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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Nov 16. 2021

새로운 일을 좋아하는 이유

변덕쟁이 어른으로 살고 싶다

퇴사를 하고 대학 친구 종종이와 굉장히 오랜만에 모교에 찾아갔다.


졸업식 이후로는 딱히  일이 없었다. 우리 학교는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놀러  핑계 조차 없는 그런 곳이다. 동창회 비스무리한 행사에 갔던 기억이 마지막인데, 이제는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학과 개편인가 뭐시긴가 하는 사업으로 학부가 공중분해되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안타까웠지만 졸업한 뒤에 일어난 일이라 실감은  나지 않는다. 아디오스-


학교 앞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큰 정문 옆으로 쭉 늘어져있는 은행나무가 보였는데, 그 풍경이 너무 황홀해서 둘 다 마치 짠 것 같이 감탄하기 시작했다. 이쁘다를 연신 내뱉으며 꼭대기 건물을 가기 위해 언덕을 올라가는 길, 옆으로 보이는 넓은 운동장 한가운데 옷을 맞춰 입은 밴드 동아리가 악기와 함께 서있었다. 무슨 촬영을 하는 모양이었다.


멀리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악기와 마이크에 각각 손을 얹고 있는 밴드 멤버들을 보는데 괜히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싶어졌다. 종종이와 나는 그쪽에 볼 일이 있는 양 발걸음을 재촉해서 살짝 멀찍이 떨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꽤나 쌀쌀한 날씨에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서도 서로 웃으며 촬영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자니 새삼스럽게 대학생 때의 여러 기억이 떠올랐다. 아직 10년이 채 안된 일인데 마치 1억 년은 지난 공룡 시절 이야기 마냥 까마득한 게, 고작 몇 년 간의 사회생활이 고단하긴 했나 보다.


회사에서 가끔 대학가로 외근이나 출장을 갈 때 선배들이 항상 하던 말이 있다.


"대학가는 기운부터 달라."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당시의 나로서는 단순히 젊음의 생기에서 차이가 있으려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모교에 방문하면서 왜 선배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지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닳지 않았구나.


사회생활을 거친 지금의 나는 좋게 말하면 경험이 많아졌다. 물론 많은 경험 안에는 좋았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이 뒤섞여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게 지난 삶에서 시련과 행복은 채찍과 당근 마냥 나를 좌절하게도, 다시 일어서게도 만들었다.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철처럼 고난을 극복할수록 내면의 심지는 단단해졌지만, 두드린 자국은 그다지 평평하지 않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울퉁불퉁한 표면이 보인다. 큰 일에도 무덤덤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을 볼 때 예전에는 그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 사람이 겪었을 지난 힘듦에 대해 먼저 떠올리게 된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쉼 없이 웃을 수 있었던 학생 때는 인생의 모든 순간이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만큼 작은 아픔에도 상처가 나기 쉬우나, 새로운 경험에 대한 희열이 자연스럽게 회복 탄력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나 성인이 된 이후 비교적 자유를 누리게 된 대학생 때는 대학교라는 단체생활의 특성상 수시로 발생하는 다양한 이벤트들 덕분에 훨씬 다채로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새롭게 맛보는 자유, 처음 겪는 여러 상황들, 예상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기대까지도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는 시기였고, 그걸 어른들은 '생기'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싶다.


학교 건물 뒤로 펼쳐진 단풍 물든 산을 보며 휴대폰 카메라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우리 학교가 이렇게 이뻤다니. 단풍 구경을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을 정도인데 왜 학교 다닐 땐 몰랐을까? 그때는 분명 단풍보다 더 재밌는 게 많았나 보다.


장관이네요, 절경이고요. 신이 주신 선물이네요.




나는 새로운 일을 좋아한다. 돈 버는 일 말고도 취미생활에 있어서도.


끈기가 없고 인내심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지난 글에서처럼 단순히 잘난 남을 보고 배 아파서만도 아니다.


요즘 생각을 많이 하고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새로운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건조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그 자체가 활력을 일으키고,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해 파생되는 모든 순간이 인생을 보다 반짝반짝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이제는 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3.3년이라고 하던데(출처) 아직까지 반도 못 살았다. 벌써부터 생기가 부족한 목숨인 채로 살기엔 지나치게 어리다. 남들이 아무리 변덕쟁이로 보더라도 내가 행복한 삶을 살고야 말겠다. 남한테 민폐 끼치는 변덕만 아니면 되지 뭐.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날 어른으로 취급하는 게 어색하다. 누군가 인터폰으로 "집에 어른 계시니?"라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안 계신다고 대답할 거다. 그런데 이번에 종종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대학교 신입생들에게는 우리가 90년대 후반, 00년대 초반 학번의 선배들과 같이 보일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적잖게 놀랐다. 한참이나 으른 같아 보이던 선배들이었는데, 사실은 이렇게나 어렸었구나.


그 선배들도 사실 지금의 나처럼 변덕쟁이 어른을 꿈꾸고 있었던 걸까? 괜한 게 다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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