방안 등등.

Anderson과의 인터뷰 내내 진지하면서도 긴장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사실 그는 미국 감독을 역임했을 뿐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단에서도 감독을 지내면서 우승까지 경험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의 현직 수석코치로 활동 중이었다. 그래서 K구단이 감독직을 제안해도,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 화려한 경력으로 인해서 높은 연봉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결렬될 수 있더라도, 일단 그를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최소한 Anderson이 다른 미국 후보들의 역량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당시 K구단은 5~6년동안 리그 중위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리더십의 획기적인 변화없이는, K구단이 우승을 노려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KBO리그에서 경험이 많은 감독들은 아예 후보군에 제외시켰다. 대신 국내의 젊은 감독 후보들과 함께, Anderson을 포함한 미국의 감독 후보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국내의 감독 후보들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후보들 중에서는 K구단에서 선수와 코치생활을 오랫동안 한 이경진코치도 있었다. 이경진코치는 1군뿐 아니라 2군 선수들 개개인의 역량까지도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강팀 만들기’를 위해서 1군의 약한 포지션에 대한 선수 스카우트와 함께, 육성계획까지 포함된 실행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유격수 포지션에 FA나 트레이드가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득점 루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장타력보다는 타격의 정확도가 높은 선수를 키워내야 합니다. 또한 강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한 지키는 야구가 이루어져야,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경진코치의 ‘강팀 만들기’ 계획은 주로 개별 선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에 비해 Anderson은 감독의 전략 및 전술역량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었다. Anderson이 개별 선수들의 능력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경진코치와 Anderson의 ‘강팀 만들기’ 계획은 서로 보완될 수 있는 의미있는 방안들이라고 생각했다.


(2) One Team을 만들 수 있는 리더십

K구단의 ‘강팀 만들기 전략’에 대해 Anderson과 1시간이 넘는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간 후, 나는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Anderson이 어떤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이끌어갈 수 있는 지가 궁금했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을 내놓았다.

“나의 리더십은 ‘존중’과 ‘신뢰’를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꾸준한 대화를 통해서 이 두 가지를 만들어 갑니다.”

그는 선수와 코치들 상호간에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가 형성이 되었을 때, 좋은 성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을 위해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야구관이나 경기 운영방식을,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단다. 대신 많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Anderson은 감독으로서 선수들에게 신뢰를 느낄 때는, 선수들이 그의 지시를 잘 따라 주었을 때가 아니란다. 그것 보다는 선수들이 자신의 역할을 잘 해줬을 때이다.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가 홈런을 치고, 주루 play가 좋은 선수가 도루를 성공했을 때이다. 이렇게 스스로의 장점을 살려나갈 때, 선수들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가족간의 사랑이 저의 인간관계의 근간이 되고 있지요.”

가족간에 서로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야구단 프런트, 더 나아가 야구단과 팬들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국 프로야구선수들의 절반이상이 이혼을 한단다. 일년에 6개월이상을 부인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으니까,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Anderson의 가족 사랑은 이러한 환경에서 나온 것이다.)

전략적인 마인드가 아무리 좋아도, 선수들이 감독을 믿고 따르지 않으면 팀웤이 무너진다. 특히 요즘 세대의 선수들은 옛날과 같은 수직적인 관계와 소통구조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감독이 가부장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으로 신뢰하는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수평적인 리더십이란 관점에 대해서 미국 감독 후보들에 비해 국내 후보들이 낯설어 했다. 국내 감독 후보들이 과거 1세대나 2세대 프로야구 감독들에 비해서, 선수들과의 소통이 원활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부장적 리더십을 가진 선배 감독들로부터 야구를 배워왔기 때문에, 여전히 이들에게는 그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다. 국내 감독 후보중의 한명인 오경필코치와의 인터뷰중 한 장면이다.

“감독은 선수단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감독 중심의 강한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경기 결과는 감독이 책임지기 때문에, 감독이 흔들림없이 선수단의 운영이나 훈련 방향을 이끌고 나가야 해요. 그리고 코치와 선수들은 이것을 따라주어야 하고요.”

KBO 리그와 같이 감독중심의 선수단 문화가 보편적인 환경에서는, 오경필코치의 이야기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되게 되면, 감독의 개인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선수단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가 작동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감독이 팀을 떠나는 순간, 선수단이 무너지게 된다.

나는 선수들과 코치들이 주연이 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선수와 코치들이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감독을 원했다.

감독의 수평적 리더십 역량은 비단 선수단 내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감독은 프런트와도 수시로 소통을 해야 하는 위치이다. 야구 경기를 통해서, 구단의 추구 가치를 실현해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자신의 야구 스타일을 완고하게 주장하면서, 프런트를 소통의 대상이 아닌 설득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감독들이 있다. 이럴 경우 감독과 프런트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서, 파국을 맞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구단이 야구단 운영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과 목표를 이해하고, 이것을 자신의 야구관과 연결시킬 수 있는 감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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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화적 차이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소통 역량

마지막으로 나는 미국인으로서 문화가 다른 한국 프로야구단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 지가 궁금했다.

“한국 선수들은 미국 선수들과 문화나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데,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세요?”

Anderson은 ‘존중’과 ‘신뢰’라는 key words를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우선 한국 문화를 존중하고, 한국 선수들의 생각하는 방식을 이해하도록 노력할 겁니다.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동양 음식을 좋아하고, 동양의 관습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그러면서 본인이 일본의 프로야구팀에서 감독으로 활동했던 시절에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해주었다.

“일본 야구선수들은 훈련을 많이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특히 경기전에 너무 많은 훈련을 해서, 정작 경기중에는 힘이 부치는 모습을 자주 봤죠. 그래서 가장 훈련을 많이 하는 유격수와 ‘훈련의 양과 질’에 대한 대화를 시작했어요.”

일본 야구선수들이 경기에 최대한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훈련의 양과 질을 바꾸는 데 1년가까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Anderson은 그만큼 인내력을 가지고 선수들과 대화를 해나간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의 스포츠단과 같이, 감독의 권한이 강한 환경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외국인 감독을 뽑을 때는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좋다. 선수와 프런트를 이해할 수 있어야, 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지 않는다. 그러려면 왜 선수들이나 프런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적인 차이가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해주고, 꾸준한 대화를 통해서 신뢰를 쌓아가야만 팀웤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날 무려 3시간이 넘게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아직 예민한 주제인 연봉수준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은 채, 정원에 있는 바비큐 장소로 갔다. Anderson과 내가 생각하는 연봉수준의 차이가 클 수도 있기 때문에, 좀 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때마침 텍사스의 빨간 저녁 노을속에서 하얀 양떼구름이 흘러가는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Anderson은 부인과 함께 우리를 위해서 다양한 고기들을 구워주었다. 아름다운 저녁 풍경과 함께 와인을 곁들인 바비큐 파티는,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날 연봉 수준에 대한 합의는 이룰 수가 없었다. 예상대로 그의 기대하는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연봉 수준에 대해서는 이후 추가적인 협의를 거쳐서야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날 인터뷰에서 나는 한국과 미국 감독 후보들간의 명확한 차이를 인식할 수 있었다. KBO리그와 K구단을 잘 알고 있는 한국 후보들이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 있는 가능성 측면에서는 앞서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시스템이 작동되는 팀의 문화를 만들 수 있는 리더십은 미국 감독 후보들의 강점이었다. 결국 국내와 미국 감독 후보들중에서, 누가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 있으면서도 팀 문화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감독인 지 고민에 빠져들게 했던 미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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