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수비리에서 묵다(7/17)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다리의 마을

by 금삿갓

조선의 길손이 오늘 묵을 수비리는 에스떼리바르 계곡(Valle de Esteríbar)의 주요 마을이고, 나바라 지역을 지나는 까미노 길에서 인구가 많은 마을 중 하나이다. 수비리는 바스크어로 ‘다리의 마을’이라는 의미로 이 마을이 아르가 강(Río Arga)을 끼고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다리가 많아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문명의 발상지처럼 아르가 강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을 것이다.

까미노 길에서 수비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라 라비아(La Rabia)라는 중세 시대의 다리가 있다. 중세시대 방식으로 돌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다리이다. 또 마을에는 산 에스테반(San Esteban; 성 스테파노)에게 봉헌된 교구 성당이 있다. 미술에 관심이 있는 순례자라면 호르헤 오떼이사 박물관(Fundación Museo Jorge Oteiza)을 방문할 수도 있다. 또한 수비리는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철학자 하비에르 수비리(Xabier Zubiri)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라 라비아 다리는 이곳 농부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단다. 공수병에 걸린 동물이 이 다리의 중앙 기둥을 세 바퀴 돌게 되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이 다리의 이름인 라 라비아(La Rabia)는 스페인어로 ‘공수병’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오늘은 이곳에서 알베르게에서 묵지 않고, 좀 더 고급진 곳을 택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민박인데 '펜션 USOA'에 숙소를 잡았다. 투 베드룸이 40유로다. 알베르게보다는 두 사람 합이 10유로 정도 비싸지만 개별 방에다가 욕실까지 별도로 있어서 훨씬 쾌적하다. 음식도 조리가 가능하고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좋았다. 도떼기시장 같은 공동시설의 피곤이 풀리는 것 같다. 조선 과객(過客)이 과용(過用)하면서 호사(好事)를 누린다. 주변에 슈퍼마켓이 가까이 있고, 아주 아담한 마을이다. 펜션 건물은 지은 지 그리 오래된 건물이 아니고, 중앙 정원 쪽으로 햇빛이 잘 들고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서 빨래를 널어놓으니 정말 순식간에 마른다. 조선 과객 금삿갓이 단벌 과객 신분이라서 거의 매일 빨래를 해야 하다 보니 손빨래에 이력이 난다. 다행히 이 펜션의 안주인이 인심이 후하여 세탁기를 무료로 사용하라고 허락했다. 단, 세제는 없단다. 그래서 세탁물을 물에 적셔서 빨래 비누를 많이 칠해서 세탁기에 넣고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슈퍼에 가서 쓰지도 못할 커다란 세제를 한 봉지 살 수 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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