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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Jun 12. 2024

집으로 가는 길

집을 나서며, 나는 맥주캔 하나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저녁에 돌아와서 반드시 그 맥주를 마실 요량이었다. 서둘러 부모님 댁으로 차를 몰았다. 11시까지 도착하겠다던 막내딸을 기다리던 부모님은 벌써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 내려와 앉아계셨다. 아파트 공동현관으로 올라가는 낮은 계단 위에 출입구 지붕이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처마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곧 숨이 끊어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만큼 앙상하게 마른 아버지가 어머니를 부축하여 낮은 계단을 내려왔다. 내가 운전석에서 내려 어머니 엉덩이를 손으로 받치며 뒷좌석에 어머니를 태우자, 아버지는 운전석 옆자리로 혼자서 앉았다. 두 언니가 입원해 있는 정신 병원에 면회를 가려고 나는 늙은 부모님을 차에 태우고 길을 나섰다.


고속도로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아직 어린 고라니 한 마리가 일차선 왼쪽 옆으로 누워있었다. 어디 상한 데 없이 깔끔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일어나 다시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지만, 정오를 향해 가는 시간임을 감안한다면 고라니는 지난밤에 일을 당하고 이미 숨을 거둔 지 꽤 되었을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하는 것은 언제나 시간과 에너지가 몇 곱절로 소모되는 일이었다. 몸에 병이 들어 입맛이 잘 돌지 않을지언정, 요즘 들어 부쩍 부모님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식당에서 외식하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서울서 병원에 가져갈 음식을 장만해서 내려오는 새언니와 약속한 시간에 맞추려고, 부모님을 모시고 휴게소에 들러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이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한참을 빗나갔다. 일반 식당보다 차량이 많고 공간이 넓은 휴게소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모시고 움직이는 데 더 많은 번거로움이 있다는 걸 나는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식사를 하고 커피도 한잔 사서 나누어 마셨다.


나이 오십에 운전면허를 따고도 겁이 많아서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 본 적이 없던 아버지는 신기하게도 길 눈이 밝았다. 아버지는 누가 운전하는 무슨 차를 타든 한 번 다녀간 길은 금세 외워버리곤 했는데, 특히나 충청과 경기, 서울 지역의 도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티맵 추천 경로의 출중함을 무시해서라기보다는 막내딸의 어설픈 기계 활용능력을 염려한 백발의 아버지가 신갈 쪽으로 가지 말고 봉담 쪽으로 가야 한다고 코치를 해주었다. 능력이 탁월한 티맵이 백발노인의 염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알아서 봉담 쪽으로 길안내를 잘해주었다.


새언니는 병원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코로나 시국이 끝난 듯 보여도 여전히 병원에서 환자를 면회하기 전에 방문객들은 전원 의례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해야만 한다. 매점 앞에 마련된 면회 장소엔 우리보다 앞서 두 팀의 방문객들이 면회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새언니가 정성껏 마련해 온 음식들이 탁자 위에 예쁘게 펼쳐지고, 늙은 어머니의 힘없는 두 팔이 부산스럽게 탁자 위에서 흔들리며 오갔다.


지난번 면회 때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오지 못했다가 이번에 함께 온 것을 보고, 언니들은 저희를 퇴원시켜서 집으로 데려가려는 줄로 알았던 모양이었다. 지난겨울까지만 해도 "당장 퇴원시켜서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성화를 부렸던 어머니마저 "여기서 조금만 더 치료받고 오라"며 딸들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며 혼자서는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려운 어머니의 몸 상태 역시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생활해야 하는 처지였기에, 조현병을 앓고 있는 두 딸을 집에서 30년 동안 거두며 살았던 어머니의 쇠심줄 같은 그 고집을 더 이상은 부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일 년 동안 언니들의 머리는 어느새 반백이 되어 있었다. 두 언니의 치아는 몇 개씩 썩은 게 보였고, 작은 언니는 자꾸만 엄마 옆으로 기대어 무거운 눈꺼풀을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처참해지는 두 언니의 몰골을 마주하며, 당장이라도 내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덜컥 들기도 하였다. 귀가 들리지 않아 손으로 귀모으며 앞으로 몸을 숙여 이야기를 듣고 계시는 아버지의 눈에 피로가 밀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병원에 와서 화장실을 한번 다녀오긴 했어도, 어머니의 바지 아랫춤이 오전보다 무거워져 있었다.


백발의 노인 두 명을 모시는 것도 힘에 부치는데, 가여운 마음에 내가 언니들을 집으로 데려간다 한들 나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게 자명했다. 한밤 중에 집 앞으로 찾아와서 문 열어달라고 행패를 부리던 작은 언니를 피하기 위해서 이사를 간 뒤에도, 부모님께조차 집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언니들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래된 연민에서 비롯된 착각일 뿐이다. 환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고, 거동이 불편할 뿐 의식이 또렷한 부모님은 그분들의 바람대로 집에서 최대한 머물다 돌아가시도록 하는 게 나의 할 일임을 나는 다시 상기해야만 했다.


큰 언니가 먼저 제 병동으로 올라가고, 작은 언니를 병동 앞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한 무리의 환자들이 작은 언니가 지내고있는 병동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언니는 우리에게 대충 손짓을 하면서 그 무리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반백의 머리를 허리춤까지 길게 묶어 내린 여자와 입술에 주황색 립스틱을 삐뚤게 바른 여자도 그 무리에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걷다가, 이내 커다란 지붕이 있는 쉼터에서 걸음을 멈추더니만 그들만의 대열을 갖춘 듯이 빙 둘러 서며 재빠르게 한 대씩 담배를 입에 물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한 개비의 담배를 건네주는 이는 담당 간호사였다.


그들 앞으로 저만치 떨어진 연못에서 분수가 몇 가닥 세차게 피어올랐다. 그들이 몰려 있는 야외 쉼터 옆으로 푸른빛의 나무들이 싱그럽게 빛났다. 빨갛게 익은 보리수 열매들이 햇빛을 받으며 주렁주렁 늘어져 있는데도 아무도 그것을 따먹지 않았다. 하얀색 나비가 한 마리 병동 앞 길가에 야트막한 초록의 나뭇잎 사이를 날아다녔다. 아버지는 혼잣말로 "여기만큼 시설 좋고 경치 좋은 데는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국내에 이만큼 규모가 크고 자연환경이 수려한 병원이 없을 거라는 데 모두가 동의하였겠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병원 앞마당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와 거기에서 생활하는 두 언니를 남겨 두고 우리는 다시 차를 탔다. 얼마쯤 달렸을까, 순조롭게 달리던 고속도로에서 느닷없이 돌멩이들이 자동차 유리로 날아들었다. 옆 차선을 달리고 있던 커다란 화물트럭에서 날아든 것 같았다. 지난 밤에 불현듯 들어선 길에서 로드킬을 당했을 고라니의 운명의 무게와, 한 치 앞을 모르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 운명의 무게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때에 이르러 소멸할 뿐이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소멸하게 될지 알 수 없는 그 길을 달려 부모님을 집에 모셔다 드리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고 싶다던 언니들의 몽롱한 눈빛과 불분명한 음성을 가슴에 담고 나 혼자서 집으로 돌아와, 집을 나서기 전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맥주캔 하나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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