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라는 이 별에서 오십여 년의 세월을 여자로 살아낸 사람들답게, 친구들은 모이면 서로들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바쁘다. 한 사람당 할당되는 발언 시간을 정해 놓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게 무슨 대선 토론회도 아닌데 타이머를 작동시킨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그걸 또 일일이 체크하고 시간 분배를 하고 조율하는 것도 결국 내 몫이 되고 말 테니, 발언시간 조정에 관한 생각은 그냥 내 안에 묻어두기로 한다.
우리 모임은 대외적으론 여고동창모임으로 통한다. 왜냐하면 멤버들의 그 관계성을 일일이 설명하기가 난감해서다. 십팔 년 전 이 모임을 처음 조직할 때는 정말로 여고동창들로만 구성되었던 것도 맞다. 그러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친구가 두 명 영입이 되었는데, 그녀들은 각기 다른 학교 출신이었다. 그래도 지금껏 우리 모임은 여고 동창 모임이다. 그리고 비대외적으로 우리 모임은 <써니>라는 조직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영화 <써니>에서처럼 멤버가 일곱은 아니다. 처음에 넷으로 시작해서 두 명 영입되어 총 여섯 명이었다. 그중에 한 명이 십사 년 전 세상을 먼저 떠나고 이제 다섯이 되었다. 서른일곱에 먼저 간 친구는 위암이었다. 그리고 칠 년 전 또 한 명의 친구를 폐암으로 잃을 뻔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독한 정신력으로, 죽음의 강을 목전에 두고도 그 강을 건너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 돌아왔다.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다시 직장으로 복귀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완치 판정을 받긴 했어도 그녀의 삶은 여전히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폐암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그녀이기에 코로나는 더욱 무서울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오십 년을 도덕교과서처럼 반듯하게 살아온 그녀가 얼마 전 일탈 비슷한 것을 했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첫사랑을 만나 둘이서 점심을 같이 먹었단다. 그게 무슨 일탈이냐고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그녀에게 핀잔을 주었다. 병마와 싸울 때는 첫사랑 따위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건강이 회복되면서 가끔 첫사랑이 궁금해지곤 했나 보다.
이십 년 만에 첫사랑을 만나는 날,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학 선배였던 그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향해 그녀는 머쓱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가갔다. 악수를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손을 내밀지 못한 채, 이십 년 만에 그의 얼굴을 마주 보며 안부 인사를 건넸다.
그가 따뜻한 물을 컵에 따라 건네주는데, 무심코 그 잔을 받아 들다가 그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를 만나기로 약속을 한 날부터, 그녀는 평소보다 자주 거울을 보곤 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이쁘지 않았던 그녀의 손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물컵을 건네받는 그녀의 손을 그도 보았을까 싶은 생각에 그녀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여자 손치곤 못생긴 손이 세월 앞에서 더 못생겨지고 쭈글쭈글 늙어버린 게 갑자기 당황스러워진 것이다. 그녀의 모든 세월이 마치 두 손에 얹혀있는 것처럼, 그렇게 그녀는 늙어버린 손으로 겨우겨우 식사를 마쳤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부터 친구들의 시선은 온통 그녀의 손에 향해 있었다. 그리곤 다시 자신들의 손으로 시선이 옮겨져 갔다. 그녀가 첫사랑 앞에서 문득 그녀의 손을 의식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첫사랑 앞에 서면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의 무게를 의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처럼 죽음의 문턱까지 간 적은 없지만 내 첫사랑은 왜 연락도 한번 없는지, 그 또한 낡은 도덕책의 유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런 게 궁금해지기도 한다.
도덕책에 나와있지 않은 세상이 진짜 세상이란 것을 이 나이쯤 되면 누구나 다 아는 것 아닌가. 물론 도덕책에 그려져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는 것을, 이 나이쯤 되면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2020년 12월 27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