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만 나오면 금삿갓은 저절로 신이 난다. 얼마 전에 땅콩에 얽힌 이야기를 했으니 당연히 맥주 이야기를 지나칠 수 없다. 글을 쓰다가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급히 당기지만 그래도 마무리를 해야겠다. ‘맥주’라는 단어는 영어 ‘비어(Beer)’, 독일어 ‘비르(Bier)’, 프랑스어 ‘비에르(Biere)’ 등으로 불리는데, 어원은 ‘마시다’라는 뜻의 라틴어 ‘Bibere’에서 생겨났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이 외에도 게르만어로 맥주는 ‘보리로 만든 음료’를 뜻하는 ‘Bere’라 불린다. 맥주의 기원을 찾자면 신석기 인들이 밀, 보리, 기장을 재배하기 시작한 1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메소포타미아의 고고학 발굴장에서 기원전 7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판들이 나왔는데, 거기에 곡주(穀酒)를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그 시대에는 싹을 트게 한 곡식으로 만든 빵을 '맥주빵(Bappir)'이라고 했는데, 다시 이것을 물에 적셔 발효시키면 메소포타미아 술이 되었다. 보리를 재배했던 이집트인들은 순수한 효모를 개발했고, 양조기술을 세련시켰을 뿐만 아니라 맥주병이나 단지를 봉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2차 발효로 인해 술이 시어지는 것을 방지했다.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이집트와 미국 고고학자들이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450㎞ 떨어진 나일강 서안 아비도스에서 기원전 3150년 나르메르 파라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맥주 양조장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한꺼번에 22,000L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란다. 그 당시에도 맥주가 이집트의 대표적인 술이었다. 질병에 좋다고 생각해서 전갈에 물린 상처에도 맥주를 발랐고, 좀 허황된 이야기지만 '맥주 거품에 양파 반쪽을 넣어 두면 죽음을 막아 주는 맛있는 약'이 된다고도 했다. 그러나 압제적이고 탐욕스러운 파라오들은 보리 수확을 통제하고, 양조장을 전매화하고, 맥주 판매에 세금을 부과했다. 세금을 포탈하는 술집 주인들을 가혹하게 처벌했다. 세금을 내지 않다가 붙잡힌 술집 주인 중 남자는 물에 빠뜨려 죽였고, 여자는 생매장시켰다. 어마 무시한 처벌이다. 이집트인들과 교역을 하던 그리스인들이 보리씨와 맥주 만드는 법을 들여왔으나, 그들은 정작 와인을 즐겼다. 어쨌든 그들 덕으로 유럽인들이 맥주에 맛을 들이게 되었다. 시저(Caesar)의 군대가 맥주 마시는 풍습을 갈리아와 영국으로 전파했기 때문이다.
