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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Jun 16. 2023

19> 書直舍壁(서직사벽) / 숙직하며 벽에 쓰다.

漢詩 工夫(한시 공부)

書直舍壁(서직사벽) / 숙직하며 벽에 쓰다.

- 李荇(이행) -


衰年奔走病如期

쇠년분주병여기

○○○●●○◎

늘그막에 분주하니 병이 날 기약이라


春興無多不到詩

춘흥무다부도시

○●○○●●◎

봄날의 흥취 별로 없어 시도 지을 수 없네.


睡起忽驚花事晩

수기홀경화사만

●●●○○●●

잠에서 깨어 홀연히 놀라니, 꽃피기 저물어가고


一番微雨濕薔薇

일번미우습장미

●○○●●○◎

한 차례 가랑비에 장미꽃이 다 젖었네.

이 시는 칠언절구(七言絶句)이고 기구(起句)의 2번 년(年) 자가 평성(平聲)이라서 평기식(平起式)이다. 이사부동(二四不同), 이륙대(二六對), 오칠부동(五七不同)이 잘 지켜졌고, 압운(押韻)은 ◎표시된 기구(起句)의 기(期)와 승구(承句)의 시(詩) 자인데 이 둘은 지운목(支韻目)이고,  결구(結句)의 미(薇) 자는 미운목(微韻目)이지만 서로 통운하기도 한다. 기구(起句)의 3번 자인 분(奔), 승구(承句)의 1번 자 춘(春), 전구(轉句)의 3번 자 홀(忽), 결구(結句)의 1번 자 일(一), 3번 자 미(微) 자의 평측(平仄)을 혼용함으로써 변화를 주었다. 시어(詩語)를 살펴보면, 특별히 어려운 한자가 없다. 쇠년(衰年)은 늙어서 점점 쇠약해지는 나이를 나타낸다. 화사(花事)는 꽃이 피는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다.

어떤 판본에는 기구(起句)의 마지막 자가 일어날 기(起)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르지 않고 기(期) 자가 맞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起)는 측성(仄聲)이고 압운(押韻)도 맞지 않는다. 또 전구(轉句)에 기(起) 자가 또 나오므로 같은 자가 이중이 되면 시법(詩法)에 맞지 않는다. 또 결구(結句) 5번 자가 락(落) 자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습(濕) 자나 락(落) 자 모두 평측(平仄)이 같고, 보슬비 온 후의 모습으로 어느 글자를 써도 무방하리라고 보인다. 늙은 필자의 쇠약한 모습을 연상한다면 떨어질 락(落) 자도 좋아 보인다.

이 시는 『용재선생집(容齋先生集)』 권지일(卷之一)에 <사월이십육일 서우동궁이어소직사벽(四月二十六日 書于東宮移御所直舍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523년 작자인 이행(李荇)이 의정부 우찬성으로 있을 때, 4월 26일에 동궁으로 임금이 거처를 옮겨 있을 때 그곳에서 숙직을 하면서 시를 써서 벽에 붙인 것이다. 노년에 쇠약함에도 이런저런 일들로 바쁜데, 병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을 찾아오고 있다. 그래서 봄이 와도 흥이 많이 나지 않아 시를 짓지 못하고 있다. 이 시는 봄인데도 불구하고 시흥이 도도하지 않고, 사화(士禍)를 겪은 탓인지 우울하고 비관적이며 인생의 슬픔이 드러나 있다. 그때 마침 이어소에서 숙직하다 잠을 자고 일어나니 놀랍게도 어느새 봄빛이 저물어 한 차례 보슬비에 장미꽃이 젖어 버렸는지 떨어져 버렸는지 아스므레 하다. 이행의 시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용재 이행은 화평하고 순숙한 시를 지어서 넉넉하게 신경(神境)에 들어갔다. 허균(許筠)은 용재를 조선조 제일 대가라고 했다(李容齋荇爲詩, 和平純熟, 優入神境, 許筠稱爲國士第一).”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정조(正祖)는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서, “『용재집(容齋集)』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고, 그다음으로는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문장이다. 그러나 체격(體格)이나 운치(韻致)는 용재가 택당 보다 낫다(容齋集 子所最好 繼此而有澤堂文章 然體格韻致 容勝於澤).”라 하였다.

★ 이행(李荇, 1478~1534) :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창택어수(滄澤漁叟)·청학도인(靑鶴道人). 박은(朴誾)·남곤(南袞) 등과 문교(文交)를 깊이 했다. 연산군 1년(1495)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였으나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응교(應敎)로서 폐비 윤(尹)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유배되었다.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해배되어 교리(校理)가 되었고, 1507년 주청사(奏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중종반정 후 복권되어 판서의 지위까지 올랐다. 시호는 문헌(文獻). 시문집으로≪용재집 容齋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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