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과 세 번째 만나는 날이 되었다. 파란하늘이 코발트블루 빛이 감도는 원피스를 입고 왔다. 늘씬하고 고혹적인 자태가 유난히 돋보였다. 남성들이 아름다운 여성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들과 욕망들을 연우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여자가 남자를 상상할 때는 고작 크기와 러닝타임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남자가 여자를 상상할 때는 끝도 없이 신비로운 환상에 젖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이 창조한 자연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여성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여성들은 최고의 걸작품들답게 여성들끼리 경쟁하고 시기 질투한다.
연우도 모르는 사이에 독자들은 서로의 직업까지는 공유를 했다고 한다. 역시 인간들은 필요에 의해서 무엇이든 창조하고 고안하는 동물이다. 파란하늘이 드디어 중심에 서서 이야기를 이끌기 시작했다. 마치 태초의 중심에 여성이 있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파란하늘이 대학 병원 방사선실 앞에 앉아있다. 호명하는 소리에 파란하늘이 갈아입은 환자복 차림으로 MRI 실로 들어갔다. 주의사항을 설명해주는 방사선사와 잠시 눈이 마주쳤을 때,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네 온다.
"안녕하세요, 1003호시죠?"
방사선사의 얼굴을 잘 보고 있지 않았던 파란하늘이 1004호에 살고 있는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해리포터가 내려온 차트를 유심히 본다. 유방 촬영이다. 유방에 문제가 있나 보다. 1003호 여자의 얼굴을 해리포터가 연민에 찬 눈으로 바라본다. 파란하늘이 둥그렇게 생긴 관 속으로 들어가며, 눈을 감고 죽음을 생각해본다. 한쪽 유방을 도려내야 하는 걸까 하는 두려움 대신에, 차라리 죽음을 연상해본다.
MRI 촬영을 마치고 파란하늘이 밖으로 나오자, 해리포터가 말했다.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가 같은 오피스텔에 살면서도, 그동안 너무 무심했네요. 오늘 저녁 약속 없으시면, 1004호로 놀러 오실래요? 제가 맛있는 밥 대접해드릴게요. 시골에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청국장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파란하늘에게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청국장 이야기를 꺼내는 해리포터의 인상이 밉지 않다. 파란하늘에겐 위로가 필요한 날이다. 저녁 7시에 1004호에 방문하기로 했다. 오피스텔에서 청국장은 그야말로 쿠데타다. 입주자들 컴플레인을 감수하고 뚝배기 끓이기를 시작해야 한다.
병원에서 나온 파란하늘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데스크 여직원이 변호사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세요, 장하은 씨 소개로 온 최 00입니다."
"네, 누나에게 연락받았습니다. 누나랑 대학 선후배 사이 시라고요~ 저희 누나야 실력이 어중간해서 곧바로 결혼을 했다지만, 최 00 씨는 출중한 정도가 월드클래스였다고 말하던데요."
적토마가 고객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사람이구나 파란하늘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매너마저 오늘은 위로가 되질 않는다. 파란하늘은 이혼소송을 문의하러 오는 길이다. 낮에 학생들 가르치고 저녁에 레스토랑 연주 알바를 해선, 오피스텔 월세며 생활비가 빠듯하다. 예정된 일은 아니었지만, 소송을 해서 단 얼마라도 궁핍을 면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장하은 선배가 그녀의 동생 변호사를 소개해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었다.
"내 동생도 지금은 싱글이야. 너처럼 애도 없이 혼자가 됐으니까, 잘 눈여겨봐 봐~ 너니까 이런 소스도 주는 거야. 다른 데선 그 녀석 싱글이란 거 입도 뻥끗안해. 파리떼 같은 엄한 년들 꼬일까 봐~"
적토마는 하얀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 안경 너머에 재치 있고 스마트한 눈빛, 다 갖춘 미모다. 감히 저런 능력자를 어디가 아플지도 모르는 내가? 파란하늘은 적토마의 여자를 살피는 듯 보이는 당돌한 눈빛을 오늘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기분이다. 이제 아름다운 여성성을 대표하는 유방마저 어찌 될지 모른다. 파란하늘은 오늘 패배한 여성의 대명사처럼 느껴진다.
적토마는 파란하늘의 오늘 심리상태의 위험성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생존을 위해 소송까지 감수해야 하는 연약한 여성이 그 앞에 있을 뿐이다. 아름답고 고혹적인 여자가 겨우 이혼 소송이나 논의해야 한다는 것에 괜히 화가 난다. 저 여자는 그렇게 멍청해 보이지도 않는데, 어떤 놈을 남편으로 만났던 것일까. 변호사 일을 하며 바라본 세상은 온갖 악랄하고 추잡한 일들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