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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e 육은주 Oct 20. 2023

선비정신의 재정립

선비정신의 재정립

 

조선과 같은 도덕적 이상을 기반으로 한, 매우 견고하고 치말하게 짜여진 수직적 차별사회에서 권력의 에너지는 위에서 아래로 톱 다운으로만 내려오고 그 반대 급부인 바텀 업은 없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은 게임'이 되고 바텀들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차별적 수직사회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계급은 최상위 포식자인 것처럼 보이는 왕이 아니라 그 아래 양반, 관료계급, 그 중에서도 문반 계급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왕에게 끝없는 도덕 정신과 심신수양이라는 명목으로 한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격한 도덕률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역사에 남긴다는 명분으로 왕의 일거수일투족 온갖 사사로운 것까지 꼼꼼히 편집증적으로 기록해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덕을 기반으로 하는 치밀하고 강력한 왕권 견제이다.

선비 계급이 관직에 나가 얻게 되는 양반의 호칭이 계급의 호칭으로 공고화되어 상민에 군림하게 되고 이들이 집단적으로 권력을 취하고, 왕을 견제하게 되면서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이들간의, 가문간의 권력투쟁이 극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조선부터 이어져온 이 지식인, 관료 계급의 문제는 무엇일까. 1장에서 이미 지적했듯 그들은 권력을 누리기만 할 뿐 그 권력의 반대 급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한국인의 지도계층에 대한 불신, 현대에 들어서는 정치인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과 불신은 여기에서 크게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선비상의 재정립과 가치부여가 극히 시급한 시점이다. 소수이나마 학문을 연마하며 낙향하여 고장의 경제활동에도 참여하며, 개인자격으로 중국과도 교류할 정도로 배포와 국제감각도 있으며 전쟁이 나면 자기 스스로 군사를 규합할 정도의 경제 기반과 무력, 실력도 있는 '칼을 든 선비'말이다. 그 가장 좋은 사례가 바로 앞서 살펴보았던 홍의장군 곽재우이다.     

선비정신을 재정립하기 전에 일본과 영국 사례를 살펴보자면, 현재 세계인들이 아는 영국의 젠틀맨십(신사도)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무사도) 등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전통을 재정립, 현대화한 것이다.  영국은 여러 차례의 무혈혁명으로 귀족문화를 갈아엎는 대신 신사문화를 새로 만들었다.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아도 품위와 존중을 얻는 새로운 방법, 즉 신사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 계급 또한 정치 혼란기의 하급무사들의 행태는 칼을 차고 각종 범죄를 버젓이 저지르는 부랑자 집단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형편이 없었다. 무사도란, 이 하급무사들 중 꺠인 자들이 서양문물을 재빨리 받아들이고, 일본 근대화에 성공한 후 자신들만의 도를 근사하게 재정립, 재포장한 것이다. 

우리는 조선말기 혼란시대, 국권을 잃은 엄혹한 시대 이후, 시대에 따른 여러 개의 정치적 혁명을 겪었지만, 과연 옛것이 무너진 후에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시대를 반영할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만들어내었는가, 살펴볼 시점이다. 우리가 그나마 갖고 있는 선비정신, 문무 조화의 인재의 전통을 현대화해나가고 있는가. 우리의 가치(밸류)를 돌아보고 보완하고 발전시킬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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