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訪袁拾遺不遇(방원습유불우)

금삿갓의 漢詩工夫(251219)

by 금삿갓

訪袁拾遺不遇(방원습유불우) / 원습유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

- 孟浩然(맹호연)


洛陽訪才子

낙양방재자

●○●○●

낙양의 재주 있는 사람 찾았으나


江嶺作流人

강령작류인

○●●○○

강령지역에 유배된 사람이라네.


聞說梅花早

문설매화조

○●○○●

들리는 말로 매화는 일찍 핀다고


何如此地春

하여차지춘

○○●●○

어찌 이곳의 봄만 하리오?


* 袁拾遺(원습유) : 맹호연의 친구로 원씨 성을 가진 습유어사 벼슬에 있던 사람.

* 江嶺(강령) : 양자강과 오령(五嶺) 사이의 지역. 오령은 대유령(大庾嶺), 시정령(始定嶺), 임하령(臨賀嶺), 계양령(桂陽嶺), 게양령(揭陽嶺)을 말함. 대유령에는 매화가 많아 매령이라고도 불렸고 송지문(宋之問) 등 많은 시인이 시를 지었음.

江嶺(강령)은 江西之庾嶺(강서지유령)이니. 流人(류인)은 有罪而流放於嶺外也(유죄이류방어령외야)라. ○浩然(호연)이 訪友不遇而傷其被放而作也(방우불우이상기피방이작야)라. 拾遺(습유)는 洛陽人(낙양인)이니. 孟公之友也(맹공지우야)라. 特至洛陽(특지낙양)하야. 訪之(방지)하니. 不意(불의)에 袁(원)이 已被罪免官而流放于嶺外矣故(이피죄면관이류방우령외의고)로 作詩寄之(작시기지)라. 庾嶺(유령)이 地暖(지난)하야. 梅花早開(매화조개)하니. 公盖未至也故(공개미지야고)로. 曰聞說(왈문설)이라. 言嶺梅雖早(언령매수조)나 豈如故園春色之可樂哉(기여고원춘색지가락재)아. 惜才人之不幸也(석재인지불행야)라.

강령(江嶺)은 강서성(江西省)의 유령(庾嶺)이고, 유인(流人)은 죄가 있어서 영 밖으로 유배되어 내쳐진 자이다. 맹호연이 친구를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추방당한 것을 상심해서 지은 것이다. 습유(拾遺)는 낙양 사람이니 맹공(孟公)의 친구이다. 특별히 낙양에 이르러서 그를 찾았더니, 뜻밖에 원습유(袁拾遺)가 이미 죄(罪)를 지어 관직이 면직되고, 영 밖으로 유배되어 내쳐져 있었다. 그러므로 시를 지어서 그에게 보낸 것이다. 유령(庾嶺)은 지역이 따뜻해서 매화가 일찍 피어, 공(公)은 아마 아직 가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듣자니(聞說)라고 한 것이다. "비록 강령의 매화가 일찍 피기는 하나 어찌 고향의 봄빛이 가히 즐길 만한 것과 같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재인(才人)의 불행이 애석하다.

* 孟浩然(맹호연) : 689년 ~ 740년.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다. 당나라 양주(襄州) 양양(襄陽, 현 후베이성 샹양) 출신으로 본래의 이름은 호(浩)이고, 자가 호연(浩然)이어서 맹호연으로 불렸다. 호(號)는 녹문거사(鹿門居士)이다. 한때 녹문산(鹿門山)에 숨어 살면서 시 짓는 일을 매우 즐겼다. 40세 때 장안(지금의 시안)에 나가서 시로써 이름을 날리고, 왕유·장구령 등과 사귀었다. 그의 시는 왕유의 시풍과 비슷하며, 도연명의 영향을 받아 5언시에 뛰어났다. 격조 높은 시로 산수의 아름다움을 읊어 왕유와 함께 ‘산수 시인의 대표자’로 불린다. 맹양양(孟襄陽)으로도 불리며 저서에 ‘맹호연집’ 4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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