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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Feb 12. 2023

버스 두 정거장

머리가 아프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종합병원 신경외과엘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직 점심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기는 했지만,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주차장이 넓은 추어탕집을 들어갔다.


아버지는 틀니를 끼고 나오는 걸 깜빡 잊으셨다고 했다. 그래도 딸내미 그릇에 수제비 세 개를 덜어주시고는 수제비추어탕 한 그릇을 맛있게 다 들고 계셨다. 어머니도 무력한 아기처럼 막내딸의 시중을 받으면서도 추어탕 한 그릇을 끝까지 비우셨다.


햇살이 창가를 통해 테이블 위로 흘러들어왔다. 창을 등지고 앉은 아버지의 백발이 정확한 색채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주 맛이 좋은 집을 찾았다고 아버지는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버스 타고 두 정거장만 오면 여기를 올 수 있다고, 아주 가깝고 쾌적한 식당이 마음에 든다고 자꾸만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시내버스를 타고 나가 육거리시장에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오는 걸 매우 자랑스러워했었다.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 다른 노인들이 버스 타기도 쉽지 않을 때, 어머니는 비록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계시지만 다른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두 다리로 버스를 타고 내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기양양해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버스 부심을 잘 알고 계셨기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버스로 두 정류장 거리"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귀가 많이 어두워진 어머니는 아버지의 "버스 두 정거장" 이야기에도 예전처럼 대꾸를 하지 못하셨다. 이제는 누군가 부축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 한 걸음 옮기는 것조차 버거운 몸 상태가 되어버린 걸, 어머니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추어탕 집의 널찍한 창문 밖 도로 건너편으로 시내버스가 한 대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곧 꽃 피는 봄이 올 텐데,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란히 시내버스를 타고 추어탕집에 다시 방문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내 마음속에서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만의 시내버스 데이트 날짜를 고대하는 건지 분간이 안되는데 눈에서는 공연히 눈물이 났다.


어머니 식사하시는 중간중간 턱 밑을 여러 차례 닦아드렸어도, 어머니가 앉았던 자리의 탁자 아래에는 밥풀이 몇 개 떨어져 있었다. 나는 식사를 마친 어머니에게 겉옷을 입혀드리고 잽싸게 식당 바닥을 휴지로 훔쳐내었다.


아직 겨울이 다 물러간 건 아니지만, 그날은 공기 중에 따스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퍼져 있었다. 부모님 댁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위치해 있는 추어탕집 주차장 옆으로 봄을 기다리는 나무가 애틋하게 서있었다. 그날 그 집 추어탕 한 그릇에는 생의 기쁨과 슬픔이 산초향과 더불어 묘하게 뒤섞여 있었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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