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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y 16. 2024

1. 금삿갓의 소장 춘화(春畵)

선비들의 본능 훔쳐보기

남녀 간에 서로 상대의 육체에서 가장 은밀하고 선정적인 곳은 어디일까? 기억이 흐리멍덩해서 긴가민가하지만, 프랑스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육체에서 가장 선정적인 곳은 옷이 하품하는 부분이다." 모든 것을 가리고 있는데 일부분에서 조금 벌어져서 살짝 드러난 속살이 바로 매혹적이고 선정적인 부분이 아닐까? 지금부터 연재하는 <금삿갓의 에로스, 애로서(曖露書)>는 바로 이런 부분을 살짝 엿보고, 훔쳐보고자 하는 것이다. 에로스(Eros)는 모든 사람들이 아는 대로이고, 애로서(曖露書)는 금삿갓이 만든 조어(造語)이다. 애(曖)는 살짝 가리는 행위이다. 로(露)는 드러내고자 하는 노출의 욕망을 표현한다. 서(書)는 미진한 부분을 글로 써서 채우는 것이다. 즉 에로스(Eros)를 살짝 가리다가 드러내고 글로 훔쳐보고자 하는 매거진이다. 남성들의 은근한 본능인 훔쳐보기의 즐거움을 도모해 보는 것이다.

금삿갓이 지방에 근무할 때 알게 된 한국화가가 있다. 전남 고흥 출신으로 부산에 터를 잡고 한평생을 한국화에 천착(穿鑿)하고 있는 원로(耕墨軒人 石齋)이다. 그의 무궁화 그림이 유명하고, 젊어서는 술 꽤나 마시고 팔도의 여자 치맛폭도 많이 섭렵한 전력이 있다. 술 한잔 거나해지면 호남사투리와 부산사투리가 적당히 섞인 정체불명의 사투리로 그 옛날의 무용담이 술술 잘 나온다.  한 번은 그의 화실에서 거나하게 막걸리에 취하여 우연찮게 춘화(春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다짜고짜 창고를 뒤지더니 먼지가 쌓인 액자를 하나 들고 나왔다. 그러더니 턱 하니 금삿갓에게 내밀며 갈 때 들고 가란다. 그냥 들고 가면 사람들의 눈도 있으니, 그림이 보이는 유리 쪽에 화선지 한 장을 붙여서 준다. 가리기 전에 자세히 보니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풍의 춘화가 그려져 있었다. 커다란 노송(老松)의 그늘 아래서 갓을 벗어던진 채 질펀하게 한 바탕 거사를 치르는 풍경이다. 누군가 훔쳐보는 사람이 없어서 스릴과 관음성은 조금 미진하지만 지그시 눈을 감은 여인의 얼굴에서 열락(悅樂)의 미소가 살짝 묻어난다. 사내는 여인을 위에 올린 채 어깨너머로 연신 무언가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모습이다. 오른손으로는 여인의 어깨와 등을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봄 나들이 나왔다가 춘정을 못 이겨 으슥한 소나무 밑을 찾은 것이 분명하다. 이럴 때 동네 삽살개 한 마리라도 소나무 등걸 옆에서 우두커니 쳐다보는 구도였으면 더 리얼하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이다.

그 후에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또 만났는데, 이번에는 똑같은 구도의 춘화를 또 한 장 내밀었다. 구도가 똑같아서 저번에 준 것을 복제했나 생각했다. 그런데 소나무 그늘이 아니고 엄연히 사랑방이거나, 주막의 방, 아니면 규방(閨房) 인지도 모르겠다. 여인은 붉은 치마와 노랑 저고리로 봄을 화사하게 나타냈다. 남성은 상투를 튼 모습이 조금 흐트러졌고, 급히 거사를 치르느라 벗어젖혀 놓은 옷가지와 갓이 방에 널브러져 있다. 다만 조금 전까지 피우던 공방대 만이 재떨이에 가지런하게 잘 놓여 있어서 이채롭다. 방안을 한 구비 휘젓고 갔을 두 연인의 사랑의 활화산이 아직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것 같다. 다소곳이 감은 여인의 눈과 얼굴의 홍조로 보아서 분명 높은 열락의 구름을 타고 노닐었을 것 같다. 분홍빛 두 다리와 구릿빛 두 다리가 대조를 이루며 운우의 정을 위해 용트림하던 기운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서서히 잦아드는 모양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누군가 몰래 훔쳐보는 장치는 없다. 약간 싱거운 구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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