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다. 유약하고 명분론에만 치우친 문약한 부정적인 선비정신과 대의를 두고 소아에 연연하지 않고 결단력 있게 나아가는, 부드러운 학자면서도 마음 속에는 서늘한 칼(뜻, 의지)을 품은 선비정신이다.
진정한 선비는 문과 무를 겸비한다. 말로만 이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칼을 들고’ 현실에 나서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긍정적 대의적 선비정신의 현대적인 예로는 박정희 시대 하에서 나라를 위한다는 더 큰 목표 하에 자기희생을 무릅쓴 지식인과 관료들을 꼽을 수 있다. 독재에 대항해서 미국에 주저앉거나, 현실 도피하거나 맹목적인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고, 독재자인 줄 알면서도 더 큰 대의를 위해, 나아가 장차 나라의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기꺼이 유학지에서 고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배움과 지식을 나라를 위해 바치고, 희생한 그들이 현대적 의미의 진정한 선비들이다.
그리고 그런 초창기 관료들의 칼든 선비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죽여버리고 잃어버린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다. 필자는 아웅산 사태 때 희생된 관료들이 현대화된 의미의 진정한 선비들의 마지막이라 본다. 그 이후 진정한 선비정신을 가진 관료들은 사라져버렸다. 그 비어버린 자리에 관료들의 집단이기주의만 남았다. 외환위기 이후부터 등장한 '모피아 (재경부 관료 마피아)' 핵피아 (원자력발전 관료 마피아)' 등이 그 예이다.
전두환 정권의 과오는 쿠데타와 광주 유혈 진압 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게 더 심각한 것이 불요불급한 외국 순방에 나라의 최정예 인재들, 내각 전체라 할 수 있는 인재들을 모두 끌고 가 테러의 희생양, 한순간에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데 있다.
전두환 당시 인재들의 가치는 그 희소성과 시대적 요청으로 보았을 때 지금의 고스펙 인재들 가치보다 100배, 1000배, 10,000배의 가치가 있는 인재들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테러를 일으킨 북한의 입장에서 보아서는 전두환 암살은 실패했을 지언정, 고위급 인재 대량 학살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겉보기엔 군부정권인 박정희는 조선의 그릇된 봉건가치를 혁신하고자 분연히 나선 칼든 선비 세력이고, 겉보기엔 평등한 인민의 나라룰 내세우는 북한은 조선의 봉건가치를 그대로 계승한 그릇된 선비 계승세력이라는 것이다. 의로운 선비의 후예인 아웅산 테러의 희생 관료들을 살해한 북한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잔혹한 무력성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조선 선비들의 봉건성을 그대로 이은 정권이다. 조선 왕을 무한 도덕률로 견제하고, 자신들은 그 도덕적 의무에서 한층 자유로우며, 상민에게는 무한 군림했던 조선의 그릇된 선비 그룹, 북한의 백두혈통의 순수성을 내세운 김씨 왕조 하에서 무한 권력을 누리는 소수의 군부 권력 집단, 데자뷔가 아닌가.
대한민국 현대 역사에서 박정희와 초창기 관료들 외에 칼 든 선비의 또다른 예는 누구를 들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극단의 모험적 기업가 정신으로 경제를 일궈낸 정주영, 이병철 등의 재벌기업 1세대 창업주들이라고 본다. 이병철 정주영 등 1세대 창업주들이 바로 현대의 칼 든 선비들이다. 현대의 전쟁은 경제전쟁이고, 이 1세대 창업주들이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전쟁의 폐허에서 떨치고 일어나 부러지고 없어지고 흑은 녹슨 채 방치된 칼을 어떻게든 만들고 벼러서 '사업보국' 이념으로 '창조와 도전'의 기업가 정신으로 글로벌 경제 전장으로 뛰어든 '칼 찬 선비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업가정신과 불굴의 노력은 재벌이라는 이유로, 부의 집중이라는 비판 논리로 폄하받고 있다. 각종 경제 범죄자의 오명을 쓰고, 그 업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 못 받고 있는 현대의 기업가들에게는 마치 선조에게 버림받은 이순신 장군이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