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운우도첩을 풀어헤쳐 보는 애로서(曖露書)

조선 사대부들의 야동

by 금삿갓

남녀 간의 진한 사랑을 옛사람들은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고 표현했다. 사랑을 ‘구름과 비’에 비유하다니 현대인들에게는 약간 이해가 덜 가는 대목이다. 그 말은 오래된 어원(語源)이 있다. 전국(戰國) 시대 초(楚) 나라의 회왕(懷王)이 무산(巫山)에 유람 갔다가 고당관(高唐觀)에서 낮잠을 잤다. 꿈에 무산의 신녀(神女)를 만나 눈이 맞아서 질펀한 사랑을 나누고, 헤어질 때 아쉬워 거처를 물었다. 그녀가 대답하기를 아침에는 무산의 구름으로, 저녁이면 비가 되어 내린다고 대답한 후 사라졌다. 눈을 뜨니 꿈이었지만 너무나 생생하여 그곳에 그녀를 기념하여 조운관(朝雲觀)을 세웠단다. 꿈 이야기를 신하 송옥(宋玉)에게 해주었더니, 그가 <고당부(高堂賦)>를 지었다. 회왕이 죽고 아들 양왕(讓王)이 운몽대(雲夢臺)에서 유람할 때, 송옥이 또 꿈에 신녀를 만난 것을 이야기했다. 신녀의 모습이 궁금하던 양왕이 그에게 자세히 묘사해 보라 이르니 그가 지은 것이 <신녀부(神女賦)>이다. 이 글에 의하여 남녀 간의 사랑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신녀의 형용(形容)처럼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간혹 운우(雲雨)에서 운(雲)은 여성의 성액(性液)을, 우(雨)는 남성의 정액(精液)을 상징한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서론이 길었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운우도첩(雲雨圖牒)>에 나오는 춘화(春畫) 중 지난번에 게재한 걸(https://brunch.co.kr/@0306a641d711434/616) 제외하고, 나머지 좀 농도(濃度)가 짙은 것을 풀어헤쳐 보자.

위는 한 중년의 사내가 어두운 밤을 돋우어 청루(靑樓)에 들이닥친 상황이다. 아마 부인 몰래 마을 나들이나 시회(詩會)에 참석한다고 둘러대고, 갓을 쓰고 초롱불을 밝혀 불이 나게 온 것이다. 갓을 자존심으로 아는 선비들은 당연히 갓을 걸어 놓는 것이건만 방바닥에 팽개치고, 모든 옷가지도 마구 흐트러지게 벗어던진 것이다. 한 순간이 급한 몸놀림이다. 반면에 기녀는 느긋하다. 가체(加髢)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긴 장죽(長竹)을 느긋하게 물고 누워있다. 상반신을 드러내놓고, 하반신도 속곳이 없이 홑치마 자락이 벌어져 희멀건 샅이 드러나고 시커먼 거웃이 슬쩍 보인다. 화로와 술 주전자 등의 소도구도 잘 갖추어져 있다.

이는 숲이 우거진 비탈 옆의 평지에서 돗자리를 깔고 본격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한량(閑良)이나 젊은 양반이다. 상투를 틀어 올린 모습에서 성관(成冠)을 한 나이다. 여인은 가체머리나 복장으로 보야 기녀일 것이다. 둥근 손부채를 가랑이 사이에 둔 것으로 보아, 봄은 아니고 단오를 지난여름이다. 무성한 풀잎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두 사람 앞쪽은 대숲인 것 같다. 사그락거리는 대숲의 장단에 맞추어 땀 깨나 흘릴 포즈이다. 약간 시큰둥 한 여인의 표정으로 보아 일을 빨리 끝내고 싶은가 보다. 왼손을 뒤로 뻗어 남성의 행동을 도아주고 있다. 아니면 본인도 회가 동해서 재촉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파계승(破戒僧)으로 찍혀도 금단(禁斷)의 열매는 거부하기 힘들게 감미롭고 유혹적이다. 바랑을 어디다 내던졌는지 알 수 없고, 가사(袈裟)와 삿갓, 죽장만 저쪽으로 던져 놓았다. 급한 불은 아랫도리 옷을 벗을 시간도 절박하다. 수도하면서 오랫동안 금욕했을 여의봉은 누구의 손길에 의해 인도해 주는 것도 필요 없어 보인다. 스스로 길을 잘 찾아드는 모양이다. 내려진 주렴이 살짝 졌혀지면서 동행하던 동자승의 호기심에 찬 구경 모습이 더 이채롭다. 살짝 눈길을 내려 깐 모습이 이 친구도 또한 무아지경으로 찾아드는 듯하다. 죽장과 삿갓으로 보아 사찰 내의 요사채 같은 데서 불공드리러 온 여염집 여성과의 교접은 아닌 듯하다.

