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羌(강) : 오랑캐(西戎牧羊人), 말 끝내다(語端辭), 강하다(强), 돌이키다(反), 성(姓), 중국 서북부 지역 소수민족임.
☆ 何須(하수) : 何必(하필), 어찌 꼭 해야 할까, 구태여 할 필요 있나?
☆ 楊柳(양류) : 折楊柳(절양류)의 준말, 북조시대 이별가.
☆ 折柳(절류) : 別離曲(별리곡)인 ‘折楊柳(절양류)’의 樂曲(악곡) 이름인데, ‘버드나무 가지를 꺾다’는 뜻이다. 절류가 이별을 뜻하게 된 데는 멀리 周(주)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漢代(한대) 長安(장안)의 사회상을 기록한 <三輔黃圖(삼보황도)>에서는 “灞橋在長安東(패교재장안동), 誇水作橋(과수작교), 漢人送客至此橋(한인송객지차교), 折柳送別(절류송별)” 즉 ‘패교는 장안 동쪽 물을 건너기 위해 세운 다리이다. 漢人(한인)들이 길 떠나는 이와 헤어질 때, 이 다리에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며 이별했다.’고 전하고 있다. 버들은 이별할 때 꺾어주던 상징물이 되었다.
☆ 玉門關(옥문관) : 둔황 서쪽에 있는 관문. 옥문관 밖은 지금의 新疆省(신장성)이다.
☆ 就句對(취대구) : 詩(시)에서 對(대)는 통상적으로 안짝구(奇數句)와 바깥짝구(遇數句)에서 이룬다. 그러나 이 詩(시)에서는 對(대)를 하나의 句(구)에서 이룸. 첫 구의 黃(황)과 白(백), 둘째구의 一(일)과 萬(만). 이런 형식의 對(대)를 元(원)의 虞集(오집)은 취구대(就句對)라 함.
황하는 곤륜산에서 출원하여 동으로 변방의 외지로 흐르므로, 서쪽을 따라 바라보면 아득하고 멀어 끝이 없어서 마치 흰 구름 사이에 걸어놓은 것 같고, 또한 변방의 땅이 공활함을 보니 그 보는 바가 오직 황하 뿐이었다. 성이 외롭다고 한 것은 한 조각으로 그것이 작게 보인 것이다. 산이 이미 높이 깎여있어서 숲과 나무가 드물 수밖에 없다. 위의 구 黃(황) 자가 白(백) 자와 상응하고, 아래 구의 一(일) 자가 萬(만) 자와 호응하니 각각 스스로 대(對)가 된다.
피리는 羌族(강족)에 있으므로 강적(羌笛)이라고 하였으니, 고립된 지역에서 피리의 애절한 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이별의 감정이 있어서 이 버드나무를 원망하였으니, 어찌 피리곡조 때문이 아니겠는가? 버들을 꺾는 일이 있음은 사람이 장차 이별할 적에 반드시 버들을 꺾었기 때문에 버들을 원망한 것이다. 지금 만약 강적을 불어 이별(之)을 권하면 어찌 꼭 버들을 원망했겠는가? 옥문관 밖의 버들이 원망받을 소임이 없다. 어찌하여 옥문관 밖의 버드나무가 사람의 원망을 받지 않는가? 대개 버드나무는 모름지기 봄바람이 불어 흔들림을 얻어야 자라나는 것이 아니던가. 지금은 봄바람이 옥문관을 지나지 못한즉 옥문관 밖인데, 어떻게 원망을 버드나무에 맡길 수 있겠는가? 옥문관 밖의 추운 괴로움이 이와 같다. 넷째 구의 춘광부도 네 글자를 춘풍부도 4자로 고친 것이 있을 뿐이다.
王之渙(公元688-742) : 당나라 진양(晉陽) 지금의 산서(山西) 태원시(太原市) 사람이다. 나중에 강(絳) 지금의 산서(山西) 신강현(新絳縣)으로 옮겼다. 자는 계릉(季陵)이다. 개원(開元) 초에 기주(冀州) 형수현주부(衡水縣主簿)를 맡았다가 모함을 당하고 격분하여 관직을 버렸다. 그 뒤 15년 동안 황하(黃河) 남북을 유랑하다가 문안현위(文安縣尉)를 지냈고, 임지에서 죽었다. 호방불기(豪放不羈)하여 항상 칼을 두드리며 구슬프게 시를 읊었다. 유력(遊歷)을 좋아해 명사(名士)들과 많이 교유했다. 시를 잘 지었는데, 대개 당시 악공들이 지은 노래에 실려 많이 가창(歌唱)되었다. 시는 대부분 망실되어 『전당시(全唐詩)』에 「양주사(凉州詞)」와 「등관작루(登鸛雀樓)」 등 6수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