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날씨가 화창한 토요일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평소 즐겨 가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나는 오전에 미리 약속을 잡아놓은 사진관 주소를 남편에게 알려주었다. 얼떨결에 영정 사진을 찍으러 가게 된 어머니는 황당한 나머지 미심쩍어하시며 사진관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떨떠름한 기색을 내비치고 계셨다. 요즘은 한복을 입고 가거나 따로 싸들고 가지 않아도 컴퓨터로 옷을 예쁘게 입혀준다고 설명드려도 어머니는 한사코 믿지 않으셨다. 사진관에 한복이 몇 벌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만 여기는 눈치였다.
간신히 한 발짝 옮기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어머니가 사진관에 들어서자 서둘러 머리빗을 찾으셨다. "미장원에라도 다녀왔어야 하는 건데~"라고 중얼거리며 어머니는 백발의 파마머리를 정성껏 빗어 넘겼다. 찰칵찰칵 몇 컷을 찍고 나온 아버지 다음에 어머니가 카메라를 마주 보며 의자에 앉으셨다. 귀가 어두운 어머니에게 큰소리로 옅은 미소를 지어보라고 소리 높여 외쳐보아도, 어머니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지 못하셨다.
순식간에 촬영을 마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앉아계신 앞에서, 사진사가 여러 색깔의 옷들을 컴퓨터 화면에 꺼내보였다. 처음 접하는 신문물에 눈이 휘둥그레질 새도 없이 아버지는 양복점에서 새로 양복을 맞춰 입는 사람처럼 신중하게 양복 색깔과 넥타이 색깔을 골랐다. 어머니도 오빠 결혼식 때 입었던 옥색 계열의 한복과 거의 흡사해 보이는 한복을 골라내었다.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식 때만 해도 어머니는 젊고 활기찼으며, 백 사람도 부릴 만큼 기세가 남달랐다. 수녀원에서 돌아온 두 명의 딸들이 가끔 소란을 피웠지만, 그 또한 주님의 위대하심을 증명하기 위해 잠시 스쳐가는 마귀의 장난일 거라고 굳건하게 믿고 계실 때였다. 물론 어머니의 광기 어린 믿음은 지금도 강렬하게 살아있지만, 야속하게 흘러버린 삼십 년 세월 속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 늙어버렸고 막내딸인 내 머리도 어느덧 반백이 되어버렸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촬영한 두 분의 영정 사진은 부모님의 우려와 달리 썩 잘 나왔다. 며칠 뒤 영정 사진 액자를 들고 다시 부모님 댁에 가서 보여드리니 두 분이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그날 점심을 사드리고,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보건소로 향했다.
아버지에겐 일전에 미리 동의를 구했으나, 귀가 너무 어두워서 설명을 드렸어도 잘 알아듣질 못하셨던 어머니는 또다시 엉겁결에 막내딸과 남편을 따라나섰다. 보건소 직원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자,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이게 누구한테 무슨 혜택이 있는 거냐고. 그래서 막내딸인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오빠한테 좋은 거라고.
그날 보건소에서 우리는 총 세 장의 의향서를 작성했었다. 두 장은 부모님이 서명한 것이었고, 나머지 한 장은 내 서명이 들어간 것이었다. 그런데 보건소 직원의 설명을 듣다 보니, 이게 아직 내 나이에 서둘러 작성할 서류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슬그머니 내가 작성한 의향서를 두 번 접어서 가방에 집어넣었다. 구순 부모님께 작정하고 사기 친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은 공연히 떳떳하지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낮에 보건소에 갔던 일을 들려주었다. 나도 서명했었다고 말하자, 남편이 화들짝 놀라며 내일 당장 가서 철회 신청을 하라고 종용하였다. 나는 가방 속에 반듯하게 접혀있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종이를 꺼내서 남편 눈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이상하더라고요~ 막상 이걸 쓰는데, 갑자기 막 진짜 열심히 즐겁게 살고 싶어지는 거야. 산다는 게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일인지.. 희한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음 날 아침 일찍, 요즘 도로 입맛이 없어진 어머니가 걱정된 아버지는 카드를 내 손에 쥐어주며 어머니 모시고 가서 제일 비싼 영양제 주사를 맞히라고 했다. 어머니가 영양제 맞는 동안 나도 어머니 병원 침상 옆에 나란히 누웠다. 살짝 열린 문 틈 사이로 대기실 텔레비전에서 조용히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