무르익은 봄이다. 모든 생물에 물이 오르고, 남녀 간에도 춘정(春情)이 넘친다. 연초록의 수양버들이 주렴(珠簾)처럼 늘어진 그늘에서 청춘 남녀는 돗자리를 깔고 홀랑 벗은 채 운우의 정을 나누기에 여념(餘念)이 없다. 계곡으로부터 산안개가 그윽하게 잠겨 있어서 그들의 사랑놀음이 더 아늑하고 포근하다. 밀착된 몸은 등을 자리에 붙이기도 아쉬운 법이다. 귓불을 애무하는 사내와 사지(四肢)로 사내의 등과 허리를 옥죄는 여인의 얼굴은 무아지경(無我地境)이다. 도리어 하늘의 둥근 해가 얼굴 두기가 무색하여 안갯속으로 얼굴을 살짝 가려주는 모양이다. 북으로 돌아가던 기러기 떼들도 수양버들 가지에서 잠시 쉬면서 사랑의 열기를 받아서 먼 길을 떠날 요량인가 보다.

여기는 너럭바위에서 야합(野合)이다. 너럭바위와 커다란 바위 사이로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배경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야외임에도 의외로 옷을 모두 벗은 여성상위의 자세이다. 소풍을 나왔으면 음식을 준비해 온 바구니 같은 것이라도 있을 법 한데, 휑하다. 발치 아래나 멀리에 무언가 소도구가 있었으면 하는데 없어서 일면 조금 초라하다. 반면에 바위틈의 풀과 숲이 풍성하여 마치 여성의 신비한 계곡을 형상화한 것 같다.

방안의 풍경이 자못 격조가 있는 집의 사랑방으로 보인다. 침상 기능을 하는 보료는 비단 휘장이 아늑하게 쳐져 있다. 방안의 서안(書案)에는 붓과 벼루 등 문방사우가 잘 갖추어져 있다. 밖에는 오래된 매화 분재에서 홍매가 수줍은 듯이 엷은 미소와 향기를 토해내고 있더. 한 무더기의 수선화분(盆)도 있다. 양반가의 호사스러운 취미를 옅 볼 수 있다. 양반나리는 취미 중 가장 즐거운 취미에 지금 한창 열을 올린다. 기생인지 소실인지는 몰라도 바짝 끌어안고 열심히 젖꼭지를 빨기도 하며, 아랫도리는 아랫도리대로 제 할 일에 열심이다. 반면에 여인은 느긋하다. 남성의 양 어깨에 걸친 다리 모양보다 발가락 모양에 주목해 보자. 표정은 느긋하지만, 뭔가 2% 부족함이 묻어나는 제스처이다. 발가락이 교대로 끊임없이 꼼지락 거리는 걸로 보아서 약간의 욕구불만일 수 있다. 영감이 너무 깔짝거리기만 하고 제대로 노릇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 20년 전에 박진표 감독이 제작한 다큐영화 <죽어도 좋아>가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노인들의 성(性)에 대한 터치를 사실감 있게 하여 여기저기 상도 받은 영화다. 이 그림은 조선판 <죽어도 좋아>이다. 허름한 초가집의 방안이다. 춘화가 양반집, 대갓집 어른들의 야동으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둥 옆으로 농기구가 기대어 서 있고, 대나무 숲 앞으로 장독대도 있다. 방안에는 단출한 세간살이도 보인다. 늙은 영감과 할멈이 춘정이 동하여 낮거리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런 장면에서 농기구나 장독대도 좋지만 마당에 누렁이나 검둥이, 아니면 닭 한 두 마리를 풀어놓았으면 더 운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금삿갓의 생각이다.

조선 시대의 춘화 치고 제법 파격적인 구도이다. 혼교(混交) 즉 요즘 말로 쓰리썸(Three Sum)이다. 일본 춘화에는 많이 등장하는 구도이지만 조선 춘화에서는 드문 형태이다. 주로 훔쳐보는 구도가 많이 활용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쓰리썸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단원의 상상력이 엄청 탁월하다. 배경으로 보아 양반집 별서(別墅)처럼 보인다. 한적한 곳에 위치하였고, 기둥 옆으로 키가 큰 파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처마 밑으로도 등나무 덩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주변은 자욱한 안개로 덮여 이들의 운우지정을 더욱 무르익게 한다. 사내는 자신의 권위의 상징인 유건(儒巾)을 벗지 않고 쓰고 있다. 옷은 모두 벗어도 양반의 체면인 모자만은 쓴 것이다. 여성들은 별장으로 데리고 온 기녀들일 것이다. 조선의 선비양반들은 성리학만 연구하고 이런 춘화나 음화(淫畫), 음란소설을 읽지 않았을까? 전혀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다. 그들도 겉으로는 양반 입네 하지만 은밀하게 그런 야동을 즐겼다. 심지어 웃돈을 주고 중국을 왕래하는 역관들에게 책을 구해 오도록 해서 돌려 보기도 했다. 당시 <금병매(金甁梅)>는 매우 인기였다.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판(圖版) 즉 요즘의 삽화(揷畫) 같은 그림도 곁들여 있어서 최고의 인기였다. 영조 을미년(영조11, 1775)에 영성부위(永城副尉) 신수(申綏)가 역관 이심(李諶)에게 북경에 가는 길에 은 1냥을 주어 <금병매> 전질을 사 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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