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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綠水曲(녹수곡)

금삿갓의 漢詩工夫(250928)

by 금삿갓

綠水曲(녹수곡)

- 李白(이백)


綠水明秋月

녹수명추월

●●○○●

푸른 물에 가을 달빛이 밝은데


南湖採白蘋

남호채백빈

○○●●◎

남쪽 호수에서 흰 마름을 따네.


荷花嬌欲語

하화교욕어

○○○●●

연꽃이 아름답게 말하려 하니


愁殺蕩舟人

수쇄탕주인

○●●○◎

배 젓는 사람 시름을 줄여주네.

水月(수월)이 至秋(지추)하야. 俱極淸澈(구극청철)하니 將言泛舟(장언범주)하야. 先序時景(선서시경)이라. 此設爲白蘋(차설위백빈)하야. 以寄秋意(이기추의)하야. 以起下蕩舟之人(이기하탕주인)이라.

물에 비친 달이 가을이 되어, 지극히 맑음을 갖추었으니 배를 띄운다는 말을 하려고, 먼저 그때의 경치를 머리말로 함이라. 이에 흰 마름으로 설정하여 가을의 뜻을 부침으로서 아래에 배를 움직이는 사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採蘋而見荷花之嬌豔(채빈이견하화지교염)이 如欲語者(여욕어자)하니, 如此荷花(여차하화)에 何(하)오. 花光(화광)이 奪目(탈목)하고, 艶色(염색)이 迷人(미인)하야. 因轉而爲愁(인전이위수)하고, 且愁之甚(차수지심)에 盖因蕩舟人(개인탕주인)이 心有所慕(심유소모)하야. 情不自持(정부자지)하니 此盖有所托也(차개유소탁야)라.

마름을 따며 연꽃의 아리땁고 고운 모습을 보니, 마치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 이와 같은 연꽃을 어찌할까? 꽃 빛이 시선을 빼앗고, 아리따운 모습이 사람을 미혹하여, 이런 연유가 바뀌어 시름이 되고, 또 시름이 심해져, 대개 배를 움직이는 사람이 마음에 그리워하는 바 있어 정을 스스로 지키지 못함이니 이것은 대개 의탁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秋水(차수)는 潦盡而益綠(요진이익록)하고, 秋月(추월)은 塵洗而益明(진세이익명)하니, 淸凉景色(청량경색)이 令人感傷(령인감상)이온 况採蘋之時(황채빈시)에 欲語荷花(욕어하화)가 含嬌而立者乎(함교이입자호)아.

○ 가을 물은 장마가 끝나 푸른빛을 더하고, 가을 달은 먼지가 씻겨 밝음을 더하니, 맑고 시원한 경치가 사람으로 하여금 감상에 젖게 하는구나. 하물며 마름을 딸 때에 말을 하려는 연꽃이 교태를 품고 서 있음에랴.

* 白蘋(백빈) : 흰 마름.

* 蕩舟(탕주) : 배를 젓는 것. 蕩船(탕선).

성하9.JPG

* 이백(李白, 701~762) : 중국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서 자는 태백(太白)이며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다. 이백은 중국의 수많은 시인 가운데 두보와 더불어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되며, 오늘날 이두(李杜)라 병칭 하며 두보를 시성(詩聖),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부른다. 출생지와 혈통에 관해서는 정설이 없고 관련 기록을 참고하여 유추해 보면 수나라 말에 그의 먼 조상이 서역(西域)으로 유배되어 갔다가 당나라 신룡(神龍) 원년(705)에 그의 부친 이객(李客)이 몰래 가족들을 데리고 촉(蜀)이라는 지방의 사천성(四川省) 면주(綿州) 창명현(彰明縣) 청련향(靑蓮鄕)에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백은 서역에서 태어나 5세 때 서역에서 무역상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들어와 25세까지 20년 동안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청련거사라는 그의 자작호도 자신의 고향이라 여긴 청련향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호방한 성품의 이백은 학문에도 자질이 있어 부친으로부터 가학(家學) 교육받고, 일찍이 어려서부터 학문을 연마하여 다방면의 지식과 사상을 습득하였다. 이백은 지방 관리에게 자신을 천거하는 편지글에서 5세 때 60 갑자를 외웠고, 10세 때 유가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사상을 섭렵하여 황제 헌원 이후의 일을 알고 있었다. 15세 때 기서(奇書)를 읽고 부(賦)를 지어 사마상여(司馬相如, 기원전 179~기원전 117)를 능가하였으며, 검술을 좋아하고 두루 지방 관리들을 배알 하였다고 술회하였다. 송나라 축목(祝穆)이 편찬한 『방여승람(方輿勝覽)』의 기록에 의하면 이백이 미주(眉洲)의 상이산(象耳山)에서 독서할 때 공부에 싫증을 내고 하산하다가 한 노인이 시냇물 옆 숫돌에 절구를 놓아두었는데, 이백이 노인에게 왜 그것을 갈고 있느냐고 물으니 노인이 바늘을 만들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에 이백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이후 학문에 계속 정진하기로 마음먹고 산으로 다시 돌아가 독서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마저성침(磨杵針)의 고사가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백은 10대 후반에 민산(岷山)의 남쪽에서 동엄자(東嚴子)라는 은자를 스승으로 도술을 배우며 세속에서 누릴 수 없는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 동강(潼江), 지금의 재주(梓州) 부근의 산에서 은거하고 있는 은사 조유(趙蕤)를 방문하기도 하였는데, 그의 정치사상이 이백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백이 흠모하였던 역사상 인물들은 관중(管仲), 안영(晏嬰), 악의(樂毅), 장량(張良), 제갈량(諸葛亮), 소진(蘇秦), 노중련(魯仲連) 등이 있다. 특히 계책에 능하고 공을 세우고도 상을 받지 않고 절개를 지킨 노중련에 대한 이백의 존경과 추종은 지대하여 여러 편의 시에서 찬양하고 있다. 노중련에 대한 이백의 각별한 존경과 숭상하는 마음은 「고풍(古風)」 제10수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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