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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13. 2022

<농촌 체험하기> 며느리취 (금낭화)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스무번째 이야기

  옛날에 어느 시골 마을에서 착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심하게 당하면서 살았단다. 어느 날 아들이 건너마을에 머슴살이를 가면서, 구박은 더 심해졌다. 시어머니의 이런 구박은 아들이 돌아와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며느리를 내쫓을 결심까지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밥을 하다가, 밥이 잘 되었는지 몇 알을 씹어보려고 솥을 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시어머니가 몽둥이를 들고 부엌에 들어와서, 버릇없이 밥을 먼저 먹는다고 며느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심하게 맞은 며느리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아내를 사랑하는 아들이 마을 앞 솔밭이 우거진 곳에 묻어주었는데, 그 자리에서 금낭화가 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며느리가 밥알을 씹다가 죽은 모습과 같다고 해서, ‘며느리 취’라고도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5월 어느 날 회식준비를 하면서, 팀장님이 사랑채 뒤뜰에 피어난 금낭화(며느리취)를 보면서 해준 이야기였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하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흔한 스토리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나의 마음에 꽂힌 것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나와 같이 새로운 사회에 진입하려는 신참이고, 어머니는 기존 사회의 질서를 옹호하려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어떤 조직이나 사회 공동체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기존 질서에 편입시키려고 신참을 교육시키려 든다. 때로는 신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온갖 박해를 가하기도 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했던 것과 같이. 

   시골도 마찬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귀농이나 귀촌을 하는 사람들이 실패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기존에 살고 있던 토착민들과의 갈등이다. 나도 역시 귀농/귀촌을 하게 되면, 겪게 될 가능성이 있다. 다행히 이곳 산채마을에서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마을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었다. 산채마을이 위치해있는 삽교1리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농이나 귀촌한 사람들이라는 점도, 외부에서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을 터부시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7월에 마을 잔치를 진행하면서, ‘역시 이곳도 하나의 공동체이고, 그래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복날 교육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마을 사람들을 초청한 중복잔치를 진행했었다. 산채마을에 사는 70~80여명의 마을 분들이 오셨다.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분들이 많았다. 대표님도 역시 금년에 처음 본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중복잔치를 끝내고 교육생들과의 뒤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대표님은 마을 사람들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 주었다. 대기업 사장을 역임했던 어떤 분은 마을 분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꼭 자신을 소개해주기를 원하는 등 자기 자랑을 한다는 이야기,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자그마한 전원주택 단지에 살고 있는 어떤 분은 농사짓는 이웃에 대한 생활민원을 자주 넣는다는 이야기,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친 사람 이야기 등등…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역시 ‘이곳도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런 저런 소문이 떠도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소문은 곧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 것이고, 그 선입견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고 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곧 공동체를 입성할 때 느낄 수 있는 장벽이 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장벽이 없는 조직이나 사회는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시골에서는. 


  며느리 취에 얽힌 이야기를 들은 날은, 며칠 전 동료들이 작업을 해준 곰취 밭 사장님이 보내주신 닭과 막걸리로 회식을 한 날이었다. 프로그램 초기에 농촌생활 적응에 도움이 많이 된 것이 바로 이 회식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회식을 한 것 같다. 새참으로 먹는 자그마한 막걸리 파티를 감안한다면, 조금씩이라도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언젠가 횡성군의 어딘 가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 때 이곳 공동체의 입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 산채마을에서의 회식은 즐겁다. 힘든 농사 일을 즐거운 감정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고, 농촌 문화를 자연스럽게 습득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한 ‘농촌에서 살아보기의 교육생’이라는 지위는, 삽교 1리 주민들에게 부담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위치인 것 같다. 마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주민들은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산채마을의 대표님과 팀장님이 마을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많이 주선하면서, ‘며느리 취’ 이야기에 얽힌 며느리가 받은 배척감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지낼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이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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