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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Jan 12. 2023

또 한 번의 겨울

더 이상은 인간으로 볼 수 없을 만큼의 극심한 증상을 보이던 작은 언니는, 이웃 주민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을 향하여 기어이 폭행을 행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동네 지구대에 새로 부임해서 아직 한 번도 작은 언니를 만난 적이 없는 경찰관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동네에선 유명 인사가 되어 있던 작은 언니의 정체에 대하여 미처 상세한 정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공무집행방해혐의로 긴급 체포되어 이송되었던 언니는 장애인 증명서를 들고 지구대를 찾아온 늙은 아버지를 따라 지구대 문을 나서면서도,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계속되는 헛소리를 멈추지 못했다. 심하게 고장 나버린 뇌는 이제 그 어떤 약물로도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지구대의 경찰관들 중에는 친정집의 이러한 사정과 아버지와 어머니, 작은언니와 큰언니의 모습을 알아보는 사람이 몇몇 있기는 하였다. 언니는 지구대에 갔다가 금세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지구대에선 절차에 따라 현행범인체포에 대한 보고서를 상급기관에 이미 올린 상태였다.


사건 이틀 뒤 관할 경찰서에서 친정집으로 날아온 "현행범인체포 통지서"를 보고 놀란 아버지가 내게 서류를 건네주시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지으셨다. 보호자인 아버지가 작은 언니의 공무집행방해 피의사건에 대하여 무슨 큰 책임이라도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근심하는 눈치셨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작은 언니는 얼마 뒤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작은 언니의 거친 저항과 폭력성을 제지하기 위해 오빠는 어쩔 수 없이 완력을 행사하고야 말았다. 나는 차마 그 장면을 볼 수가 없어서 오빠보다 조금 늦게 친정집에 도착했다. 한 해의 끄트머리 새벽에 서울서 내려온 오빠의 차를 타고, 나는 늙은 부모님과 작은언니와 함께 길을 떠났다.


이른 아침의 고속도로에는 안개가 소리 없이 흘러 다녔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마을과 언덕들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겨울의 고요한 정취가 평화로운 세상을 눈으로 덮어주고 있는 것만 같은데, 저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잃어버린 작은 언니의 입에선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것처럼 허튼소리들이 줄줄 새어 나왔다. 


그날은 12월 30일이었다. 어머니는 용인 병원으로 가는 동안 내내 차 안에서 토악질을 하시더니, 청주로 내려오는 길에도 또 구토를 다. 지난가을 대학 병원에 입원하기 전부터 음식 섭취를 잘하지 못하시던 어머니는, 용종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으신 이후로 섭생에 더 불편을 겪고 계셨다. 그 몸을 겨우 일으켜 딸자식을 정신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아와서 급기야 어머니는 걷지를 못하고 계신다.


병이 나면서 폭력성과 거친 성정이 튀어나온 작은 언니의 온갖 행패로, 그동안 다른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친정집에 임의로 드나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작은 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틈을 타서, 나는 부랴부랴 장기요양인정 신청서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였다. 어머니가 저렇게 누워계실 정도의 몸상태가 되도록 요양 인정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을 만큼, 친정집의 특수한 상황은 차마 말로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다.


새해가 어찌 밝았는지, 시간이 어찌 흐르고 있는지 분간조차 사치스러울 만큼 친정집의 상황은 최후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삼십 년 전에 친정집에 닥친 불운한 일들 때문에 펄펄 뛰며 신을 원망하던 시간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잔혹한 운명이라고 신을 저주하거나 항변할 시간조차 남아있지 않다. 오빠와 나는 이러한 상황을 오래전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며칠 전 동사무소에 가서 휠체어를 대여하고 어머니가 입으실 팬티 기저귀를 샀다. 시간의 법칙에 따라 오고가는 삶과 죽음의 연속선상 위에서, 얼추 늙어버린 나는 어머니의 휠체어를 혼자서 차 트렁크에 실을 만큼의 근력을 키우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푸시업을 시작했다. 나의 죽음을 떠올리면 이 모든 삶의 고통과 슬픔들도 오히려 감사한 일들로 여겨지기도 할 때가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입맛 없는 어머니를 위해 돼지고기와 잘 익은 김치를 잘게 다져서 비지장을 끓였다. 나도 살아있고 늙은 부모님도 살아있고 비록 병원에 있지만 작은 언니도 살아있으니, 모두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는 아직 남아있는 것도 같다. 그 시간과 그 마음이 내게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또 한 번의 겨울이 이렇게 지나가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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