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늙고 병든 부모님 가운데 특히나 아버지는 아직도 당신의 기획대로 상대방을 움직이려 한다. 평생토록 그 대상은 언제나 바깥세상에 있지 않았다. 숫기가 없고 남한테 싫은 소리 듣는 걸 딱 질색하였던 아버지의 기획 대상은, 아버지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처럼 보이는 어머니와 딸들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아버지는 늙은 그의 마누라와 막내딸을 상대로 언제나 계획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 대장암 수술을 크게 하고 현재 전립선암까지 갖고 생활하는 아버지는 치료약과 우유와 요구르트 외엔 별다른 영양제 섭취도 없는 편이다.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에겐 비급여 고가 영양제를 정기적으로 권장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어머니를 당신보다 하루라도 더 살려놓고자 하는 기획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아버지는 다른 노인들처럼 노인들이 많이 가는 시설(요양원, 요양병원)로 이동하는 일 없이 부득불 집에서 저승길을 떠나고 싶어 한다. 이렇듯 강인한 아버지 의지의 표출 가운데 으뜸은, 역시나 아버지에게 밥을 해줄 마누라가 당신보다 하루라도 더 건강하게 살아남는 방법뿐이라고 아버지는 일찌감치 셈을 마치셨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의 인생이 그러하듯 사람의 계획대로 되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아버지는 당신의 죽음 자리에 대한 계획에서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하고 있다.
아버지의 비장한 각오와 신속한 셈 덕분에 작년에 휠체어를 타야 했던 어머니는 지금은 혼자 걸어서 성당에도 가신다. 내 걸음으로 이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 성당에 가기 위해서, 어머니는 미사 시간 두 시간 전에 집을 나선다. 쇳덩이처럼 무거운 다리를 끌듯이 들어 옮기며 한 발짝 내딛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탓이다.
어머니가 그렇게 기어서라도 일어나 성당을 가는 이유는 정신병원에 있는 두 딸에 대한 사무치는 정 때문이며,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완쾌의 기적'에 대한 소망 때문이다. 뇌의 분비물과 호르몬 등에 관한 의학적 지식이 없는 까닭에, 어머니는 아직도 두 딸들 속에 도사리고 있는 마귀만 떠나보내면 두 딸이 어여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삼십 년 가까이 류머티즘을 앓고 계신 어머니는 국가로부터 산정특례 적용을 받고 있다. 부모님 댁으로 갱신 신청에 관한 우편물이 날아오자, 아버지는 토요일에 즉각 막내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월요일에 들르라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무시하고 성질 급한 막내딸이 일요일에 찾아뵙자 아버지의 안색이 변하였다. 아버지는 월요일에 막내딸을 통해 해야 할 일을 무언가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복과 말복에 삼계탕집을 가자고 하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나가서 고생 끝에 삼계탕을 사드리고, 때마다 이 병원 저 병원 모시고 다니며 치료받고 처방약 지어오는 여타의 일들을 아버지는 다 아버지의 계획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양반이다. 늙고 병든 부모님만 생각이 있고 계획이 있는 게 아닌데, 그분들 수발들고 다니며 부모님 댁 집안 살림까지 돌봐야 하는 나에게는 나의 일이 없고 스케줄이 없겠는가.
아주 오래전 귀한 아드님에게 모든 걸 맡기며 일종의 계약을 맺었던 아버지에겐, 지금 부모님을 돌봐드리고 있는 막내딸에 대한 계획은 일절 없었음이 틀림없다. 아버지가 말년에 대장암 수술을 하게 될 줄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언니들이 병원에 입원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병환으로 줄줄이 병원에 입원했었다. 삼십 년 넘는 세월 동안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두 딸을 돌보느라 부모님은 당신들 건강을 챙길 새가 없었다.
이제 구십이 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이 갸륵하고 불쌍하여, 나는 아버지의 계획대로 지금도 움직이는 편이다. 월요일 오라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어기고 하루 일찍 가서 서류를 확인하는 나의 조급함과 강박을 다시 한번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