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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Sep 21. 2022

못하는 나도 나야

아니 왜 셀프로 기를 죽이고 그래요

운동을 할수록 느끼는 건 이건 몸의 수련이 아니라 마음의 수련이라는 것이다. 


몸뚱이는 좀처럼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답답하고, 창피하고, 짜증 나고, 반복되는 실패에 좌절도 한다. 요동치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만 그 단계를 넘어갈 수 있다. 마음이 안정되어야 일정한 호흡이 가능하고, 일정한 호흡에서 흔들리지 않는 움직임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기억하던 시절부터는 그래 왔다. 


머릿속에 잊히지 않는 한 가지 기억이 있는데, 정확한 나이는 떠오르지 않지만 미취학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을 것이다. 당시 난 백화점 문화센터에 다니고 있었고 그날 수업에서는 '>, =, <'와 같은 부등호를 배우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그런 기호를 제대로 알 리 만무하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더 큰 숫자를 향해 물고기가 입을 벌리도록 그리라고 말씀해주셨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으로 나눠주신 학습지에 있는 문제를 모두 푼 뒤 제출하고 집에 가라는 작은 과제를 받았다. 열심히 답을 적고 있던 중 한 문제에서 물고기 입을 잘못된 방향으로 그렸다는 걸 알아챘다. 지금 생각하면 지우개로 슥슥 지우고 다시 그리던지, 줄을 죽죽 그어 다시 그리던지, 그냥 제출하던지 하면 됐을 텐데 당시의 나는 지우개도 없었고, 줄을 긋기도 싫었고, 틀린 걸 알면서도 제출하는 건 더더욱 싫었나 보다.


심지어 소심하고 낯도 많이 가렸던 어릴 적 나는 그 사실을 선생님께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학습지를 제출하고 가라는 선생님 앞에서 학습지를 다시 받고 싶다고 말하며 그냥 울어버렸다. 영문을 알 리 없는 선생님은 우는 어린아이를 보며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선생님은 틀려도 괜찮은 거라며 학습지를 다시 작성할 필요 없으니 집에 가도 좋다고 달래셨던 것 같은데 '틀려도 괜찮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내 실패를 인정하라는 말처럼 들려서 더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있다. 사태는 우는 딸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온 엄마에 의해 마무리됐다.


죄송해요 선생님... 많이 당황하셨쬬?


이 기억이 뭐라고 이렇게 뇌리에 깊숙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완벽주의 성향은 약해지기는 커녕 더욱 공고해졌고, 그만큼 난 스스로를 학대하듯이 채찍질했다. 그때마다 물고기 입을 반대방향으로 그려 서럽게 울던 어릴 때의 내가 떠올랐어서인지 쉽게 잊히지 않나 보다. 


완벽주의에 금 아닌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실패를 겪고 나서부터였다. 하지만 이는 마음을 한결 내려놓는 계기가 되지 못하고 되려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포기가 빨라진 것이다.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제대로 시도하기도 전에 지레 도망쳐버렸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민망할 만큼 깊은 노력을 들이지도 않은 채로 놔버리는 상황이 점점 잦아졌다. 하나, 둘... 포기하는 상황이 많아진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난 일종의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써 극도의 태만을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은 뒤에도 이러한 성향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물론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강했고, 일정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역시도 그 압박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 다시 운동을 시작했을 때, 어릴 때와 확연히 다른 몸뚱이 놀림에 제법 놀랐다. 분명 내 몸인데 왜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인지. 기대만큼 잘 해내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감이 들었고 운동에 대한 흥미가 자꾸 떨어지려고 했다. 


여기... 여기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통해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몸을 보며 얻는 성취감과 희열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물론 중간중간 좀 가다 쉬다 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요가를 시작하면서 마음가짐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 요가 수업에서 선생님이 자주 해주시는 말씀이 있다.


내 몸의 움직임과 호흡을 들여다보고, 지나치게 무리가 된다 싶은 동작은 하지 않아도 좋아요. 할 수 있는 만큼의 동작에서 내가 일정한 호흡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먼저 바라보고 집중하세요.



물론 평생 그 자세에서 머무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단번에 원하는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동작에서 균일한 호흡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오면 그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는 건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는 걸 몸으로 깨우쳐 알게 되었다.


요가 4개월 차인 현재, 첫 요가 수업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자세들이 가능해졌다. 평생 함께하지 못할 것 같던 팔 근육도 눈에 띄게 늘었고, 초등학교 이후로는 포기했던 유연성도 놀라울 만큼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못하는 동작은 산더미처럼 많다. '사람이 저런 동작을 할 수 있는 거야? 10년쯤 하면 가능하려나...' 하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이젠 두렵지 않다. 잘하기 위해서는 못하는 과정을 지나야 한다는 건 어찌 보면 순리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견뎌내야만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이 당연한 걸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웠다.


Love myself.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건 화장을 하지 않은 나, 눈이 나빠 안경을 써야 하는 나, 성격이 급한 나뿐만 아니라 실패하는 나, 못하는 나 역시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못할 수도 있지. 그것도 나인 걸. 마음을 다해 계속해서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진리를 알게 된 이상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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