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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Aug 31. 2024

공수래공수거의 역설(逆說)

서울연구원이 2023년 10월 30일 발표한 ‘서울시민 정신건강 실태와 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19~74세 서울시민 2149명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52.5%는 1개 이상의 정신건강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이 답변한 정신건강 문제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이 33.8%로 가장 높았고 이어 ‘우울(26.2%)’, ‘불면증(19.0%)’, ‘불안(16.8%)’, ‘알코올 사용 장애(16.5%)’, ‘극단적 선택 생각(13.7%)’ 등의 문제들이 있었다. 이러한 통계 결과는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1위라는 타이틀을 몇 년째 거머쥐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근거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존재를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 즉 현존재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한다. 유한적인 시간성 속에 머물다가 사라져야만 하는 인간 존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계 속으로 “던져진 존재(being thrown)”로서, 인간은 불안을 통해서 이러한 상황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에게 인간 존재 방식은 ‘불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인간이 신처럼 무한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면, 인간에게 불안의 요소는 하등 쓸모가 없어질 뿐이다. ‘불안’은 유한한 존재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불안’ 속에서 역사는 진화하고 문명은 발전하였다. 세계 내 존재로서 인간이 이룩한 모든 문명은, 바로 불안을 근거지로 하여 탄생하였다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불안’이라는 요소가 우리에게 생존과 발전의 도구로서만 작동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인 매개체일 것이나, 급변하는 사회에서 존재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겐 더는 긍정적인 매개체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도 건강한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일수록 사고의 비율이 낮아지고 그만큼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social cost)이 절감하며 상대적으로 생산성은 높아진다. 그러한 까닭으로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는 신체의 질병 못지않게 국가와 사회가 함께 개입하여 풀어가야 하는 과제가 아닐까 싶다.

     

동양의 고전적인 가치관에서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一切唯心造)”고 가르치고 있으며, 서양 철학의 전통은 “내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구성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동양에서 말하는 '마음'과 서양에서 말하는 '인식'은 결국에는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만사가 다 나의 생각 속에서 지어졌다가 허물어지는 것뿐이다.


모든 존재가 어차피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한번 왔다 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인생의 덧없음을 애달프게 여길 것이 아니라 “공수래공수거라서 차라리 공평하고 좋구나”라고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때가 되면 모든 것은 소멸하고 결국 나도 사라진다. 무(無)로 돌아가는 날까지, “현재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하며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인생살이의 가장 빛나는 업적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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