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승경이 남쪽으로 귀양살이로 영외에 있을 적에 기러기를 보고 읊기를, “행인은 남으로 만리타향에 가거늘 돌아가는 기러기는 봄에 뜻을 얻어 북으로 날아가니, 사람이 기러기만 못하단 말인가? 알 수 없어라, 어느 해 어느 달에 너와 푸른 봄에 짝을 해서 북으로 돌아갈꼬?”하였다.
사람의 정이 이미 남쪽 가운데의 고통을 싫어한다 했는데, 기러기는 어찌 북쪽에서 따라왔는가라는 것은 이 사람의 고향이 북쪽 땅에 있고, 남쪽의 나그네가 되어 괴롭다는 까닭으로, 이와 같은 즉 각각 그 살던 방향을 가리킨 것이다.
* 韋承慶(위승경 ; 639-705) : 자는 연휴(延休), 정주양무(鄭州陽武, 지금의 허난성 위안양) 사람. 작가는 당(唐) 중종 신룡 원년(705)에 영남으로 유배되어 고요현위(高要縣尉)로 강등되었고, 멀리 도성 장안의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강등되어 남행을 칭하게 되었다. 고요현위(高要縣은 지금의 광둥성 자오칭시(肇庆市)에 속한다. 그의 동생 위사립(韋嗣立)도 장역지의 사건으로 인해 라오저우(饒州) 즉 현재 장시성 보양현(江西省 波阳县)의 자사(剌史)로 좌천되었다. 위승경과 그의 아버지 위사겸과 이복동생 위사립은 한 집안의 부자 세 명으로 모두 재상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