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머리채 잡힐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친정집 아파트 복도에서 얼추 늙은 나는 나보다 더 늙은 작은 언니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두 달여 전 소화가 안된다고 동네 의원에서 내시경을 받았던 친정어머니의 위에는 작은 덩어리가 있었다. 얼마 뒤 충북대병원에서 수면내시경 시술을 받기로 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보건소로 pcr검사를 받으러 가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러 갔을 때였다.
아버지가 내게 건네주는 어머니 입원 관련 서류를 자신의 정신병원 입원 서류로 오해를 한 작은 언니는, 벌써 눈에 포악함을 그득 담고 내게 시비를 걸었다. 언니한테 머리채가 잡히자 내 안에서도 날카로운 폭력성이 덩달아 폭발하였다. 급기야 자기에게 맞서 대응하는 동생의 얼굴까지 건드리며 공격하는 둘째 딸을, 늙은 아버지가 막내딸에게서 떼어놓으려고 달려들었다. 울 수도 없는 서글픈 난장판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지만,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에 올라타서 나는 얼른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언니가 내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뭉개는 행위는 했어도,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언니는 동생의 머리카락이 뽑히거나 얼굴에 생채기가 나지 않을 만큼만 무력을 썼던 것도 같았다.
주차를 하고 올라오던 남편은 다행히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나와 pcr검사를 받고 비싸지도 않은 점심을 사드렸다. 소화가 안돼서 잘 드시지 못했던 어머니도 장어 몇 첨과 장어탕을 제법 드셨다. 나는 아버지의 소주잔을 채워드리며, 일부러 입으로 "짠~" 소리까지 내면서 아버지와 함께 낮술을 두 잔 마셨다.
삼십 년 동안 조현병을 앓고 있는 두 딸들로 인해 별의별 험난한 일을 다 겪고 살아온 세월이지만, 몇 해만 있으면 구순인 어머니는 큰 병이 아니라는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 말씀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어두운 심연과도 같은 고통이 너무 깊어서 이제는 그만 살고 싶다고 말씀하실 것도 같은데, 어머니는 여전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난 토요일에 보건소에서 어머니와 함께 한 pcr검사는 다행히 음성이 나왔다. 오늘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시술받으러 오는 날, 나는 멋진 레스토랑에 가는 것도 아닌데 가장 화사하고 생기 있어 보이는 옷으로 신중하게 골라 입고 집을 나섰다. 은행에 돈 꾸러 갈 때와 병원에 가족이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에는, 나는 내가 가진 옷 중에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는다.
오늘 병원에서 시술받고 입원하신 어머니 옆에서, 나는 지금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이 등급과 요양병원비용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어떻게든 당신 한 몸을 꾸려 집에서 생을 마무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기보다, 좋은 시설이나 의료기관에 대해 관심들이 높은 것을 보니 대한민국의 복지제도가 많이 발전하긴 했나 보다.
국가의 복지 혜택 같은 거 받지 못하더라도 우리 부모님은 집에서 남은 생의 날들을 보내다가 가시기를 기도하며, 마지막 잎들을 달고 서있는 가을 나무를 한참 동안 올려다보았다. 허무하고 허탈한 게 인생이라지만, 나는 그 인생을 버티기 위해 병원 앞 해장국집에서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바닥까지 비우고 어둠이 깔린 가을 길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