<독일 맥주 축제 종업원의 힘자랑>
중세에는 가정집의 아낙네들이 집에서 맥주를 담갔고, 그래서 양조자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에일 와이프(Alewife)'는 우리의 주모(酒母)처럼 중세 영국에서 상업적으로 에일(Ale) 맥주를 만들어 팔던 여성을 의미한다. 이들의 술을 빚는 기술이 종종 마녀로 오해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돈을 더 벌려고 맥주에 물을 타서 팔다가 성난 군중들에 의해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하기도 했단다. 한때 수도원이 이 일을 떠맡았었는데, 그 뒤 상업적인 양조업자들이 등장하여 그 일을 담당했다. 베네딕토수도회에서 725년에 설립하고, 1040년에 양조면허를 받은 독일 프라이징(Freising)에 세워진 바이엔슈테판(Weihenstephan) 수도원 양조장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양조장은 아직도 건재하고 있으며 맥주 맛도 좋다고 하는데, 금삿갓은 바이에른에 가 보지 못해서 아쉽게도 맛을 보지는 못했다. 이곳에서 60Km 정도 떨어진 벨텐브르크(Weltenburg) 수도원에서도 1050년에 맥주를 양조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니, 진정한 맥주의 나라인가 보다. 1292년에 라거 맥주의 황태자인 필스너(Pilsener)가 광천(鑛泉)으로 이름난 체코 보헤미아 지방의 필젠(Plzeň)에서 탄생했다. 초기 필스너는 석회석 동굴에서 반년 동안 우아하게 익힌 상쾌한 양조주였고, 다른 맥주보다는 색깔이 옅고, 알코올 함유량이 적었지만, 독특한 맛이 있었다. 1839년에 유명한 양조 기술자인 요제프 그롤을 바이에른에서 영입하여 최고로 발전했다. 필스너는 주요한 맥주의 종류들인 저장맥주 라거(Lager), 좀 더 독한 에일(Ale), 아일랜드 흑맥주 스타우트(Stout), 영국 흑맥주인 포터(Porter), 색이 짙고 알코올 성분이 높은 독일산 흑맥주 보크(Bock) 등과 같이 계속 인기이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는 그의 작품 '폴리베르제르의 바'를 비롯한 다수의 그림에서 '보크(Bock)' 맥주를 소재로 활용했다. 16~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과 아드리안 브라우어르(Adriaen Brouwer)의 그림에도 맥주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필스너가 다시 독일로 돌아가서 새로운 스타일로 인기를 끌자, 원래의 체코 필젠(Pilsen) 지역에서 생산된 필스너 맥주에 오리지널(Original)이란 말인 우르켈(Uroqell)을 붙이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빌헬름 4세가 법으로 맥아·홉·효모·물 이렇게 4가지 성분만을 사용해서 맥주를 만들도록 규정했는데, 이를 1993년까지 지킨 '맥주 순수령'이라고 부른다. 세계적인 덴마크 맥주 칼스버그 양조장의 창립자 야콥 크리스티안 야콥센(J. C. Jacobsen)과 그의 아들 칼 야콥센(Carl Jacobsen) 사이에는 경영 방식과 맥주 철학을 둘러싼 깊은 갈등이 있었다. 이들의 갈등은 결국 두 개의 양조장으로 분리되는 결과를 낳았고, 두 사람의 경쟁은 칼스버그 맥주의 품질을 높이고 기술 발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자국의 맥주 맛이 없다고 잔소리를 한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7세의 충고를 받아들인 면도 없지 않다. 고대 수메르인들은 맥주로 세금을 납부했고,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매년 맥주를 신에게 바쳤으며 화폐로도 활용했다. 예를 들면 피라미드 등 건설 노예에게 맥주를 임금으로 지급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것인지, 서양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맥주 등 술을 급료로 지급하는 풍습이 있었다. 16~18세기 사이에 영국·네덜란드 선원, 18세기의 러시아 해군, 그리고 스웨덴이나 폴란드 군인들이 임금으로 맥주나 다른 종류의 술을 받았다.
