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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Sep 04. 2022

좋은 동료는 요괴도 춤추게 한다

당분간은 춤 쉽니다

회사에서 좋은 동료를 만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좋은 동료는 단순히 좋은 사람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인간은 다분히 입체적인 존재라,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동료란 법은 없다. 원래도 그다지 나긋나긋한 성질머리는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화를 돋우는 각종 경험으로 말미암아 더욱 불같은 성미를 얻었다.


일이 힘든 건 대부분 견딜만했다(물론 사람이 힘들면 일도 힘들어지는 법이지만). 사람이 힘든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엄청난 방황을 했다. '난 역시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봐.' 습관적인 자책도 튀어나왔다.


결국 난 조직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요량으로 작년 10월 경 다니던 회사에서 나왔다. 대책이라고는 따로 마련되지 않은 무작정 퇴사였다. 앞날에 대한 걱정보다 심리적 해방감을 더 크게 느끼는 내 모습을 보며 결심과 선택을 후회하진 않았다.


퇴사 후 감사하게도 여기저기서 이직 제안이 들어왔지만 왜인지 입에서는 긍정적인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조직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대답하며 대부분의 제안을 에둘러 거절했다. 


사실상 탈회사를 하기 위한 현실적인 준비도 계획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어찌 보면 무모하고 무책임하게 보일 만큼의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빌런인 건 아닐까...?


당시 이런 내 고민을 알게 되신 엄마는 규모가 조금 더 큰 조직에 몸 담아 보기를 권유하셨다. 큰 규모의 조직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점점 작은 조직으로 옮겨 다니다 보니, 이번을 기회로 환경을 한번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사람이 많든 적든 어딜 가나 힘든 사람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애초에 그런 상황 자체를 피해버리고 싶었다.


더 솔직하게는, 이번에도 또다시 도망치듯 회사를 떠나고 싶어 진다면 그땐 정말 내가 나를 싫어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이 오는 게 무서웠다.


그러던 중, 친한 대학 동기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가벼운 안부 인사로 시작한 통화가 어느새 일 얘기로 흘러갔다. 같은 업계에 있는 친구라 평소에도 회사 이야기를 많이 했기에 자연스럽게 퇴사 소식도 함께 전했다.


알고 보니 애초에 목적이 있는 연락을 했던 친구는 '오히려 좋아' 스킬을 시전 했다. 본인이 다니고 있는 회사로의 지원을 설득하는 친구에게 반사적으로 거절의 말이 나오려던 찰나, 엄마의 권유가 생각났다. 직전 회사들보다 규모가 있는 조직이었고 게다가 동기까지 있다고 생각하니 왜인지 모르게 조금의 용기와 호기심이 생겨났다.


우선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뒤 짧은 고민을 거쳤다. 채용 페이지도 둘러보고 기업 정보도 찾아봤다. 조직 분위기가 꽤나 괜찮아 보였다.


무언가에 홀린 듯 적어 낸 지원서는 서류 전형을 통과하여 이내 면접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총 두 차례의 면접을 거친 후 연봉 협상까지 마친 나는 어느새 동기와 같은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지난 9개월 간 정말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너무 갑작스러운 전개인가?)


그리고 예상했으나 예상하지 못했던, 준비했으나 준비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회사에 대해서는 크게 리뷰할 게 없다. 회사는 그냥 별 다를 것 없는 '회사'였다. 애초에 조직에 대한 큰 기대가 없던 만큼 엉망진창이었던 마지막은 열받지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동료가 너무 좋았다.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빌런만큼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었지만, 이번 조직만큼 애착이 가는 동료들을 만난 적은 처음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그 모습을 좋아해 주는 동료들이었다. 굳이 쓸데없는 척을 할 필요가 없었다.


여러 방면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쉽게 좌절을 겪지 않도록 늘 서로의 자존감 지킴이를 자처하는 동료들이었다. 힘들 때 의지하고 기쁠 때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무기력과 회의에 빠지는 속도를 현저하게 늦출 수 있었다. 


물론 그곳에도 빌런은 있었고,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받았다. 그러나 빌런 이외의 동료들이 있었기에 힘들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 역시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다던가.


생각보다도 많이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그들 덕분에 활짝 열렸다. 웅크린 채로 가시를 한껏 세운 성난 고슴도치 같던 나는 이제 가끔 말랑한 배도 보여주고 가시의 높낮이도 잘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덕장(德將)으로 가는 길의 한 걸음을 내디딘 기분이다. 


우리는 세 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 만큼 업무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돈독함을 맺어두었다. 이들과 네 번째 계절을 같은 장소에서 함께 보낼 수 없다는 점이 이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마지막이 아니어서 더 그런가 보다.


마지막 출근일 즈음에는 혹시 내가 교생 선생님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떠난다는 비슷한 이야기만 해도 눈이 울먹울먹 해지는 팀원들을 보고 웃고 놀리며 사진을 찍어댔지만... 실습 마지막 날 교생 선생님들이 울고불고하는 아이들을 보며 왜 같이 눈물을 흘리셨던지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함께 떠나게 된 동료도, 남게 된 동료도, 우리 모두 인연은 오래오래 닿아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따로 시간을 내어야만 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는 게 왜 이렇게 막막하고 또 먹먹하던지.


아무튼 이 글을 빌려 오랜만에 회사에서 춤출 수 있게 만들어준 동료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그동안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우리 이제... 회사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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