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청춘 스케치 2

by 도라지

기독교 정신이란, 때로 합리적 판단보다 감성적 판단으로 이끌기도 한다. 담임 선생님께선 고3 수험생이 야자까지 빼먹고 무슨 봉사 활동이냐, 니 처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등등의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순순히 귀가를 허락하셨다.


아침보다 가벼워진 책가방을 짊어지고 수정이와 민아 언니를 따라나섰다. 맹학교는 우리 학교 정문에서 백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붙어 있다. 민아 언니가 옆 학교의 교문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서은이는 우리 학교 처음이지?"


"네, 언니~ 그런데 학교가 우리 학교 도서관이랑 같은 붉은 벽돌색이네요~"


"응, 니가 본 그대로야, 너네 학교 도서관 건물하고 지금 우리 학교 본관 건물은 오래전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거래. 미국 선교사 부부가 지은 거라고 들었어~"


아, 그래서 우리 학교 후문 옆에 있는 동산교회도 붉은색 벽돌이구나 이해가 되었다. 건물 양식도 서구 양식으로 모두 비슷했다. 붉은색 학교 본관 앞에 선교사 부부에 관해 설명하는 기념비가 있으니, 다음에 꼭 읽어보라고 민아 언니가 당부했다.


언니를 따라 맹학교 본관으로 신발을 벗지 않고 들어섰다. 난생처음 와보는 곳이기도 하지만, 적막한 건물 내부가 오히려 흥미로웠다. 맹인 학생들을 위해 벽면과 난간으로 기다란 봉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벽면에는 선교사 부부로 보이는 외국 남자와 여자의 사진도 걸려 있었다.


언니가 잠시 기숙사 방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수정이가 언니를 따라 기숙사 쪽으로 향하고, 나는 혼자 이층에 있는 어느 교실에 앉아 있었다. 민아 언니도 수정이도 교실에 불을 켜는 걸 잊은 것 같았다. 석양의 한 줄기 빛마저 사라지고, 교실은 이내 어두워졌다. 굳이 스위치를 찾아 환하게 불을 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상하게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창 밖으로 도로 맞은 편 동네 불빛들이 반짝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을 향해 서있었다.


그때 저쪽 문이 열리면서, 딱 딱 바닥을 두드리는 지팡이 소리가 났다.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한 사람이 천천히 내 쪽을 향해서 다가왔다.


"누구세요? 여기 누가 있는 거 같은데요~"

그가 빈 허공을 향해서 물었다.


"아, 안녕하세요~저는 신민아 언니랑 같이 공부하고 있는 옆 학교 학생이에요."


나는 간단하게 나의 신분을 밝혔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가 내 얼굴로 그의 손을 가져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마와 눈두덩이를 지나 콧날을 살짝 스치는가 싶더니, 이내 그의 손을 거두어들이며 그가 말했다.


"예쁘게 생겼네요~목소리도 예쁘구요. 내가 갑자기 얼굴을 만져서 놀란 건 아니죠?"


물론 당연히 놀랐다. 더구나 그가 너무 잘 생겨서 놀랐다. 도로가에 서 있는 가로등의 불빛이 희미하게 창문으로 새어들고 있었다. 나보다 대여섯 살은 많아 보이는 그 남자는 안경도 쓰지 않은 채로 초점 없는 눈동자가 눈 안에 갇혀 있지만, 분명히 잘 생긴 얼굴이었다. 목소리가 예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서, 가끔 손이 먼저 상대방 얼굴 쪽으로 가곤 해서 곤란한 적도 많았다고 그가 사과를 겸하여 내게 말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못 생긴 남자가 내 허락도 없이 내 얼굴에 손을 댔다면, 성추행이다 뭐다 하며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그런데 웬일로 내 마음이 그렇게 요란을 떨고 싶지가 않았다. 저 남자의 손끝이 내 입술까지 닿은 것도 아니고, 저 사람도 호기심에 궁금하여 생긴 일이라고 사과하고 있지 않은가? 조용히 넘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았다.


(2021년 10월 1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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