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초등학교 교사 1년 차의 삶을 살고 있다. 연말이 되면서 이제 학교에서 만난 첫 번째 제자들과의 시간을 슬슬 정리하고 있다. 있었던 일들을 모두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만 그중 가장 요란했던 것은 의외로 외부와 나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내 내면의 갈등이었다. 그 순간순간은 외부를 탓하고 원망했던 것 같은데, 결국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의 흉한 마음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마음의 소용돌이가 소용돌이가 일었던 첫 한 해였다.
당시에는 무시하는 말을 던진 사람이 나에게 모멸감을 줘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사실 무시하는 말을 받은 내가 어린이인 상대를 폭력적으로 대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고, 그 흉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지금까지 얌전을 차리며 고상한 척 살아왔는지. 나도 열어 본 적 없는 나의 지저분함과 악함이 밤송이처럼 , 판도라의 상자처럼 까발려졌다. 아이들로부터 폭언을 들으면 보편윤리로 정당화할 수 없는 상상이 시작되고, 그것을 에둘러 입 밖으로 내뱉으면 ‘선생님이 어떻게 그래’, 또는 ‘그래도 선생님이니까’로 시작하는 말이 돌아왔다. 숨통이 막 조여왔다.
공유할 수 없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블로그에도. 불쑥불쑥 나타나는 흉측한 마음을 나조차도 받아들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홀로 떠올리고 저주했다. ‘나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구나’. 애초에 심성이 곱지가 않고, 인류애도 없는데 왜 이 자리에 서 있나. 교직적성 검사는 나 같은 사람을 왜 거르지 못했나.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지 얼마 안 되는 꽤나 짧은 기간 안에, 윤리적 삶을 나름 잘 추구해왔다고 생각한 한 사람의 도덕성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기대와 다르게 나에게 닥친 문제에 대해 함께 싸워주는 누군가는 없었다. 교직관과 비전도 교사마다 다르고 공유되지 않아 조언을 들어도 도통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말 그대로 '개인플레이'다. 교사는 학급 공동체 속의 유일한 어른이므로 공동체 속 대부분의 문제들에 대해 홀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 버거움을 공동체 속에서 표현하고 공감받기는 쉽지 않다. 일단 누르고 본 내 감정이 얹힌 상태로 학생의 감정을 받아내다 체하는 일이 빈번했다.
살다 보니 권력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교사가 되기 전, 학생들과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며 존중하는 이상적인 교실을 그렸다. 그게 더 좋은 교육을 일굴 것을 믿었다. 하지만 교실에서 질서가 위태로워지면 '혼'을 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면 단골처럼 문을 두드리는 의심. 지도의 도구가 되는 '혼 냄'이 동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수직 관계는 교육에 있어 불가피한 것인가? 남을 통제하기 위한 권력은 세상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제하고 지도할 권위가 어디서 나는지 나조차도 납득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대체로 애매한 분노와 무기력의 감정을 느끼며 삼켰다. 그런 감정은 결국 내 속에서 썩어 흉한 모습의 꽃으로 핀다. 흉한 꽃이 너무 많아 버거워지면 스스로 정당화되지 않는 권위의 빈틈을 권력이라는 시멘트로 꽈악 메우기로 결심한다. 그러고는 내가 부리는 권력에 체하고 내가 만든 모순을 자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동등하게 생각하면 그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더 많이 받게 된다. 내가 바라는 만큼 나의 감정을 고려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들을 어리고, 철없고, 무지한 존재로... 생각하면 그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던지 아픔이 크지 않다. 실제로 상처를 잔뜩 받은 다음 날, 나를 보호하자는 일념으로 우리의 관계를 종적인 것으로 정의하며 출근했다. 그들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고, 사소한 것도 고민하지 않고 관여하며 혼을 냈다. 참 우습게도, 출근일 중 가장 수월한 하루였다.
무엇이 맞는 것인지, 졸업일이 다가오는 이 시기에도 계속 생각한다. 내가 아이를 혼낼 때, 아빠가 강아지를 혼낼 때, 누군가가 돼지를 혼낼 때 불편한 마음이 벌컥 문을 연다. '우리가 뭔데?' 그 뿌리는 권력에 대한 예민함과 반감 때문일 거다. 졸업이 지나도 내년에 만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우리가 만들 공동체가 그들의 삶에 보다 좋은 영향을 미칠 토양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