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네 늙은이 즉 보답회(步踏會)의 바기오 살아보기 기간인 보름이 되었다. 원래 한 달간 살아보기로 계획을 세웠으나, 바기오에서 한 달간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보름으로 줄였다. 그래서 보름간 체류하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다. 돌아가는 것은 오는 것의 역순이니 별로 어려울 것이 없었다. 이곳 오지(奧地)로 오는데 장시간 버스 이동에 모두들 지쳤는지 좀 더 편안한 이동 수단을 찾자고 주장했다. 항공편이 없고, 기차 또한 없으니 선택 가능한 것은 승용차와 버스뿐이다. 둘 중 가장 편한 승용차를 이용하자는 주장이 강했다. 그래서 이곳에 도착했을 때와 시내 투어를 이용했던 택시 기사에게 연락을 하여 마닐라 공항까지 수송을 협의했다. 회원들 모두가 일일 택시 투어 경비를 생각하고 택시 이용을 주장한 모양이다. 그 기사와 협의한 결과 8,000페소를 받아야 한단다. 일일 대절 택시는 4,000페소였는데 두 배의 금액이다. 우리 돈으로 20만 원이고 1인당 5만 원 수준이다. 한국의 상황으로 편도 5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를 감안하면 그리 비싼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필리핀에서 20만 원이 소요되는 것은 좀 과하다고 생가각된다. 더구나 고속도로 통행료는 별도란다. 과감히 포기했다.
<승차권 매표소와 대합실>
<승차권 매표소>
<버스 시각표>
그다음의 선택지는 버스 밖에 없다. 그래서 바기오 버스 터미널에 가서 상황을 알아보았다. 우리나라 60년대 시골 버스 정류장 같이 생겼다. 바기오의 SM City 쇼핑몰 근처에 있다. 그곳에 여러 버스 회사가 공용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마닐라와 마닐라 공항 방면의 운행은 크게 두 버스이다. Joy Bus와 Genesis Bus이다. 제네시스 버스는 우리가 올 때 타고 온 버스이다. 이 버스들도 버스 차량의 상태에 따라 등급과 가격이 나뉘어있다. 제네시스 버스는 Deluxe와 Premier로, 조이 버스는 Premier와 Executive로 차등이다. 정류장의 버스 출발 시각표가 붙어 있는데, 종이에 줄을 쳐서 손글씨로 또박또박 써 놓은 것이 전부다. 우리처럼 전광판이나 제대로 된 안내판은 없다. 마닐라를 들리지 않고 마닐라 공항 제3터미널로 직행하는 버스가 있어서 좋았다. 마닐라 공항의 연문 약어는 NAIA이다.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을 줄인 것이다. 마침 12시 출발의 조이 버스 프레미어가 있어서 우리는 그 차편의 좌석을 예매했다. 요금은 1인당 960 페소로 4인 합계 3,840페소이다. 우리 돈으로 1인당 24,000원이고 4인 모두 96,000원이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 KTX에 비하면 엄청 싸다. 물론 걸리는 시간은 제외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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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시각표 안내 데스크
<출발을 기다리는 버스>
<제네시스 버스>
출발 당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바기오에서 마지막 아침밥을 지어먹었다. 반찬과 식료품들이 남은 것을 모두 모아서 반찬을 만들고 남는 것은 모두 버릴 수밖에 없다. 마지막 식사는 우리식의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여서 든든하게 먹었다. 설거지 전담인 송재(松齋)가 설거지하는 동안 집안의 식탁이나 거실 탁자 등 물건들을 정리해서 원위치하고, 대충 청소를 마치고 쓰레기를 버린다. 짐들은 대부분 어젯밤에 정리해서 모두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다. 보름 동안 거주하는 기간에 얼굴 한 번도 못 본 호스트에게 잘 있었다고 연락하고, 열쇠를 맡기고 출발했다. 집 소개서에는 자기가 빵을 잘 굽기 때문에 손님들에게 빵을 대접한다고 쓰여 있었는데 빵은커녕 얼굴도 못 봤다. 이젠 바기오 지리를 웬만큼 알아서 거침이 없다. 큰길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아서 대중교통인 지푸니를 타고 이동했다. 아직 버스 출발 시간이 남아서 정류장으로 가지 않고 우리의 아지트였던 SM City로 가서 마지막 커피를 마시고, 점심 식사 대용한 스낵을 사야 한다. 커피를 마시고, 프랑스식 빵집에 들러서 점심용 빵을 사고 슈퍼마켓에서 음료수와 필요한 간식을 구매하여 버스 터미널로 갔다.
