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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맏이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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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Sep 13. 2023

맏이 15. 사관 후보생 지원

1950년 2월 1일

   

당시 경기도 시흥에 있던 보병학교에서 3개월, 후반기 3개월은 김포에 있는 공병학교에서 교육받기로 되어있다. 51통신대대에서 많은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드디어 2월 1일에 입교했다.

 과연 훈련은 심했다. 쉴 시간조차 없는 교육계획표는 나를 긴장시켰다. 매주 한 번씩 있는 시험도 그랬고 특히 암기하고 복창하는 대목에 와서는 나를 당혹케 했다. 서툰 말씨는 동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남보다 이중 삼중의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같은 민족이기에 인간 멸시로 대하기보다 차라리 애교로 취급해주었기에 마음은 편했다. 이 훈련은 나 자신이 조국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것이요 또한 나의 인생을 살찌게 하는 과정이기에 일본에 있을 때와는 그 근본 목적이 달라 나에게 있어 희망을 품게 해주었다. 하루하루의 훈련은 지체없이 진행되고 보병학교의 3개월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수료식 날 오후 우리는 김포의 공병학교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날 불행하게도 사고가 났다. 보병학교에서 수료식을 마치고 그 축하파티에서 과음한 몇몇 후보생이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린 것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학교 내인데도 아랑곳없이 소변을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옷을 벗어 내던지는 등 그 모양이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침 환영차 나와 있던 공병학교장 그리고 교수부장 등 관계자는 놀랐다. 이럴 수가! 교장은 화가 나서 우리 후보생 60명을 정렬시켜 무조건 운동장을 도는 구보를 명령했다. 한 바퀴, 두 바퀴 도는 사이에 7, 8명의 후보생이 대열에서 떨어졌다. 숨이 차 더 이상 뛸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그 후보생들은 그날로 퇴교당했다.

보병학교에서 3개월 동안 그 모진 훈련을 감내하면서 이제 후반기 교육을 받게 되는 이 찰나에 그놈의 축하 술 한 잔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입교일부터 이런 수치를 안고 우리는 나머지 후반기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교육은 착실히 진행되었고 실습 위주의 일과도 재미있었다.


고향의 소식은 없었다. 교육 중에 일요일이면 외출도 있었으나 거리 관계상 1박이면 시간이 부족해 고향은 가지 않고 인천에 있는 8촌 형님 집이나 한두 번 갈 정도로 피로를 풀었다. 8촌 형님은 우리 집안의 장손인데도 자식이 없어 쓸쓸하게 지내고 있는데 노모를 모시고 후처로 얻은 자식 딸린 아주머니는 서울 사람으로 퍽 친절했다. 그 형님은 아버지와 동갑 나이였으나 부지런한 사람으로 큰 황소로 짐을 실어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1950년 유월 하순의 졸업 날짜는 아직 확정되지 않고 있었으나 머지않아 장교 계급장 다는 그 순간을 꿈꾸며 마무리를 위한 특별외출을 했다. 고향에 가고 싶었으나 교통도 불편하고 그보다 소위 계급장을 달고 가고 싶었기 때문에 뒤로 미루고 이런 기회에 인천에 가서 그동안 보관해 두었던 사물도 정리하고 형님께 문안도 드릴 겸 발걸음도 가볍게 인천에 간 것이 6월 24일이었다.

 그날이 토요일이고 1박 2일로는 적당한 거리이기도 했다. 형님은 오랜만에 온 나를 반갑게 맞으면서 내일은 일도 하루 쉬니 월미도 구경이나 가자며 기분 좋아하셨다. 날씨는 무척 무더운 바람이 불었다. 내일 날씨는 어떨까? 집 앞의 과수원 배밭에 싱그러움이 더하니 머지않아 배가 주렁주렁 익어가겠지. 아주머니와 그 딸은 부지런히 저녁준비에 바쁘다. 밤늦게까지 이 이야기 저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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