<가장 독한 맥주>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사제이자 신학자였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필자 금삿갓처럼 약간 새가슴이었나 보다. 금삿갓이 술 한 잔 마시지 않으면 노래방 마이크를 들지 못하듯이 그도 독일 보름스 국제회의장의 심판대에서 종교개혁의 논리를 펼 연설에 앞서 가슴이 엄청 떨렸다. 그래서 연단에 오르기 전 후원자 칼렌베르크(Calenberg) 공작이 보낸 아인베크(Einbeck) 맥주 1리터를 몰래 마셨단다. 루터는 술기운을 빌렸지만 담대하게 일장 연설을 펼쳐 종교사와 세계사를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그 후 수녀원을 탈출시킨 수녀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와 결혼하여 그녀가 집에서 담그는 맥주를 하루 2L씩 마셨단다. 금삿갓보다 주량이 세다.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독일 나치스의 출발은 뮌헨의 시끄러운 맥줏집인 호프 브로이 하우스였다. 이곳에서 히틀러는 정치집회를 열고 폭동을 주동했다. 이후 히틀러는 또 다른 비어홀 뷔르거브로이켈러 등 맥주 집을 전전하면서 술 취한 군중의 정서에 호소하여 정치 폭동을 이끌었다. 맥주를 권하고 마시는 곳에는 은밀하고 경천동지 할 거사가 함께했다. 그래서 함무라비 법전에는 자기 술집에 모여 음모를 꾸민 반역자들을 체포해 궁으로 데려가지 않거나 술값을 속여서 받는 술집 주인은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독일인들이 이 조항을 잘 지켰으면 세계사가 변했을 텐데. 땀 흘리고 운동하거나 일한 후에 시원한 맥주 한잔은 천국의 기분이다. 맥주와 축구도 불가분의 관계이다. 국제 축구 연맹(FIFA)은 오랫동안 세계 최대 맥주회사 AB 인베브(InBev) 그룹과 협력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런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협력에 차질이 생겼다. 축구 경기장에서 술 판매와 소비를 금지하는 브라질의 법률 때문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브라질에서 열린 모든 국제 대회나 리그 경기에서 맥주 판매가 금지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FIFA는 브라질에 압력을 가했고, 결국 2012년에 브라질은 손을 들었다. 특별법을 제정해 2013년 컨페더레이션컵과 2014년 월드컵 대회에서는 맥주를, 더 정확히 말하면 버드와이저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맥주가 얼마나 맛있었으면 전투까지 휴전했을까?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약 5개월이 지난 1914년 12월, 성탄절 무렵. 총탄이 휘날리는 유럽 서부전선에서 한 잔의 맥주로 인간애를 나누었단다. "발사 중지! 맥주 마시자."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한 한 전선에서 이 목소리와 더불어 잠시 휴전으로 양측 병사들은 총을 내려놓고 맥주를 함께 나눠 마셨다고 한다.
<세계 맥주>
아랍의 회교도를 제외하고 전 세계인이 즐겨 마시는 맥주를 생산하는 회사는 셀 수 없이 만지만, 단 6개 기업이 전체의 절반이상을 생산한다. 그중 최대 기업이 벨기에에 본부를 둔 다국적 기업 AB InBev이다. 벨기에의 인터브루(Interbrew)와 브라질의 암베브(Ambev)가 합병해서 이들이 다시 미국의 최대 회사 안하이저 부시(Anheuser Busch)와 남아프리카의 사브밀러(SABMiller)를 인수하여서 공룡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오비맥주도 그들 소유이다. 이들은 버드와이저·코로나·스텔라·호가든 등 세계적인 브랜드 등 630개가 넘는 브랜드로 생산한다. 그럼 단일 브랜드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버드와이저나 코로나를 생각하겠지만, 우리에게 약간 생소한 브랜드인 중국의 설화비주(雪花啤酒, Snow)이다. 중국 맥주 시장의 20% 점유율이 세계 1위인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독한 맥주는 스코틀랜드 88 브루어리에서 만든 '베히티르 파이어(Beithir Fire)' 맥주로 도수가 75%로 세계에서 가장 알코올 함량이 높은 맥주다. 일반적인 위스키·보드카나 중국 바이주 등이 40도 언저리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2배에 가까운 알코올 도수이고, 시중 판매되는 맥주(약 4.5%)의 약 17배에 달한다. 이 맥주는 약 2개월 동안 양조 과정을 거쳐 높은 알코올 도수의 스코틀랜드 스타일 보리 에일로 탄생했다. 그리고 가장 순수한 스코틀랜드산 증류주와 블렌딩 하여 75%의 액상 맥주를 만든다. 