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 살, 2017. 12. 1. 금요일 >
< 서른 살, 2017. 12. 1. 금요일 >
#인사이동 #출산 #새로운 환경
#나를 배려하지 않는 회사가 야속하게 느껴질 때
인사이동 시즌이 다가오면 마음이 싱숭생숭 해진다. 길게는 한 지역에서 5년 정도 일하기도 하지만 1년이 지나고 발령이 나는 경우도 있다. 매년 겪는 일이라 익숙해질 만도 한데, 올해 인사이동 발표에 신경이 곤두서는 건 곧 있으면 태어날 아이 때문이다.
아이의 예정일은 1월이다. 만삭의 아내, 뱃속의 아이와 함께 추운 겨울에 이사할 걸 생각하니 막막하다. 이사가 끝이 아니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도 하지 못한 채 출산을 해야 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당장 어디로 발령이 날지 몰라 산부인과를 미리 알아볼 수도 없다. 인사발령 공지가 나오고 빠르면 2주 안에라도 이사를 해야 한다.
주변 사람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니 위로를 건네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누구는 인사이동 시기를 고려해 자녀 계획을 세우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언젠가 들은 간호사들의 순번제 임신만큼 듣기 불편한 이야기이다. 매년 12월에 발령이 난다면 아이는 언제 태어나야 할까? 3월 정도는 괜찮을까? 생활이 익숙해지지 않은 곳에서 아이의 100일을 맞는다는 것이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9월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가도 3개월 후면 또 인사이동이다. 결국 100일 된 아이를 데리고 이사하게 되는 건 매한가지다.
사실 동료들도 같은 고민을 한다. 인사이동 발표가 나면 새로 가게 될 곳의 정보를 알아보느라 바쁘다. 새로운 부서의 분위기를 궁금해하기도 하지만, 대게 가족생활과 관련된 일을 먼저 챙긴다. 아이가 어린 가족은 어린이집, 초등학교를 알아본다. 주말부부를 하는 사람은 '자기 집'까지 찾아가는 길을 찾아본다. 솔로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성 친구가 사는 곳까지 교통편을 알아보고 좌절한다. 버스 타고 네 시간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연인에게 말하니 입이 나온다.
인사발령 발표가 났다. 지금 사는 곳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삿짐 쌀 준비를 한다. 아내는 그 지역에 아는 사람이 없어 인터넷에 산부인과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풀이 죽어 산책이나 다녀오자고 말했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부는 저녁, 롱 패딩을 꽁꽁 싸매고 걷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았을 때 아내가 갑자기 뒤로 쿵 하고 넘어졌다. 만삭의 몸으로 뒤뚱거리며 걷다 빙판길에 넘어진 것이다. 황급히 일으키려는데 아내가 박장대소를 하고 있다. 그 모습에 당황해서 괜찮냐고 물으니 만삭에 이사 갈 준비를 하는 것도, 인사발령이 2주 전에 나오는 것도, 마음을 달래려 걷다가 넘어져버린 것도 다 웃기다고 한다. 일어나서 배를 먼저 만지는 아내를 보며 나도 씁쓸하게 웃어버렸다.
새로 간 곳에서 아이는 예정일에 딱 맞춰 나와주었다. 아는 사람 없이 심심하게 지낼 엄마에게 친구가 되어주려는지, 아빠의 근무 스케줄을 배려해준 건지 약속한 날에 우리와 만났다. 큰 기쁨을 누리며 새 출발을 준비했다. 아내와 아이가 조리원에 있는 동안 이사를 마무리했다. 집을 정리하고 나니 세 식구가 함께 살 집이 갖춰졌다.
매년 반복되는 이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새로 발령받은 곳에 적응하는 건 내 몫이니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연말이면 같이 마음 졸이게 되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매번 이삿짐을 싸게 만드는 것도, 이사한 곳에서 한동안 외톨이처럼 지내게 하는 것도 그렇다. 아무래도 아이가 조금 더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족을 정착시키고 주말부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에 가고 나면 자연스럽게 멀어질까 봐 걱정된다. 다시 생각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일단 오늘 하루를 가족들과 더 많이 웃으며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