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었다. 모든 존재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른 존재를 위협하려는 어둠의 세력들이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밤의 활동가들에겐 사냥하기에 적합한 시간이기도 했다. 수현이 쓰러진 시간이었다.
일본에 가 있던 범준이 밤늦게 연우의 작업실에 도착해서 쓰러져있는 수현을 발견했다. 구급차에 실려간 수현은 다행히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는 아니었다. 수현이 괴한의 공격을 받고 쓰러질 때, 연우는 작업실과 가까운 집에 있었다. 범준의 연락을 받고 연우와 경찰이 거의 동시에 작업실에 도착했다.
경찰은 건물 밖과 안에 있는 cctv부터 회수했다. 살인 사건이 아니고, 피해자의 상태가 매우 위중하진 않다는 병원 측 연락을 받고, 경찰은 현장보존도 하지 않은 채 철수했다. 경찰이 연우에게, 피해자가 깨어났을 때 조사하면 될 일이라고 느긋하게 말했다.
이틀 전 화요일, 릴리에서 독자 모임을 했었다. 여섯 명의 독자들은 각자의 태블릿이나 휴대폰을 열었다. 연우는 <육인야화>의 마지막 이야기까지 써 내려간 원고를, 독자들과 서로 확인하며 함께 읽었다. 그렇게 독자들과 마지막 만남을 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경찰은 모든 cctv를 회수해간 것으로 생각했지만, 연우의 책상과 마주 보고 있는 벽에 걸려있는 그림의 프레임 속에 비밀스러운 장치가 하나 더 있었다. 범준이 장난스럽게 고안해서 설치한 장치였다. 범준이 장치를 설치하며 말했었다.
"애인을 만들지 않는 연우씨를 위한 거야.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거나, 글 쓸 때 체위가 생각나거나 하지 않을 때 연구 자료로 활용해도 되고."
연우와 범준이 모니터를 확인했다. 수현이 혼자 있는 작업실에 검은표범이 들어왔었다. 그리고 삼십여분 뒤 그가 나가고, 해리포터가 들어왔다. 해리포터는 금세 문밖으로 사라졌다. 뒤이어 민들레의 모습도 나타났다. 민들레가 얼마 동안 있다가 작업실을 나갔다. 그때까지 수현은 와인이 담긴 맥주잔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들어왔다. 연우도 범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아니 알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와인병을 들어 수현의 머리를 가격했다. 수현이 쓰러지며, 탁자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작업실 탁자 아래에 붉은색의 액체가 카펫의 한쪽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옆에 깨지지 않은 와인병이 누워있었다. 수현은 살아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범인의 정체가 궁금한 것만큼이나, 연우는 세 명의 독자들이 왜 연우의 작업실을 방문했던 것인지 그게 몹시도 궁금해졌다. 다시 독자들을 만나야겠다.
모니터를 확인한 범준은 곧바로 수현의 병실로 향했다. 연우는 작업실을 그대로 보존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잠이 오지 않는 긴 밤이었다. 새벽 일찍 여섯 명의 독자들에게 연우가 처음으로 단톡방을 열었다. 석 달 동안 진행된 독자 모임 중에도, 연우는 그녀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자들의 연락처는 다 수집해놓고 있었다. 이메일은 늦게 확인될 수도 있다. 연우는 마음이 급해졌다.
<긴급공지, 릴리, 오늘 오전 10시, 육인야화와 살인미수 사건에 관한 질문회. 이연우 작업실 방문자 신원 파악됨.>
곧 경찰도 방문자의 신원을 파악할 것이다. 세명의 독자들이 경찰서에 불려 가 참고인 조사를 받기 전에, 연우는 먼저 그들을 한 곳에 불러놓고 정황 설명을 듣고 싶었다.
살인미수사건~ 이 단어 하나로, 연우의 작업실을 방문한 세 명의 독자는 물론, 방문한 적 없는 다른 독자들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극대화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연우는 짐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