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들
01.
살다보면 어느 순간 미래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과거가 차곡차곡 쌓여 현재의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에서 어떤 운명이 손짓하며 나를 불러 현재가 응답하고 있다는 느낌.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 것 같다는 이상한 감각이 들 때 오히려 미래가 나를 부른다는 상상을 한다. 이 공백에 어떤 이유든 붙이지 않으면 내 삶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매트릭스에서 오라클이 이런 말을 한다. '넌 이미 선택을 했어. 네가 여기에서 선택을 하는 이유는 네 선택을 네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야.'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하는 이유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이든 납득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러니 지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은 언젠가 이해하게 되어있다. 미래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으니까.
02.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비극 예술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구절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플로베르의 소설을 덮으면서 우리가 사는 방법을 배우기도 전에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제한적이하는 사실에 대해, 우리 행동이 엄청난 파멸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잘못에 대한 공동체의 반응이 무자비하다는 사실에 대해 두려움과 슬픔을 느끼게 된다.'
타인의 존재는 존재 자체로 불안이 된다. 남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 대해, 남이 나보다 잘 사는 것에 대해, 나를 더 사랑하지 않는 것에 우리는 참을 수 없는 불안과 외로움을 느낀다. 이런 불안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배우지 못한 채로 우리는 살아간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쨌거나 불안이라는, 칼날 위에 서있는 것 같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이 정서는 죽기 전까지 나와 함께 걸을 것이 분명하다. 무덤에 들어가서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이 정서를 살아가는 내내 어떻게 다루어야 좋은 것일까. 알랭 드 보통은 책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내 능력치를 높이거나 내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이십 대 중반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적지근하게 삶을 흘려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