발효 후 3번의 여과 과정을 거쳐 불순물을 제거한다고 한다. 맥주의 알코올 함량이 매우 높으므로 존중심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다루어야 하며, 한 번에 35ml를 초과하지 말라고 경고 라벨에 적혀있다. 세금 포함하여 1병에 약 46파운드이다. 그다음이 스코틀랜드 브루독 양조장에서 2013년 출시한 맥주로, 알코올 도수는 67.5도인 ‘뱀의 독(Snake Venom)’, 알코올 55도인 엔드 오브 히스토리(End of History)가 있다. 이런 것을 맥주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한 것 같다. 역사상 마시는 용도의 최고 독한 술은 에스토니안 리커 모노폴리로 98%였고, 지금은 생산 중단되었다. 시판되고 있는 것은 폴란드의 스피리터스 렉티피코와니(Spirytus Rektyfikowany)로 알코올 도수가 96%이다. 바카디(Bacardi) 151 럼주가 75.5%로 굉장히 높았는데, 이것도 단종되었다. 이 정도면 술이 아니라 캠핑 가서 취사하는 연료로 써야 제격이다. 미국 아이오와주 데코라에 토플링 골리앗 브루잉 컴퍼니에서 만드는 KBBS(Kentucky Brunch Brand Stout) 맥주는 버번위스키 캐스크에 커피와 함께 1년 숙성된 맥주란다. 2013년과 2014년에만 생산되었으며, 병당 가격이 1,300~1,500달러에 달하니 위스키 값이다. 맥주의 소비량은 인구가 많은 중국이 1위이고 다음이 미국·브라질 순이고 한국은 15위다. 1인당 소비량은 체코가 188.5L로 최고, 2위 오스트리아(101.2L), 한국은 44.3L로 47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
하여간 독일 국민들에게 있어 맥주는 거의 국민주에 가깝겠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은 와인, 영국은 위스키, 러시아는 보드카, 일본의 사케, 불가리아는 라키아, 멕시코의 테킬라, 그리스는 우조, 튀르키예의 라크, 쿠바·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섬나라의 럼, 중국의 바이주, 대한민국의 막걸리와 소주 같이 국민들의 사랑을 뛰어넘어 함께 호흡하는 민족 문화의 소중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맥주 관련 축제 중 유명한 건, 독일 뮌헨에서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부터 10월 첫째 일요일까지 걸쳐 행해지는 옥토버페스트이다. 1810년에 바이에른 공국의 초대 대공인 빌헬름 1세의 결혼에 맞추어 5일간 음악제를 곁들인 축제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883년 뮌헨의 6대 메이저 맥주회사가 축제를 후원하면서 4월 축제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국민 축제로 발전하였다.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 정오부터 10월 첫째 일요일까지 16일간 열린다. 독일 국민은 물론 전 세계에서 7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다. 참고로 뮌헨의 인구는 150만 명 정도이다. 이때 소비되는 맥주도 맥주지만 안주 양도 장난 아니다. 2024년의 경우 전 세계에서 670만 명이 축제에 참가해 700만 L의 맥주와 70만 마리의 닭, 65 마리의 소가 소비되었고 1,000개가 넘는 독일의 맥주회사가 참가하였다. 참가자 수가 해마다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일본의 삿포로 눈 축제와 함께 세계적인 축제로 불린다.
<옥토버페스트 모습>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와인에는 지혜가 있고, 맥주에는 자유가 있고, 물에는 세균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미국 건국 당시 마실 물에 대한 위생처리가 부족할 때 나온 말이겠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독이다. <채근담(菜根譚)>에 “花看半開(화간반개), 酒飮微醉(주음미취), 此中大有佳趣(차중대유가취)”라는 글귀가 있다. 꽃은 반쯤 핀 것을 즐기고, 술은 약간 취하게 마셔라. 이런 가운데 진정 크고 아름다운 멋이 있는 법이 있는 것이다. 만약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술에 흠뻑 취하면, 이내 곧 추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가득 차고 충만한 지위에 오른다면, 마땅히 그런 이치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할 것이다.오늘날의 정치 행태를 보면 만취(滿醉)한 도적떼들만 우글거리고 있는 것 같다.(금삿갓 芸史 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