<바기오 버스 터미널 전경>
<바기오 버스 터미널>
버스에 우리가 일착이다. 여행용 트렁크를 버스 밑의 짐 싣는 곳에 넣고 사진을 찍었다. 이곳에는 짐을 실으면서 교환표 같은 것도 주지 않는다. 그냥 옛날 우리네 시골 스타일이다. 분실되는 경우가 없는 모양이다. 이제 빠르면 5시간 늦으면 6시간 정도의 긴 여행을 해야 한다. 이 버스들은 중간에 휴게소도 없는 것 같다. 그냥 Non-stop으로 목적지까지 달린다. 용변은 차량 내의 화장실을 이용한다. 그래도 유럽 버스들은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는데 여긴 그렇지 않다. 버스에서 감식으로 점심을 데우고 자다가 말다가 5시간이 결려서 드디어 마닐라 공항 제3터미널 근처에 도달하고 있었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현지 시간으로 밤 1시이다. 버스에서 짐을 찾아서 어슬렁 거리면 공항 출국장에 도착하니 6시가 조금 덜 된 시각이다. 남은 시간이 넘친다. 7시간 이상을 공항에서 죽치고 있으려니 대략 난감이다. 비행기 보딩패스 발급도 최소한 3시간 전에나 데스크를 개방하니 그 시간까지도 아직 멀었다. 이곳 교통이 하도 말썽이라는 소문에 만약을 대비하여 바기오에서 너무 일찍 출발해서 생긴 탈이다.
<버스 터미널 맞은 편 담벼락 벽화>
<버스 터미널>
<귀가한다니까 모두들 좋은 듯>
<비스 승차권 모양>
보딩 패스를 발급하지 못하니 수하물도 같이 끌고 다니면서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다. 공항에서 이런 경험이 많았던 금삿갓이 하나의 꾀를 냈다. 급행료를 주고 먼저 보딩패스를 받아서 면세구역에 들어가서 기다리자고 했다. 마닐라 공항의 출국장은 무척 불편한 시스템이다. 하다 못해 담배 하나를 피우더라도 밖으로 나가려면 지정 출구로 나갔다가 들어와야 한고, 항공권과 여권을 일일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출국장이 너무 붐벼서 대기하기가 힘들다. 모두들 동의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때 저쪽에 공항 직원의 눈빛이 반짝이는 친구가 있어서 은근슬쩍 말을 붙이니 급행 처리가 가능하단다. 1인당 250페소 즉 1,000페소를 주면 해결해 주겠단다. 우리 돈으로 25,000원이다. 그렇게 하지고 합의를 하고 슬쩍 그 친구의 주머니에 쓰다 남은 페소를 주었다. 자기를 따라 오란다. 우리가 타고 온 것이 세부항공이다. 세부항공 데스크로 우리를 데리고 가더니 책임자 되는 사람에게 뭐라고 얘기하더니 여권과 짐을 가지고 길게 늘어선 대기줄도 무시한 채 우리를 이끌고 데스크로 가서 제일 먼저 보딩패스를 만들어 준다. 정말 희한한 나라다. 돈 25,000원의 위력이다. 북적이는 출국장에서 3~4시간의 대기를 면하는 순간이다. 금삿갓이 과거에 방콕 공항에서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1인당 50불을 주었는데, 비즈니스 클래스로 UP-grade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