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토마와 마주 앉아 이혼 소송 준비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던 파란하늘이 일을 마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오늘은 학생들 수업도 레스토랑 알바도 없는 유일한 평일이다.
파란하늘이 혼자서 변호사 사무실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었다. 순대국밥에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다. 우아한 그녀가 소주 한 잔을 막 들이켤 때였다.
"혼자서 드시면 맛없잖아요. 여기로 오실 줄 알았으면 사무실에서부터 같이 올 걸 그랬어요. 여기 앉아도 될까요?"
적토마가 의외의 눈빛을 지어 보이며, 맞은편에 앉았다. 파란하늘은 오늘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변호사님, 오후에도 바쁘시겠죠?"
"고객님들 만나는 일이야 늘 바쁘기도 하고, 얼마든지 한가할 수도 있죠. 저한테 뭐 부탁하실 거라도 있으세요?"
파란하늘이 아무 주저함도 없이 말했다.
"우리 연애할래요?"
적토마가 놀라는 눈치였다.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끼를 부리는 눈빛도, 남자를 통해 색욕을 채우려는 음성도 아니다. 이 여자, 뭔가 있다. 그게 궁금해진다.
"당신처럼 매력적인 여성의 제안을 거절할 남자는 세상에 없을 거예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어디든 가보고 싶은데요."
파란하늘은 소주 두 병을 혼자 다 마셨다. 파란하늘은 생각했다. 남자와 몸을 나누지 않은지 벌써 삼 년 째다. 유방 두 개가 다 남아있을 때 섹스라도 해두어야겠다. 허무한 인생이다. 다행히 아주 근사한 남자가 눈앞에 있다. 신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가 보다. 잘 포장된 선물꾸러미를 보내주셨다.
연애하자고 말은 던졌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오전에 MRI를 찍을 때는, 남은 시간을 미친 듯이 사랑하며 살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눈앞에 멋진 남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도, 말처럼 연애가 쉽게 되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소주 두병을 먹었는데도 정신이 말짱했다.>
파란하늘이 여기까지 이야기를 풀어놓고는 적토마를 흘기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어떻게 좀 해봐요~ 이제 적토마님 차례예요."
적토마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랑이가 지난주에 검은표범에게 신랄하게 깨지던 모습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파란하늘이 적토마에게 남자답게 리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적토마가 파란하늘의 요청에 따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술에 취했지만 취하지 않은 것 같은 파란하늘의 기다란 몸이 적토마의 옆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걸었다. 파란하늘을 태운 차를 적토마가 운전을 한다. 호텔이라고 이름 붙어있는 건물들을 망설이며 그냥 지나친다. 고궁 주차장은 평일이라 한가했다.
파란하늘과 적토마가 나란히 고궁 안 길을 산책했다. 파란하늘이 취기가 올랐는지 걸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사랑을 하고 싶어요~ 당신은 무얼 하고 싶어요? 남자는 섹스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던데요."
돌발적인 그녀의 질문에 적토마가 양 손으로 그녀의 몸을 돌려세우며 대답했다.
"그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죠.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는 전제가 붙는다면, 당신의 말은 틀리지 않아요."
오후 세시의 고궁은 한적했다. 산책길 숲 속에는 햇살이 나무 사이로 비추고 있었다. 적토마가 파란하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키스했다. 욕정에 차오른 키스라기보다,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따뜻한 키스였다. 파란하늘이 적토마의 입술 속에 갇혀서, 그의 숨소리를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