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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Sep 22. 2022

나에게 집중해야 무너지지 않는다

인생은 매직아이처럼

요가에는 밸런스, 즉 신체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동작이 많다.


눈으로 보기엔 되게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막상 자세를 잡아보면 누가 날 밀어버린 것 마냥 와르르 몸이 무너진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먼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자세를 잡아본다. 서두를 건 없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으니까. 자세를 잡고 나서부터는 나만의 속도로 깊이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을 한다.


호흡이 끝날 때까지 흔들림 없이 동작을 마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근력과 유연성이 밑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집중력이다. 집중력이 부족하면 동작 중간에 자세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요소는 바로 시선 처리.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대한 한 곳을 바라본다. 눈에 보이는 것을 신경 쓰는 게 아니라 몸의 움직임과 순간의 호흡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 끝!


그럴 리가요?



될 리가 있나.

어떻게든 선생님이 보여주신 자세를 만들겠다고 꾸역꾸역 구깃구깃 내 몸을 접고 펴고 하는 것만 해도 죽겠는데 숨도 멈추지 말고 쉬어야 한단다. 


숨 쉬겠다고 아둥바둥 노력하는 내 모습이 우습게도 마스크 안에 갇혀있는 코는 폐와 원만한 합의를 보지 못했나 보다. 전력질주 후 쉬는 숨 마냥 거칠고 가쁘다. 그래도 어찌어찌 자세를 취하고 있는 중, 이젠 쓸데없는 궁금증이 자꾸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은 잘하고 있나?

아직 요가를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어려운 건가?

잠깐만... 혹시 지금 나만 못하고 있는 거 아냐?


궁금증을 참지 못한 눈이 슬-쩍 굴러간다. 매직아이 하듯이 한 곳에 고정되어있던 시선에 옆 사람의 모습이 담기는 순간, 다시 와르르. 몸이 무너져버린다.


아차. 이래서 선생님이 계속 한 곳을 바라봐야 한다고 하셨던 거구나. 


요가매트에 내동댕이 쳐진 몸 보다 다른 사람을 흘끗거리다가 집중력을 잃고 넘어졌다는 사실에 괜히 혼자 창피해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시 고쳐 잡은 자세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곳에 시선을 두는 것에 집중했다. 여전히 어설프긴 했지만 호흡이 끝날 때까지 동작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시선을 한 곳에 두고 호흡에 맞춰 자세를 유지하는 요가와 비슷한 게 아닐까.


지난 삶을 돌아봤을 때 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고, 비교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내가 아닌 남이 주체가 되어버린 삶은 채찍이 되어 열등감과 오기를 바탕으로 한 동기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채찍질에 곪아 버린 몸과 마음이 무력감에 잠식당하기도 했다.


삶의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SNS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20대 중반, 꼴 보기 싫던 사람 때문에 닫은 페이스북 덕분에 다른 SNS도 활발히 하던 편은 아니었지만 있는 계정을 모두 정지시키고 앱도 삭제해버렸다.


피드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은 대부분 각자의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 빛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SNS는 찰나의 순간을 영원하게 만들어버린다. 마치 그게 그 사람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도록.


더 무서운 건 머리로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눈으로 보는 순간 못난 마음이 동요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되는 삶이 싫으신 분, SNS를 없애보세요.


SNS를 없앤 게 나의 모든 열등감과 무력감을 다 해소해준 것은 아니지만, 너무 쉽게 엿볼 수 있었던 다른 사람의 인생이 시야에서 멀어진 것만으로도 자책하느라 보내는 시간의 반은 줄어들었다.


마음이 충만해지는 순간을 혼자서도 오롯이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타인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는 삶을 살다 보니 그동안 쓸데없이 집착했던 것들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물론 위의 요가 일화만 보더라도 아직까지 난 완전히 내가 주체가 된 삶을 살고 있진 못하다. 


하지만 지금 내 휴대폰에는 인스타그램이 다시 깔려있다. 게시물을 올리는 일은 여전히 드물지만 이제는 적어도 수시로 들어가서 남과 나를 비교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저 주변 사람들의 대략적인 근황을 알려주는 반가운 소식통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잘 살고 있구나,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린다. 나에게 집중함으로써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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